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밥 한 줄에서 발견한 관계의 다정함
“김밥 좋아하세요?”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웃으며 “네, 참 좋아해요”라고 답할 것이다. 밥, 단무지, 당근, 시금치 등 서로 다른 재료들이 김 한 장 안에서 포근히 감싸 안기며 하나의 맛을 빚어낸다. 각각은 평범하지만, 함께 어우러질 때 특별해진다. 인생도 그렇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부딪히고 섞이면서 만들어내는 조화.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풍경이다.
닫힌 김밥집 앞에서 멈춰 선 마음
며칠 전, 자주 찾던 동네 김밥집 문에 낯선 공지 하나가 붙어 있었다. “당분간 영업이 어려워요. 죄송합니다.” 짧은 문구였지만, ‘당분간’이라는 단어가 괜스레 걱정을 부추겼다. 며칠이 지나도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날 저녁, 나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가게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사장님, 혹시 언제쯤 다시 영업하시나요? 자주 가던 손님인데, 걱정이 되네요.” 잠시 후 도착한 답장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흑흑 죄송해요. 담주쯤 오픈할 거 같아요.” 그 한 줄에 묘한 안도감이 찾아왔다.
‘아, 다행이다. 큰일은 아니시구나.’ 마음이 놓이자, 나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 “안 그래도 ‘당분간’이라고 써 있어서 많이 놀랐어요. 꼭 돌아와 주세요.” 그리고 곧 이어진 답장. “넹넹 감사해요. 꼭 힘내서 오픈할게요.”
'힘을 내겠다’는 말이 그렇게 따뜻하게 들린 적이 있었던가. 그 마음이 전해져서, 나도 더 힘이 되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문자를 보냈다.
“저 말고도 정말 많은 분들이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아, 오늘 저도 위로가 필요해서 꼭 먹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다음 주까지 잘 기다릴게요.
오늘은 남은 힘 모아 사장님 응원해드릴게요. 얼른 회복하세요. 담주에 꼭 갈게요.” 그리고 돌아온 마지막 메시지. “진심 큰 힘이 되네요. 담에 꼭 아는 척 해주세요^^”
단 몇 줄의 문자였지만, 그날 밤 나는 ‘표현’이 돌아와 안겨준 따뜻한 평안함을 오래 곱씹었다. 타인을 향한 작은 마음의 손짓이 곧 나를 위로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마음이 내미는 진심의 손짓
요즘은 메시지가 편지를 대신하고, 이모티콘이 표정의 역할을 한다. 그런 시대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누군가를 향한 진심은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괜찮으세요?”, “기다릴게요.”, “오늘 하루도 잘 버티셨어요.” 이 짧은 말들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감싸 안는 온기이자, 서로를 잇는 든든한 관계의 끈이다.
작가 김상현은 책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가 좋아하는 일은 ‘표현’하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일도, 카페를 운영하는 일도 결국 마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 말이 참 좋았다.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표현’이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덜 외롭게 만드는 일.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표현’의 본모습이었다.
다름이 어우러질 때, 세상은 비로소 조화로워진다.
김밥이 맛있는 이유는 각 재료가 자기 자리를 지키기 때문이다. 밥은 밥의 온도로, 단무지는 그 아삭함으로, 당근은 은은한 단맛으로 제 몫을 다한다. 서로 다르기에 더 잘 어우러지고, 함께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
우리 삶도 그렇다. ‘나만 행복하자’에서 ‘우리 모두 행복하자’로 마음을 바꾸는 순간, 세상은 경쟁이 아니라 조화로 보인다. 남보다 앞서려는 욕심 대신, 함께 어우러지려는 마음이 자란다. 그때부터 삶은 훨씬 부드럽고, 관계는 훨씬 단단해진다.
삶은 결국 하나의 김밥 같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맛을 낸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로 감싸 안는 건 다름 아닌 마음의 표현, 그 따뜻한 김 한 장이다.
작은 표현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온도
이제는 알고 있다. 작은 표현들이 모이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진다는 걸.
하나, 아침마다 누군가의 행복을 떠올리기.
‘오늘 그 사람이 웃을 일이 생기면 좋겠다.’ 단 10초만이라도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둘, 작은 말 한마디를 아끼지 않기.
“감사합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이 짧은 말이 누군가에게 김 한 장처럼 포근한 위로가 될 수 있다.
셋, 비교 대신 어울림을 선택하기.
“나는 저 사람보다 나을까?” 대신 “저 사람과 함께라서 다행이야.” 비교는 벽을 세우지만, 어울림은 다리를 놓는다.
이 세 가지는 거창한 실천이 아니다. 그저 마음을 살짝 내보이는 일, 하지만 그 사소한 마음들이 모여 세상을 조금씩 데운다.
살아 있음의 증거로서의 ‘표현’
표현’은 단지 감정을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다. 내 마음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닿게 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살아 있는 흔적을 남긴다. 그게 짧은 눈빛이든, 인사 한마디든, 문자 한 줄이든 상관없다. 그 안에 진심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닿는다.
오늘 당신이 건넬 다정한 한마디가, 이 세상에 온기를 더하는 김 한 장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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