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지속적으로 법원의 판결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조희대 대법원장이 내린 ‘초고속 파기환송’ 결정과 지귀연 판사의 이른바 ‘날짜 계산법’ 판결은 법률 해석을 넘어선 정치적 사법 판단이라는 비판을 낳았다.
판결의 내용보다 더 심각한 것은 법원이 법률의 명문 규정보다 판사 개인의 판단과 양심을 앞세우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9월, 특정 정치인 관련 사건의 파기환송 결정을 이례적으로 신속히 처리했다. 통상 수개월이 걸리는 대법원 심리 절차를 불과 며칠 만에 끝낸 이른바 ‘초고속 파기환송’은,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불러왔다.
정치적 중립에 있어야할 대법원이 정치적인 판단으로 신속히 결론을 내렸다는 해석까지 나오며, 사법부가 법률의 원칙보다 ‘상황 판단’에 기운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법률의 절차와 형식을 무시한 이번 판결은 효율이 아니라 위협이였다. 정의는 빠르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해야 완성된다.
지귀연 판사의 ‘날짜 계산법’ 판결 역시 같은 문제를 보여준다. 법률에 명시된 기간 계산 규정보다 재판부의 해석을 우위에 두어 결과를 달리한 것이다. 법에 정해진 기간 산정 방식을 “실질적 정의를 위한 유연한 해석”이라 포장했지만, 그 순간 법률은 명확성을 잃는다.
이 외에도 내란과 관련한 인사들의 이따른 영장 기각 등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논할 수준이 아니라 사법부에 의한 내란이 지속되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문을 자아낸다.
국민은 법전을 보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판사의 해석이 그때그때 달라진다면, 법은 더 이상 기준이 될 수 없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양심은 개인의 감정이나 정치적 신념이 아니다. 법률과 증거에 기초한 공정한 양심, 즉 법률적 양심이어야 한다.
판사의 ‘양심’이 법률을 뛰어넘을 때, 재판은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신념의 표출이 된다. 법이 아닌 양심에 따른 판결은 결국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법의 일관성을 해친다.
국민이 법원에 바라는 것은 감정적인 정의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정의다. 같은 법이 같은 방식으로 적용되는 사회가 진정한 법치국가다. 사법부는 그 중심에서 원칙을 지켜야 한다.
판결은 양심이 아니라 법률에 따라 내려져야 한다. 법률의 냉정함 속에서 정의를 찾아야 사법부가 신뢰받는다. 우리는 법을 넘어선 양심이 아니라, 법률에 따른 양심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