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태계 위기의 전조, 꿀벌 실종과 식량 안보의 그림자
전 세계적으로 꿀벌 개체 수의 급감 현상이 심화되며 생태계 붕괴의 심각한 징후로 인식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22년 한 해 동안 약 78억에서 80억 마리에 달하는 꿀벌이 자취를 감추거나 집단 폐사한 것으로 추산된다. 2010년대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30%에서 40%의 꿀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꿀벌은 사과, 아몬드, 양파 등 약 70종의 주요 작물 수분을 담당하여 세계 식량 생산의 90%를 지탱하는 핵심 매개체다. 따라서 이들의 감소는 곧바로 전 지구적인 식량 안보 위협으로 직결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과학계는 꿀벌 군집 보존을 위한 두 가지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혁신적 영양 공급: 꿀벌 전용 고효능 슈퍼푸드 개발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자연 상태의 꽃가루 공급이 줄어들면서 꿀벌의 영양 상태는 악화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인공 대체 사료는 필수 영양소가 결핍되어 꿀벌의 번식력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연구진은 꿀벌의 발달에 필수적인 특정 스테롤(Sterol)을 밝혀내고, 합성 생물학 기술을 활용하여 효모인 '야로위아 리포리티카(Yarrowia lipolytica)'를 유전자 변형하여 이 성분을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 새로운 사료를 섭취한 꿀벌 집단은 일반 대체 사료를 먹은 집단이 90일 만에 번식을 중단한 것과 달리, 이후에도 꾸준히 번식 활동을 이어갔다. 또한, 유충의 생존율이 기존 대비 최대 15배까지 향상되는 결과를 보였다. 이 연구 성과는 지난 8월 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되었다.
첨단 기술의 개입: '로보 로얄' 프로젝트와 여왕벌 중심의 관리 시스템
두 번째 핵심 프로젝트는 꿀벌 로봇 프로젝트인 로보 로얄(RoboRoyale)이다. 영국 더럼대학교를 중심으로 유럽의 여러 대학이 협력하여 진행하는 이 연구는 수십만 마리 군집 전체가 아닌, 집단의 생존과 번식의 핵심 축인 여왕벌을 직접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여왕벌은 하루에 최대 2,000개의 알을 낳으며 군집 유지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환경적 요인이나 영양 부족으로 인해 산란 활동이 약화되면, 이는 곧 대규모 군집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여 초소형 인공지능(AI) 로봇을 벌집 내부에 투입해 여왕벌의 상태를 정밀 관찰하고 돌봄을 제공하는 방식을 개발했다. 로보 로얄은 정교한 센서와 AI를 탑재하여 여왕벌의 생체 신호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맞춤형으로 반응한다.
만약 여왕벌의 산란이 둔화되면, 로봇은 단백질이 풍부한 영양분을 즉시 공급하고 적절한 자극을 주어 다시 활발한 산란을 유도한다. 또한, 로봇은 여왕벌이 분비하는 페로몬이 군집 전체에 효율적으로 확산되도록 보조하여, 일벌과 수벌의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하고 벌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여왕벌의 페로몬이 군집의 지휘 신호와 같다는 점을 고려할 때, 로봇의 보조는 벌 사회 전체의 효율성 향상으로 이어진다.
더럼대학교의 파르샤드(Farshad) 아르 박사는 여왕벌이라는 핵심 개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수억 마리 꿀벌 집단 전체에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며, 적절한 시기에 산란 활동을 활성화함으로써 더욱 건강하고 안정적인 꿀벌 군집을 보존할 수 있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이 정착될 경우, 현재 진행되고 있는 꿀벌 개체군 붕괴 현상을 저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향후 양봉장에 로보 로얄을 도입하는 대규모 현장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이 기술은 인간 문명이 초래한 생태계 위기에 첨단 기술이 개입하여 해결을 시도하는, 아이러니하면서도 중대한 의미를 지닌 사례로 평가된다.
생태계의 붕괴가 부른 아이러니한 미래
‘로봇이 꿀벌을 돌본다’는 뉴스는 놀라운 과학의 성취인 동시에, 인류의 불안한 자화상이다. 로봇이 꿀벌을 돌본다는 기대감과 동시에 불안함이 존재한다. 이지구의 생명을 지키는 일은 기술이 아니라 생태적 상상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AI가 꿀벌의 자리를 대신하는 시대, 인류가 진정 지키고 복원해야 할 것은 자연생태계 자체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