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인생 2막의 문턱에서: ‘퇴직’의 진짜 의미를 다시 보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단지 직장의 문을 나서는 일일 뿐이다.”
이 말은 최근 70세 현직 스타트업 멘토의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대기업을 퇴직한 후에도 청년 창업자들과 일하며, “퇴직은 나를 쉬게 하는 일이 아니라, 내 경험을 새롭게 사용하는 시작이었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퇴직’은 여전히 마침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100세 시대, 평균 수명 84세인 지금, 퇴직 후의 20~30년은 인생의 3분의 1에 달한다. 이 긴 시간을 ‘쉬는 시간’으로만 두기에는 너무 길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60세 이상 근로자의 68%가 “경제적 이유보다 사회적 관계 유지와 자기실현을 위해 일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생계만이 아니라 ‘존재감’을 위해 일하는 시대가 왔음을 보여준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역할의 전환이다. 조직의 구성원에서 개인 브랜드로, 직장인의 시간에서 자율인의 시간으로 바뀌는 과정이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이 전환을 준비하지 못한 채 퇴직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이 칼럼은 그 ‘준비되지 않은 퇴직’이 어떻게 ‘두 번째 기회’로 바뀔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2. 은퇴세대의 현실 — 경험은 넘치지만, 자리는 부족하다
대한민국의 60+세대는 역사상 가장 교육 수준이 높고, 기술 습득 능력이 빠른 세대다. 하지만 현실의 일자리 시장은 그들의 경험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이 든 인력은 비효율적’이라는 고정관념은 여전하고, 많은 기업은 55세 이후를 ‘퇴출 시점’으로 본다.
고용정보원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60대 이상 재취업자의 70%가 단기·비정규직에 머물러 있다. 대부분 단순 서비스업, 경비·시설관리 등의 직종으로 몰려 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본인의 경력과 무관한 일에 종사한다. 반면, 일본이나 독일은 60+세대의 숙련도를 자산으로 본다. 일본의 ‘시니어 프로페셔널 제도’는 기업이 은퇴자를 파트타임 멘토나 기술자문으로 재고용하도록 장려하고, 독일은 ‘은퇴자 기술 공유 프로그램’을 통해 숙련 기술을 청년층에 전수하도록 한다.
한국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있다.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 ‘퇴직인턴제’ 등 정부의 시니어 재취업 정책이 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단기성 프로젝트에 머물러, 지속가능성이 낮다. 진짜 문제는 ‘기회의 부족’이 아니라 ‘기회의 질’이다. 60+세대가 축적한 경험을 사회적 자본으로 환원할 수 있는 구조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것이다.
3. 변화하는 노동시장, 60+세대의 새로운 생존 전략
새로운 세대는 퇴직을 ‘리타이어(retire)’가 아니라 ‘리디자인(redesign)’으로 받아들인다. 실제로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60대의 47%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다고 답했으며, 그중 절반은 창업을 꿈꾼다.
은퇴 이후 생존 전략은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된다. 전환, 협업, 디지털.
첫째, ‘전환(Transition)’은 경력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30년의 회계 경험을 가진 사람이 지역 사회 회계 멘토로 전환하거나, 교사가 교육 컨설턴트로 변신하는 식이다. 자신의 ‘업(業)’을 ‘역할’로 재정의하는 것이 핵심이다.
둘째, ‘협업(Collaboration)’은 혼자서 일하지 않는 것이다. 공유오피스, 지역협동조합, 재능기부 네트워크를 통해 세대 간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셋째, ‘디지털(Digital)’은 생존의 필수 언어다. 스마트폰으로 회계 보고서를 작성하고, 줌(Zoom)으로 수업을 진행하며, 인공지능 도구로 강의를 설계하는 70대도 등장했다. 기술은 더 이상 ‘젊은 세대의 도구’가 아니다.
결국 60+세대의 경쟁력은 배우는 속도보다, 배우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퇴직 후 삶은 ‘적응의 속도전’이 아니라 ‘의미의 재발견’이다.

4. 기술보다 태도가 경쟁력이다: 평생 현역의 시대를 위하여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핑크는 “노년은 인생의 겨울이 아니라, 새로운 봄의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60+세대의 일과 삶의 균형을 잘 요약한다. ‘평생 현역’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오래 일하자는 뜻이 아니다. 일의 방식이 달라지고, 노동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기업도 달라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LG는 ‘시니어 크리에이터’ 제도를 도입해 퇴직 인력을 재교육 후 유튜브, 블로그 콘텐츠 제작자로 육성하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시니어 스타트업 캠퍼스’를 운영해 50세 이상 창업자를 위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 이런 흐름은 ‘시니어 경제(silver economy)’로 불린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태도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다시 배우고, 다시 시도하는 자세가 결국 인생 2막의 경쟁력이 된다. 은퇴는 일을 그만두는 일이 아니라, 일의 의미를 새로 쓰는 일이다.
두 번째 인생의 주어는 ‘당신’이다
퇴직 이후의 인생은 ‘회사 없는 세상에서 나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의 여정이다. 60+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젊음이 아니라 방향이다. 일자리 시장은 냉정하지만, 사회는 그들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커리어는 끝난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계속되는 중이다.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숨기고 있다.”
이제 퇴직은 ‘은퇴’가 아니라 ‘리턴’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