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원지방법원이 1970~80년대 국가의 ‘부랑인 단속 정책’에 따라 사회복지시설에 강제로 수용된 피해자에게 국가가 11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는 내무부 훈령 제410호(1975년 제정)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위헌ㆍ위법한 국가행위였음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판결로 주목된다.
■ “국가의 불법적 단속과 위탁수용, 인권침해 명백”
재판부(재판장 김병국)는 10월 16일 선고에서, “국가가 헌법상 신체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률 근거 없는 훈령으로 부랑인을 단속ㆍ수용한 것은 명백한 위법행위이며, 국민의 인간 존엄성을 침해한 국가작용”이라고 밝혔다.
법원은 특히 1975년 내무부가 발령한 '부랑인 단속 및 수용지침(내무부훈령 제410호)이 ①법률유보 원칙 위반, ②영장주의 위반, ③인권침해적 단속ㆍ수용 강행이라는 점에서 헌법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 부산 재생원 사건…"국가가 방조ㆍ묵인한 인권유린"
이번 사건의 원고 A씨와 고(故) K씨는 1970년대 후반 내무부 훈령에 따라 부산 사회복지법인 D(옛 부산 재생원)에 강제로 수용되어 8년여 간 강제노역과 구타 등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
당시 해당 시설은 국가가 부산시에 위탁하여 운영한 부랑인 수용소로, 수용자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 장기간 노동에 동원되었으며, 시설장 E씨는 이후 감금ㆍ횡령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재판부는 “국가는 부랑인 단속과 위탁수용 과정을 감독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폭력과 강제노역이 자행되는 것을 묵인ㆍ비호했다”며, “이는 공무원의 직무상 주의의무를 명백히 위반한 것으로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 소멸시효 주장도 기각
국가는 “수십 년이 지난 사건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은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항변했으나, 법원은 ‘과거사정리법’상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는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진실ㆍ화해위원회의 공식 결정(20022년 8월)이 있기 전까지는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알 수 없었다”며 청구가 적법하게 제기됐다고 밝혔다.
■ 피해자 위자료 총 11억 원 인정
법원은 원고에게 7억 3천만 원, 고(故) K씨에게 3억 7천만 원의 위자료를 인정하고, K씨의 몫은 배우자인 원고가 상속받도록 했다.
이에 따라 국가는 원고에게 총 11억 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오히려 인권침해를 자행했다”며, “이번 판결은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고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국가의 반성을 촉구하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2022년 진실ㆍ화해위원회가 ‘부산 D 인권침해사건’을 공식 인정한 이후, 피해자가 개별적으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중 지방법원에서 처음으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사례다.
이번 판결은 향후 ‘부랑인 수용시설 피해자 국가배상 소송’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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