
의자였는데
내가앉으니도마였다
- 김언희, <의자였는데> 부분
며칠 전, 고등학교 선배를 만나 술잔을 나눴다. 그는 자신의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기 바빴다.
“나는 오랫동안 공직에 있으면서,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고 자부해.”
나는 선배의 얘기를 들으며 파우스트를 생각했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의 서두에서 파우스트 박사는 탄식한다.
“아, 나는 이제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마침내 신학까지도 열심히 애써서 연구를 마쳤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렇게 가엾은 바보 꼴이라니!”
그 후 파우스트는 다시 젊음을 되찾아 ‘억눌러온 욕망의 삶’을 살아간다. 선배도 요즘 춤도 배우고 여자도 사귀며 ‘억눌러온 욕망의 삶’을 살아간다고 했다. 심층 심리학자 칼 융은 말했다.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그것이 당신의 삶을 지배할 것이고 당신은 그것을 운명이라 부를 것이다”
파우스트는 ‘무의식을 의식화’했고, 그래서 파우스트는 끝내 구원을 받는다. 선배는 ‘화려한 이력’ 아래의 어두운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고 있다. 선배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자신의 지나온 삶을 처절하게 성찰할 수 있을 때까지 무의식에 지배를 당할 것이다.
‘밖을 바라보는 자는 꿈을 꾸고, 안을 들여다보는 자는 깨어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밖을 바라보다 한평생 꿈을 꾸고 있는가? 선배가 안을 들여다보며 깨어날 수 있을까? 선배는 점집에 자주 간다고 했다.
“항상 꿈자리가 뒤숭숭해.”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