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판 속에서도 멈추지 않은 하나님의 약속 - 역대하 36장의 언약과 회복
역대하 36장은 남유다의 마지막 장면을 기록한다. 시드기야 왕의 완고함, 제사장들과 백성의 부패, 그리고 결국 예루살렘이 불타 무너지는 장면은 인간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역대기 저자는 단지 파멸의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그는 폐허 속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언했다. 하나님의 심판은 끝이 아니라 회복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표현이었다.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에 올랐으나 애굽 왕 바로 느고에게 끌려가고, 이어 여호야김과 여호야긴, 시드기야가 차례로 왕이 되었지만 그들 모두는 하나님 앞에 악을 행했다. 예언자들의 경고에도 귀를 닫고, 백성은 우상을 숭배하며 언약을 저버렸다. 결국 하나님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통해 예루살렘을 심판하셨다. 성전은 불타고, 귀족과 젊은이들은 포로로 잡혀갔다. 인간의 교만은 무너졌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잃은 자들의 나라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이 무너짐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었다. 그것은 새 출발을 위한 하나님의 깊은 역사였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단지 건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성전이 불타 없어졌다는 것은,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임재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성전이라는 한 장소에 묶지 않으셨다. 그분의 임재는 불길 속에서도, 포로지 바벨론에서도 함께하셨다. 하나님은 무너진 돌 위에 새로운 신앙을 세우셨고, 절망 속에서도 소망의 불씨를 남겨두셨다. 불타는 성전보다 더 강한 것은 ‘언약의 말씀’이었다.
70년의 포로 생활은 징벌이었지만 동시에 회복의 과정이었다. 하나님은 그 기간 동안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셨다.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된 이 기간은 우연이 아니라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바벨론의 압제 속에서도 다니엘, 에스더, 느헤미야와 같은 신앙의 인물들이 등장해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어갔다. 포로 생활은 단절이 아니라, 언약이 정화되는 시간이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실패로 중단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분의 계획은 인간의 불순종을 넘어 더 깊어졌다.
역대하의 마지막 절은 놀랍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성전 재건을 허락하고, 백성들에게 귀환을 명한다. “하늘의 모든 나라를 내게 주신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사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역대하 36:23).
이방 왕의 입에서 ‘여호와의 이름’이 선포된 것이다. 이는 언약의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열방의 주이심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약속은 민족과 제국의 경계를 넘어선다. 고레스의 조서는 언약의 재개를 알리는 선언문이었다.
역대하 36장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문이다. 인간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정화하시고, 멸망을 통해 구속을 완성하신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메시지가 있다. 우리의 실패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무너진 것 같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역사하신다. 그분의 은혜는 심판보다 크고, 언약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