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격차, 은퇴 세대의 새로운 불평등
“당신의 손끝이 세상을 바꾼다.”
스마트폰 광고 속 문구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그 손끝이 세상을 좁히기도, 넓히기도 한다. 은퇴 후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은 사회와 단절되는 속도를 실감한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30~40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온라인 뱅킹, 키오스크, 모바일 공공서비스 등 일상의 대부분이 디지털 전환된 사회에서 ‘기기 공포증’은 경제적·정서적 고립을 초래한다.
과거에는 “글을 몰라서 불편한 시대”였다면, 지금은 “기계를 몰라서 불편한 시대”다.
AI 챗봇이 고객센터를 대신하고, 자동화 서비스가 일상화된 오늘, 기술을 모른다는 건 단순한 불편을 넘어 ‘사회적 배제’를 의미한다. 은퇴 이후의 삶은 ‘노후 자금’만큼이나 ‘디지털 적응력’에 달려 있다.
AI와 함께 다시 일하는 시대 - ‘세컨드 라이프’의 현실
‘퇴직’은 더 이상 끝이 아니다. 이제 그것은 ‘AI와 함께 일하는 두 번째 커리어의 시작’이다.
예전에는 퇴직 후 작은 가게나 농장을 운영하는 것이 전형적인 선택이었다면,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은퇴자들이 유튜브, 블로그, 온라인 강의, 디지털 컨설팅 등에서 AI 도구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사례가 급격히 늘고 있다.
예를 들어, 63세의 전직 은행원 김 모 씨는 챗GPT와 영상 편집 AI를 활용해 ‘시니어 금융 상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직접 글을 쓰는 대신, AI가 제안한 콘텐츠 초안을 바탕으로 경험을 녹여 콘텐츠를 만든다”고 말했다.
AI는 단순히 젊은 세대의 도구가 아니라, 은퇴자의 경험과 결합될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국내외에서도 이른바 ‘AI 세컨드 라이프’가 확산 중이다. 일본에서는 60대 이상 은퇴자 대상의 AI 콘텐츠 제작 강좌가 성황을 이루고 있고, 유럽에서는 시니어 창업 프로그램에 AI 활용 교육이 필수로 포함된다. 한국에서도 고용노동부가 2025년부터 ‘AI 직업 재교육 프로그램’을 은퇴자 중심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배움은 젊음의 전유물이 아니다 - 은퇴 후 학습 혁명
배움은 더 이상 나이와 상관없다.
AI 시대의 학습은 ‘기억’이 아니라 ‘활용’을 중심으로 바뀌었다. 스마트폰 하나로도 영상 편집, 글쓰기, 번역, 창작, 연구까지 가능해진 시대에, 배우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도구를 다루는 감각’이다.
서울시 평생학습포털의 자료에 따르면, 60세 이상 시민 중 AI·디지털 관련 강좌 수강 인원이 3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들은 코딩을 배우기보다, AI로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익힌다.
예를 들어 AI 그림 도구로 손주 얼굴을 그리는 할머니, 챗GPT로 시를 쓰는 전직 교사, AI로 사진 보정을 배우는 사진동호회 회원 등이다.
배움의 본질은 ‘젊음의 유지’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순간, 인간은 자신이 여전히 성장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AI 학습은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존재의 활력을 회복하는 과정이 되고 있다.
AI와의 공존, 인간다운 노년을 위한 선택
AI는 일자리를 빼앗는 존재일까, 아니면 노년의 동반자일까?
사실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의미 있는 시간’을 되돌려주는 도구다.
AI 번역기 덕분에 외국어 부담이 줄고, AI 일정 관리 도구가 하루의 리듬을 만들어준다. AI는 노년층이 더 오래, 더 유연하게 사회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경제적 안정이 아니라 ‘사회적 연결감’이다.
AI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새로운 사람들과 지식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은 달라진다. 결국 AI와의 친밀함은 기술 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선택이다.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제2의 젊음’
AI는 우리에게 두 번째 젊음을 선물한다.
그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이자, 스스로의 가능성을 재발견하는 과정이다.
은퇴 후 AI와 친구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여전히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다.
AI는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다시 설계할 수 있게 해주는 보편적 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