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박스를 두드리는 인간의 질문
“AI는 왜 그렇게 판단했는가?”
이 단순한 질문이 오늘날 기술 윤리의 가장 복잡한 숙제가 되었다. 인공지능은 이제 단순한 계산 기계를 넘어 인간의 의사결정 영역을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그 판단의 근거를 묻는 순간, 우리는 거대한 어둠 — ‘블랙박스(Black Box)’ — 앞에 선다.
AI의 판단 과정은 대부분 확률과 통계로 이루어진 복잡한 알고리즘의 결과물이다. 그 안에는 수천만 개의 변수와 패턴이 얽혀 있다.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연산의 미로다. 그 결과 AI가 내놓은 결론이 옳은지, 편향적인지, 혹은 위험한지를 검증하기 어렵다.
예컨대, 미국의 한 보험사는 AI가 산출한 고객 위험도를 그대로 반영했다가 인종차별에 따른 논란에 휘말렸다. 또 한편으로는 채용 알고리즘이 여성 지원자를 체계적으로 탈락시키는 사례도 있었다.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AI의 판단을 인간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 자리한다.
“설명할 수 없는 지능은 신뢰할 수 없다.”
이 문장은 기술자와 법률가, 철학자 모두가 공유하는 오늘날의 진단이다. 인공지능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은 기술 발전을 멈추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다시 통제권을 되찾는 과정이다.

기술과 법이 엮이는 투명성의 역사
AI의 ‘투명성’ 논의는 최근의 유행어가 아니다. 그 뿌리는 1980년대의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도 의학 진단 프로그램이 왜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AI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딥러닝과 생성형 모델의 등장으로 알고리즘의 구조가 스스로 진화하면서, 그 내부 논리를 인간이 완벽히 추적할 수 없게 되었다. 이른바 “AI의 불투명성(Opacity)”이 기술의 본질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법과 제도의 대응도 진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통과된 AI 법안(AI Act)에서 ‘설명 가능성(Explainability)’과 ‘책임 추적성(Accountability)’을 핵심 원칙으로 명문화했다. 고위험군 AI 시스템(예: 의료, 금융, 법률, 공공안전)은 반드시 의사결정 과정을 기록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역시 2023년 AI Bill of Rights를 통해, 시민이 “자동화된 결정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했다.
한국도 뒤따르고 있다. 2025년 현재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 제정되었고, 투명성·공정성·안전성 등 AI 3대 원칙을 규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술적 구체화는 부족하다. 법이 기술보다 느리게 걷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 해석, 사회적 요구, 철학적 질문
AI 투명성은 단순한 프로그래밍의 문제가 아니다. 기술·법·철학이 교차하는 복합적 지대다.
기술의 시선에서, ‘설명 가능한 AI(XAI, Explainable AI)’는 현재 가장 활발히 연구되는 분야다. 구글의 ‘LIME’, IBM의 ‘AI Explainability 360’, 그리고 오픈AI의 해석 가능성 프레임워크 등은 모델의 의사결정 과정을 시각화하거나, 입력 요인별 영향을 분석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그러나 딥러닝의 구조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완전한 설명보다는 ‘근사적 해석’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법률의 시선에서, 투명성은 곧 ‘책임의 근거’다. AI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때,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과정이 공개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모호하다. 모델을 만든 개발자, 데이터를 제공한 기업, 혹은 그 AI를 이용한 기관 중 누구를 ‘책임 주체’로 볼 것인가? 법은 여전히 이 문제 앞에서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윤리의 시선에서, 투명성은 신뢰와 직결된다. 사용자는 결과보다 ‘과정’을 알고 싶어 한다. 특히 공공영역에서 AI가 정책결정이나 판결 지원에 쓰인다면, 시민의 참여와 감시가 가능해야 한다. AI의 투명성은 단순히 기술적 설명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새로운 형태다.
“설명 가능한 AI”의 기술적 도전과 법적 과제
AI를 투명하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더 어렵다. 기술적으로는 모델의 성능과 설명력 사이에 딜레마가 존재한다.
모델이 복잡할수록 정확도는 높아지지만, 그만큼 내부 구조는 불투명해진다. 반대로 단순한 모델은 설명하기 쉬우나 예측력이 떨어진다. 이를 ‘투명성-성능 패러독스(Transparency-Accuracy Paradox)’라고 부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등장한 접근법이 있다.
첫째, ‘모델 내 해석(Intrinsic Explainability)’방식이다. 알고리즘 설계 단계부터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구조로 모델을 만든다. 예를 들어 의사결정 트리나 규칙 기반 학습처럼,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논리적 경로를 남긴다.
둘째, ‘사후 해석(Post-hoc Explanation)’이다. 이미 학습된 복잡한 모델의 결과를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시각화하거나, 유사한 사례를 근거로 제시한다.
법적 측면에서는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는 것이 관건이다.
한국의 경우 AI 관련 분쟁은 주로 개인정보 보호, 저작권 침해, 책임 소재 불명확성에서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에는 “AI의 판단이 공정했는가?”, “설명은 충분했는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법률적 ‘설명 의무’가 명시되면, 기업은 AI 시스템의 학습 데이터, 모델 구조, 검증 절차를 일정 부분 공개해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영업비밀과 알고리즘 보안이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개와 보호’, ‘책임과 자율’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따라서 기술의 투명성은 법적 가이드라인과 함께 사회적 합의속에서 구축되어야 한다. 단순히 AI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 가능한 혁신’을 제도화해야 한다.
AI의 문을 여는 건 결국 인간이다
AI는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의사결정 구조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우리는 AI가 만든 세상을 살아가지만, 여전히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투명한 AI를 향한 노력은 결국 ‘기술의 민주화’를 향한 여정이다. 알고리즘이 인간을 대신 판단하는 시대에, 우리는 그 판단의 이유를 이해할 권리가 있다.
AI의 문을 여는 열쇠는 기술이 아니라 ‘신뢰’다.
투명성은 완벽한 해석이 아니라, 최소한의 책임을 나누는 사회적 약속이다. 인간이 만든 지능이 인간을 이해하려면, 그 지능 역시 인간에게 자신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AI가 인간을 모방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인간이 AI에게 묻는다. “너는 왜 그렇게 생각했니?”
그 질문이 멈추지 않는 한, 블랙박스의 문은 조금씩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