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욕심을 버리면 땅도 웃는다.”
경기도 양주시 비암리 산자락에 자리 잡은 반딧불이농장. 그곳엔 83세의 박찬웅 농부가 산다. 그의 농장은 화려하지 않다. 자동 급수기도, 대형 하우스도 없다. 그 대신 흙냄새 가득한 밭과 닭장, 그리고 사계절의 변화가 그대로 숨 쉬는 자연이 있다.
그는 오늘도 미소를 띠며 말한다. “벌레들이 좋은 걸 먼저 먹습니다. 그들이 다 먹고 남은 걸 우리가 먹는 거죠. 그게 자연의 순서예요.” 그는 그 질서를 어기지 않는다. 욕심을 덜고, 자연과 함께 사는 삶. 그게 박찬웅 농부의 농사이자 인생이다.
시골이 좋아 시작된 삶, 그리고 반딧불이처럼 번진 인연
1996년, 도시의 소음을 떠나 “시골이 좋아서” 양주시 비암리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고추, 상추, 배추를 심으며 텃밭농사를 시작했다. 그저 자급자족하던 작은 밭이 세월과 함께 ‘반딧불이농장’이 되었다. 그는 회상한다. “처음엔 그냥 밭이나 가꾸며 여생을 보내려 했죠. 그런데 흙이 사람을 붙잡아요. 땅이 사람을 놓아주질 않아요.”
실제로 반딧불이가 사는 농장
반딧불이농장은 이름 그대로다. 여름밤이면 계곡가 풀숲 사이로 반딧불이가 반짝인다. 그 빛은 작지만, 자연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우리 동네엔 아직도 반딧불이가 살아요. 그만큼 깨끗하다는 거지요. 사람이 욕심을 덜 내면 자연이 다시 돌아옵니다.” 그는 반딧불이를 ‘농장의 친구’라 부른다. 어둠 속에서 작게 빛나는 반딧불이는, 그의 삶과 철학을 닮았다.
닭과 함께 사는 인생 - 유정란에 담긴 생명의 순환
세월이 흘러 채소농사 대신 닭을 키우게 됐다. 지금은 청계와 오골계를 키우며 유정란을 생산한다. 그의 닭들은 항생제나 인공 사료를 먹지 않는다. 땅속에서 곤충을 쪼아 먹고, 풀잎을 뜯는다. 그렇게 자란 닭이 낳은 알은 생명력 그 자체다. “닭이 낳은 유정란은 그냥 알이 아닙니다. 생명이 깃든 알이에요. 그걸 먹는 사람도 자연의 생기를 받는 거죠.”
그는 닭이 병이 나도 약을 주지 않는다. “자연은 스스로 균형을 잡습니다. 약을 주면 살 수는 있어도, 생명은 병듭니다. ”그의 유정란은 그래서 ‘살아있는 알’이라 불린다.
“땅은 속이지 않는다.” - 평생의 신념
박찬웅 농부의 신념은 단순하다. “땅은 속이지 않는다.” 정성을 다하면 반드시 보답하지만, 욕심을 내면 그만큼의 벌이 돌아온다. 그는 농약을 멀리한다. 벌레가 먹은 자국이 그대로 남은 채소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긴다. “벌레가 좋은 걸 먼저 먹어요. 그들이 먹고 남은 걸 사람이 먹는 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완벽한 채소보다, 흠이 있는 채소가 더 정직합니다.” 그의 밭에는 자연의 시간과 손길이 깃들어 있다.
산과 계곡, 새소리와 함께 하는 삶
반딧불이농장은 양주시 광적면 비암리의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가끔 인근 훈련장에서 들려오는 사격소리만 빼면, 완전한 고요 속이다. 여름날 밭에서 풀을 뽑을 때면, 그는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땀을 흘린다. 산새의 노래가 들리고, 산들바람이 스치면 흘리던 땀이 서서히 마른다. “그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세상 근심이 다 사라져요.” 그는 고요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계곡물 소리에, 가끔 고라니 울음이 섞이고 쟁끼와 이름 모를 새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면, 그 고요한 적막이 이 동네를 더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의 말은 한 편의 시처럼 잔잔히 흘렀다.
욕심을 버린 농사, 인간의 품격을 짓다
박찬웅 농부는 말한다. “농부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벌레가 먹고 남은 걸 먹는 게 농부의 도리지요.” 그에게 농사는 단순히 먹을 것을 얻는 일이 아니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숨 쉬는 겸허한 공존의 기술이다. 그의 밭과 닭장에서 나는 향기는 자연 그대로의 냄새다. 그 속에서 그는 ‘순환’이라는 생명의 진리를 배웠다.

이제는 천천히, 고요히 살아가는 시간
83세의 박찬웅 농부는 요즘 일거리를 줄이고 있다. 닭장과 밭 규모를 줄이고, 운동 삼아 농사일을 이어간다. 그 속도는 느리지만, 하루하루가 감사로 채워진다. “젊을 땐 먹고살려고 농사했지만, 지금은 살아 있음을 느끼려고 농사합니다.” 그의 하루는 짧지만, 그 안에 세월의 무게와 평화가 함께 담겨 있다.
방문객들이 남긴 한마디 - ‘참 좋다’
“우리 농장은 자랑할 게 없어요. 그런데 봄, 가을에 오는 손님들이 앞산을 보며 꼭 한마디씩 해요. ‘참 좋다’고요. 그 말이 제일 고마워요.” 도시의 소음을 떠나 반딧불이농장을 찾은 방문객들은 자연의 고요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 행복이란 결국 단순함 속에 있다는 것을.
“반딧불이처럼 살다 가고 싶어요.”
그는 마지막에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나이도 많고, 떠날 날이 머지않았죠. 그래도 반딧불이처럼 어둠 속에서도 작게 빛나며 살다 가고 싶어요. 욕심 부리지 않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면서요.” 그의 말은 고요했지만, 오래 남았다. 그가 말하는 ‘작은 빛’은, 농사와 인생을 모두 관통하는 진리였다.
결국, 농사는 사람의 이야기다
양주시 비암리 산자락, 반딧불이농장. 그곳에서 83세의 박찬웅 농부는 오늘도 흙을 만지고, 알을 걷는다. 그의 손에는 세월이, 그의 눈에는 평화가 담겨 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벌레가 먹고 남은 채소처럼, 꾸밈없고 진솔하게 - 그렇게 사는 것이 인간의 품격이며, 농사의 본모습이다.
도시의 불빛보다 더 따뜻한 빛이 있다. 양주 산골짜기에서 조용히 빛나는 반딧불이의 빛, 그리고 그 빛처럼 겸손하고 단단한 한 농부의 인생. 박찬웅 농부의 반딧불이농장은, 오늘도 자연의 진심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