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체를 넘어 영혼으로 달리다 《달리기와 존재하기》가 던지는 삶의 질문
조지 쉬언은 단순히 달리기를 사랑한 의사가 아니었다. 그는 ‘달리기를 통해 존재를 증명한 철학자’였다. 《달리기와 존재하기》는 그가 평생 달리며 깨달은 사유의 결과물이다. 이 책은 운동법이나 기록 단축의 노하우를 다루지 않는다. 대신 “왜 달리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쉬언에게 달리기는 육체를 단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고 삶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철학적 수행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문제를 안고 달린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답을 찾는다.”
그의 말처럼 달리기는 삶의 축소판이다. 숨이 차고, 다리가 무겁고,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 존재인지, 또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를 깨닫는다.
쉬언은 달리기를 ‘생각의 행위’로 정의한다. 그는 달리는 동안 머리가 아니라 몸이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일정한 리듬으로 이어지는 호흡과 심박, 근육의 수축과 이완 속에서 인간은 ‘의식의 순수한 흐름’을 경험한다. 그 순간, 달리기는 육체의 활동을 넘어선 정신적 명상으로 변한다.
이 책에서 쉬언은 자신이 의사로서, 또 철학자로서 배운 지식을 버리고 오직 달리는 몸의 감각에 집중한다. 그는 ‘몸의 언어’를 이해하는 법을 제시한다. 고통과 피로를 회피하지 않고 그 속으로 들어가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한다. 쉬언에게 달리기란 고통을 통과해 자신과 만나는 ‘몸의 사유’다.
조지 쉬언은 달리기를 ‘존재의 연습’이라 표현한다. 달리며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사회적 지위나 역할이 아닌, 오직 ‘존재하는 하나의 인간’임을 자각한다. 달릴 때 그는 의사도, 가장도, 작가도 아닌 ‘순수한 나 자신’으로 돌아간다.
이 경험은 현대인의 삶에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 우리는 늘 ‘해야 하는 일’에 매여 살지만, 달리기 속에서만큼은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저 뛰고, 숨 쉬고, 존재하면 된다. 쉬언은 이것이 ‘살아 있음’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달리기를 통해 인간은 ‘행동하는 존재’에서 ‘존재하는 존재’로 전환된다.
쉬언은 달리기를 통해 ‘영적 자유’를 체험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나는 달리며 신을 만난다”고 말했다. 여기서 신은 종교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잠든 ‘완전한 자기 자신’이다. 숨이 가빠오고, 다리가 무너지는 극한의 순간, 인간은 오히려 정신적으로 해방된다.
이 지점에서 쉬언의 철학은 불교의 ‘수행’, 기독교의 ‘은총’, 혹은 니체의 ‘극복의 의지’와도 닮아 있다. 달리기는 신체적 고통을 통해 영혼이 성장하는 통로가 된다. 달리는 행위 자체가 기도이며, 반복되는 발걸음은 일종의 명상이다.
《달리기와 존재하기》는 달리기라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인간 존재의 심층을 탐구한 철학적 명저다. 쉬언은 우리에게 ‘달리기’가 아니라 ‘살아가기’를 가르친다. 그는 말한다. “나는 달리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달린다.”
이 문장은 현대인의 삶에도 유효하다. 경쟁과 성취의 피로 속에서 우리는 달리기를 통해 ‘존재의 리듬’을 되찾는다. 달리기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여정이며, 삶이라는 장거리 레이스에서 잠시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게 만드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