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 그 주식 살 걸.”
“그거 팔지 말 걸.”
“조금만 더 참을 걸.”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 말들은 단순한 후회가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이런 말을 반복하는 사람을 두고 ‘껄무새’라고 부른다.
‘~할 걸’이라는 후회형 어미를 습관처럼 사용하는 이 신조어는 오늘날 후회가 일상이 된 사회의 자화상이다. 껄무새는 개인의 실수를 되짚으며 스스로를 자조하지만, 그 안에는 집단적 불안과 공감의 결핍이 교묘히 숨어 있다.
‘~할 걸’의 시대, 껄무새의 탄생
‘껄무새’는 ‘~할 걸’을 반복하는 사람을 ‘앵무새’(parrot)에 빗대어 만든 말이다. 처음엔 농담처럼 쓰였지만, 곧 현대인의 습관적 후회 언어를 상징하게 됐다. 특히 주식·코인·부동산 커뮤니티에서 이 말은 유행처럼 번졌다. 게시판에는 매일같이 “그때 살 걸”, “그거 팔지 말 걸”, “조금만 더 버틸 걸” 같은 글이 올라온다.
그 말들은 투자 실패의 반성이라기보다 자조와 체념이 섞인 감정 공유의 언어다. 한 이용자는 “요즘은 주식 안 후회하면 사람도 아니다”라고 썼다. 이처럼 껄무새는 후회를 유머로 포장한 자기방어 언어이자, 불안을 나누며 위로받으려는 집단적 정서의 산물로 자리 잡았다.
후회와 자조, 껄무새 언어의 심리학
심리학적으로 껄무새 현상은 인지부조화를 완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사람은 잘못된 선택을 인정하기보다, “그땐 어쩔 수 없었어”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할 걸’이라는 표현은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의 완충 장치다. 즉, 완전한 인정도, 명확한 부정도 아닌 감정의 회피 언어다.
또한 껄무새의 언어는 공감을 가장하지만, 사실은 타인과의 정서적 거리 두기를 강화한다. “그럴 줄 몰랐어”보다 “그땐 그랬어야 했는데”라는 말은 결과보다는 감정을 중심으로 한다. 결국 껄무새는 공감 대신 자기위로에 머무는 언어적 패턴으로 작동한다.
냉소의 밈이 된 후회, SNS와 커뮤니티가 키운 공감의 결핍
껄껄무새는 어느새 디지털 밈으로 자리 잡았다. 트위터(X)와 인스타그램에는
“오늘도 껄무새가 됨ㅋㅋㅋ”,
“요즘 완전 껄무새 모드임… 후회가 취미야”,
“오늘도 껄무새 인증합니다”
와 같은 문장이 자주 등장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후회를 유머와 자조의 언어로 콘텐츠화하며, 그 속에서 “모두가 후회하고 있다”는 묘한 동질감과 냉소적 위로를 공유한다. 문제는 이런 문화가 진짜 공감을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후회를 웃음으로 포장하면서 감정의 깊이는 사라지고, “괜찮아, 나도 그랬어” 대신 “ㅋㅋ 나도 껄무새야”로 끝나버리는 사회적 언어가 된다. 결국 껄무새는 공감의 흉내를 내는 언어, 즉, 냉소의 밈으로 변해버렸다.
껄무새를 멈추는 법, 후회를 성찰로 바꾸는 언어습관
껄무새를 멈춘다는 것은 후회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후회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때 할 걸’이 아니라 ‘다음에는 이렇게 해봐야겠다’로 바꾸면 언어의 무게가 바뀌고 사고의 방향도 달라진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언어 재구성(cognitive reframing)’이라 부른다. 실패를 후회의 언어로 소비하는 대신, 성찰의 언어로 전환할 때 껄무새는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감정 회복 신호가 된다. 결국 언어는 사고를 규정한다. ‘할 걸’의 반복에서 벗어나 ‘해보자’의 언어로 나아갈 때, 우리는 후회의 시대를 넘어서 회복의 시대로 갈 수 있다.

껄무새는 단순히 “후회 많은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 아니다. 그 속에는 불안한 시대의 집단 심리가 녹아 있다.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할 걸’이라는 말로 감정을 다독인다.
그 말은 자기위로이자, 동시에 자기비판이다. 그러나 진짜 변화는 언어를 바꾸는 순간 시작된다.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대신 “지금 이렇게 해보자”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껄무새는 사라지고 성찰하는 인간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