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창조성'을 시대의 화두로 삼으면서도, 정작 무엇이 창조인지는 혼란스러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역작 『창조적 시선』은 이 딜레마에 대한 해답을 '인류 최초의 창조 학교'라 불리는 바우하우스(Bauhaus)의 역사와 철학에서 찾아낸다.
이 책은 창조를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고 편집하는 능력'으로 재정의하며, 창조적인 삶의 '태도와 시선'을 인문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김정운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하나도 없다'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즉, 인류의 모든 문화와 발명은 무無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요소들의 창조적 재조합과 편집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자의 트레이드마크인 '에디톨로지(Editology: 편집학)'의 핵심이다. 창조는 특정한 천재에게만 허락된 능력이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에서 비롯된다.이러한 창조적 시선의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괴테의 색채학을 끌어들인다.
괴테는 색채가 사물 자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눈'이라는 주체와 '빛'이라는 객체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 원리를 창조성에 적용하여, 창조 역시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주관적인 시선과 세상의 요소들이 만나는 상호작용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진정한 창조는 '객관적 사실'을 쫓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의미'를 편집하고 부여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통찰이다. 이 책의 중심축은 1919년 독일에서 설립된 바우하우스다.

저자는 바우하우스를 단순한 건축이나 디자인 사조로 보는 것을 넘어, '예술과 기술의 통합'을 통해 삶 자체를 예술로 만들려 했던 인류 최초의 창조적 삶의 학교로 재해석한다.특히, 김 교수는 현대 자본주의와 디자인의 아이콘인 애플(Apple)의 성공 비결을 바우하우스의 정신에서 찾는다. 스티브 잡스가 초기에 소니(Sony)의 스타일을 모방했지만, 진정한 혁신은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미니멀리즘과 기능주의를 현대 기술에 접목하면서 이뤄졌다는 분석은 핵심적이다. 잡스는 '아름다움은 기능에서 나온다'는 바우하우스의 철학을 21세기 디지털 기기에 '편집'하여 대중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저자는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를 단순한 마케팅이 아닌, 사람들이 의미를 찾는 '자본주의적 제의(리추얼)'로 해석한다. 의미는 리추얼로 만들어진다는 주장은, 창조적인 기업이나 개인은 단지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공유할 만한 '의미와 경험'을 편집하여 제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김정운 교수는 문명 비평가로서의 시선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신은 곡선으로 창조했고 인간은 직선으로 바꿨다"는 강력한 명제를 통해, 현대 문명이 추구하는 '직선'의 효율성 뒤에 가려진 '곡선'의 창조성 상실을 비판한다. 철도, 도시계획, 심지어 우리의 사고방식까지 지배하는 직선은 질서와 효율을 주었지만, 예측 불가능한 놀이와 우연, 그리고 창조적 일탈의 공간을 빼앗아 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4차 산업혁명'과 같은 획일적인 구호가 전혀 혁신적이지 않다고 일갈하며, 진정한 혁신은 기술 발전의 속도 경쟁이 아니라, 인간이 잃어버린 '곡선적 삶'의 여유와 창조적 시선을 회복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창조적 시선』은 독자들에게 '당신의 삶을 어떻게 편집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바우하우스의 교장 발터 그로피우스가 꿈꿨던 것처럼, 삶의 모든 순간을 예술이자 디자인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획일화된 직선적 사고에서 벗어나 곡선의 유연함과 유희를 되찾을 때, 우리 모두는 창조적인 삶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