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현 칼럼] 데이터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 ‘잊힐 권리’를 넘어 ‘잊을 권리’에 대하여

백제현

[당선소감]

 

현재 대학원생이지만 평소 웹서핑을 좋아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검색 및 탐색을 하면서 코스미안상 공모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잡지와 칼럼, 에세이, 저널 등 평상시 자주 관심을 가지고 보았기에 코스미안뉴스에서 제공하는 칼럼들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이태상 칼럼]의 내용들을 읽으면서 제가 접목하지 못했던 다른 분야, 그리고 정형화된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해석과 시야에 대해서 흥미롭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공모전에 편안한 마음으로 참여해보게 되었고 운이 좋게 은상에 수상하게 되어서 기분이 상당히 좋습니다.

 

아직 세상이 무엇인지, 어느 사건이나 이슈에 대해서 어떤 시선으로 어떻게 독자적으로 자유롭게 해석해야 하는지 문학적인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많이 부족하고 배울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코스미안뉴스를 통해서 앞으로도 유익한 정보를 많이 얻고 인문학적으로 잘 성장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칼럼] 데이터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 ‘잊힐 권리’를 넘어 ‘잊을 권리’에 대하여 

 

오래된 외장 하드를 정리하다 우연히 10년 전의 일기 폴더를 발견한 날이 있었다. 풋사랑의 열병과 서투른 분노, 세상의 모든 고민을 혼자 짊어진 듯한 치기 어린 문장들. 얼굴이 화끈거려 차마 끝까지 읽지 못하고 파일을 서둘러 닫았다. 디지털 세상에 갇힌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걸며 종종 이렇게 불쑥 나를 찾아온다.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은 몇 년 전 오늘의 사진을 띄우며 나의 서툴렀던 패션을 환기시키고 클라우드 서비스는 내가 쓴 첫 소설의 초고를 친절하게 복원해 준다. 기술은 이토록 충실한 기억의 저장고가 되었지만 나는 문득 질문하게 된다. 이토록 완벽하게 보존된 과거는 과연 나를 성장하게 하는가, 혹은 나를 과거의 어느 한 지점에 붙박아두는 족쇄가 되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최근 몇 년간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인터넷에 떠도는 나의 흑역사와 개인 정보를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지워달라고 요구할 권리. 이는 디지털 시대의 필수적인 방어권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논의에는 중요한 한 가지 관점이 빠져있다. 바로 타인이 아닌 ‘나 자신’으로부터 과거를 놓아줄 권리다. 우리는 ‘잊힐 권리’를 넘어서 우리 스스로를 위해 ‘잊을 권리(Right to forget)’를 논해야 할 때다.

 

과거의 인간은 망각이라는 축복 속에 살았다. 기억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풍화되었고 가장 강렬했던 감정의 파편들만이 남아 어렴풋한 흔적으로 존재했다. 이 불완전한 기억 덕분에 우리는 과거의 실수에 매몰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상처는 서서히 옅어지고 부끄러움은 무뎌지며 우리는 어제의 나와 결별하고 오늘의 새로운 나를 맞이할 수 있었다. 망각은 단순한 소실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을 위한 심리적 ‘토양’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디지털 데이터는 망각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의 모든 순간은 픽셀 단위로 분해되어 서버 어딘가에 영원히 박제된다. 10년 전의 어리석었던 발언, 미숙했던 인간관계, 실패했던 도전의 기록들이 고화질의 데이터로 남아 끊임없이 ‘그때의 너는 그랬지’라고 증언한다. 이 완벽한 디지털 기억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가? 첫째. 우리에게서 변화의 가능성을 앗아간다. 인간은 모순적이고 입체적인 존재이면서 어제의 생각과 오늘의 생각이 다를 수 있는 유연함 속에서 성장한다. 그러나 완벽하게 기록된 과거는 현재의 나를 과거의 프레임 안에 가두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자기규정의 감옥을 만든다. 스스로를 바꿀 용기보다 과거와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압박이 더 커지는 것이다.

 

둘째. 진정한 자기 용서를 방해한다.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딛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의지다. 하지만 실수의 기록이 생생하게 남아있을 때 우리는 그 과오로부터 심리적으로 벗어나기가 무척 어렵다. 디지털 기록은 끊임없이 죄책감을 상기시키는 낙인처럼 작동하면서 온전한 반성과 성찰을 거쳐 자신을 용서하고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앗아간다. 마치 영원히 반성문만 쓰고 있는 학생처럼 우리는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물론 과거를 성찰하는 것은 중요하다. 기억은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뿌리다. 그러나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뿌리가 너무 무성해져 오히려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과 같다. 때로는 가지를 쳐내고 낡은 잎을 떨어뜨려야 새순이 돋아날 공간이 생긴다. ‘잊을 권리’는 과거를 무책임하게 지워버리자는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성장을 위해 과거의 어느 부분을 현재와 분리할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할 ‘편집권’을 갖자는 제안이다. 내 삶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로서 어떤 기억을 강조하고 어떤 기억을 여백으로 남길지 결정할 권리다.

 

우리는 이제 의식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망각의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오래된 SNS 계정을 정리하고 낡은 데이터들을 과감히 삭제하는 것은 단순히 저장 공간을 확보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나에게 정중히 작별을 고하고 현재의 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선물하는 주체적인 의식이다. 데이터는 사실(Fact)을 기록할 뿐이다. 그 사실을 딛고 성장한 지금의 ‘나’라는 맥락(Context)을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기억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더 나은 서사를 써 내려갈 용기다. 당신의 하드 드라이브에 잠든 과거는 당신의 미래에 어떤 말을 걸고 있는가?

 

작성 2025.10.20 07:43 수정 2025.10.2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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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