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기간 이슬람 문화권에 살면서, 찻집을 운영하던 무슬림 친구 핫산과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가 어느 날 내게 물었다. “요셉, 당신의 책(인질)과 나의 책(꾸란)은 같은 신을 말하는 것 같은데, 왜 당신의 길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하는가?”
나는 그 순간, 사해사본의 연대를 설명하거나 꾸란의 역사적 오류를 지적하고 싶은 마음을 접었다. 대신 그에게 조용히 되물었다. “핫산, 당신의 알라는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는가?”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그분은 내게 살아갈 지침(샤리아)을 주셨고, 내가 그분께 복종하면 천국을 약속하셨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의 하나님, 예수는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주셨다. 내가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짧은 대화 속에, 두 신앙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가 담겨 있다. 이는 경전의 연대기가 아닌,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이슬람에서 알라는 지엄한 주인이시며, 인간은 그의 충실한 종(압드, ‘abd)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그의 목숨값으로 입양된 자녀(휘오스, huios)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이러한 복음의 압도적인 은혜야말로 우리의 유일한 대답이 되어야 함에도, 나는 오늘날 일부에서 벌어지는 ‘성경과 꾸란, 어느 것이 원본인가?’라는 해묵은 논쟁을 볼 때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 논쟁의 구도는 팽팽하다. 무슬림들은 꾸란이 ‘책들의 어머니(Umm al-Kitāb)’, 즉 하늘의 원본이며,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경전(성경)을 변질(타흐리프, tahrīf)시켰기에 알라가 최종 계시를 주셨다고 믿는다(꾸란 3:3).
반면,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꾸란보다 수백 년 앞선 명백한 원본이며, 꾸란은 성경의 이야기를 차용, 변형시킨 것이라 반박한다.
그러나, 이 논쟁은 마치, 한 그루의 아름드리나무를 보며 땅속의 ‘뿌리’와 하늘의 ‘꽃’ 중 어느 것이 ‘원본’이냐고 묻는 것과 같다. 뿌리 없는 꽃이 없듯, 꽃 없는 뿌리는 존재의 목적을 다하지 못한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계시를 ‘점진적 계시’라는 유기체적 관점으로 이해한다. 구약이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라는 깊은 뿌리라면, 신약은 그 모든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꽃으로 만개하고 성령의 열매로 나타난 결정체이다.
구약은 신약의 빛 아래서 그 의미가 분명해지고, 신약은 구약이라는 뿌리 덕분에 생명력을 얻는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이 더 오래되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궁극적인 성취인가?’를 물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섣달 그믐, 남녘 섬 마을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 피어나는 동백꽃의 지혜를 떠올린다. “동백꽃보다 먼저 오는 봄은 없다”라는 격언처럼, 봄이 왔음을 알리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기상 학자의 논문이 아니라, 추위를 뚫고 피어난 한 송이 꽃 그 자체이다. 혹자는 잔설이 남았다며 봄을 의심하지만, 지혜로운 농부는 동백을 보고 묵묵히 밭 갈 채비를 한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앙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교리 논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한 사람의 삶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이라는 열매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우리가 무슬림을 향해 혐오와 정죄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우리 종교가 사랑의 종교라고 주장한다면 그보다 공허한 외침이 어디 있겠는가?
‘원본’을 가졌다고 확신하는 우리의 삶이 ‘모조품’이라 부르는 이들의 삶보다 못하다면, 세상은 과연 누구의 말을 신뢰하겠는가? 논쟁의 핵심은 ‘무엇을 믿는가?’에서 ‘어떻게 살아내는가?’로 전환되어야 한다.
‘성경이 원본이다’라는 진리는 분명 우리에게 큰 힘과 위안을 준다. 그러나 그 진리는, ‘예수가 내 삶의 주인이시다’라는 고백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고, 그를 통해 주변을 변화시키는 폭발력을 지닐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제 소모적인 원본 논쟁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우리의 삶으로 복음의 원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써 내려가야 할 때이다.
꽁꽁 얼어붙은 세상 속에서, 우리의 용서와 환대, 희생과 섬김이 바로 저 붉은 동백꽃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라는 참된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첫 소식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