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역사] 37. 고대 류큐에 불교가 전래된 극락사의 창건

류큐 불교의 서막 - 13세기 영조왕과 선감 승려가 이끈 신앙의 전환점

동아시아 해상 교류 속에서 꽃핀 류큐의 첫 불교

극락사에서 시작된 신앙, 왕국 문화의 중심으로 발전하다

극락사에서 용복사로 이름이 변경된 현재의 표지석

 

류큐(琉球)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13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는 영조(英祖) 왕통의 통치와 당시 동아시아 해상 교류의 활발한 흐름 속에서 일본과 중국 문화를 함께 받아들이던 류큐의 정치적·문화적 개방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시기 류큐는 단순한 섬 국가를 넘어 동중국해를 잇는 중계 거점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일본 승려의 표착을 계기로 시작된 불교의 전래가 있었다.

 

불교 전래의 전환점은 임제종(臨済宗) 승려 선감(禅鑑)의 등장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1265년 일본에서 류큐의 나하(那覇) 해안으로 표착하였으며, 당시의 영조왕(英祖王)은 그를 예우하여 우라소에 구스쿠(浦添グスク) 서쪽에 사찰을 세워 주었다.


이 사찰이 바로 극락사(極楽寺)로, 훗날 “오키나와 불교의 시작점”으로 불리게 된다. 극락사의 창건은 단순한 종교적 사건을 넘어, 류큐 사회가 신앙과 학문을 받아들이며 문명화의 단계로 나아간 상징적인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시기에는 불교뿐 아니라 일본을 통해 문자와 서적, 학문 체계가 함께 전래되었으며, 이는 종교·문화가 나란히 발전하는 류큐 문명사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극락사 창건 이후 불교는 왕실과 아지(按司, 지방 영주)들의 보호 아래 왕국 전역으로 퍼졌다.

 

14세기 삿토왕(察度王) 시대에는 일본 승려 라이주 법인(頼重法印)이 왕의 명을 받아 호코쿠지(護国寺)를 건립했다. 이 사찰은 국가의 평화를 기원하는 칙원사(勅願寺)로 지정되어, 불교가 국가 제의의 일환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제2쇼씨 왕통의 3대 왕 쇼신왕(尚真王, 1477~1526)은 류큐 불교의 황금기를 열었다.


일본의 고승 카이잉쇼코(芥隠承琥)가 엔카쿠지(円覚寺)를 창건했으며, 함께 세워진 텐노지(天王寺)와 텐카이지(天界寺)는 나하의 3대 사찰로 불리며 류큐 불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17세기 초에는 일본 승려 후쿠추가 류큐에 정토종을 전파했다.


그는 염불과 함께 춤을 가르쳤는데, 이것이 훗날 류큐의 대표 전통춤 에이사(エイサー)의 기원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불교는 단순한 신앙의 확산을 넘어 류큐 사회의 문화, 예술, 정치 체제에까지 깊숙이 영향을 미쳤다.


사찰은 왕국의 행정과 학문의 중심지로 기능했으며, 승려들은 일본과 중국 문화를 잇는 지적·외교적 중개자 역할을 했다. 특히 극락사와 호코쿠지는 일본 가마쿠라 불교 건축 양식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류큐 특유의 돌담과 자연 조화를 강조한 구조로 지어져, ‘류큐식 불교 건축’의 시초로 평가된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오키나와 전투에서 주요 사찰 대부분이 불타 소실되었다. 엔카쿠지와 호코쿠지는 큰 피해를 입었으나, 일부 유구와 석탑은 복원되어 류큐 불교의 발상지로 보존되고 있다. 


현재 극락사 터는 오키나와 현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류큐 신앙과 불교 문화의 기원을 보여주는 중요한 성지로 남아 있다.

 

13세기 영조왕과 선감 승려의 만남은 종교의 수입을 넘어 문명 교류의 출발점이었다. 극락사의 창건은 류큐 사회에 불교적 윤리, 문자문화, 예술미학을 도입하며, 이후 왕국이 발전할 수 있는 정신적 기반을 제공했다. 이 사건은 류큐가 단순히 외세의 영향을 받은 변방이 아니라, 동아시아 문명권 속에서 능동적으로 사상을 수용한 해양국가였음을 보여준다.

 

고대 류큐 불교의 전래는 단순한 종교사의 한 장면이 아니라, 동아시아 문명 교류 속에서 류큐가 자주적인 문화 정체성을 확립한 역사적 기점이었다. 극락사를 중심으로 발전한 신앙과 학문은 류큐 왕국의 정치 구조와 예술, 건축, 사상 전반을 형성했으며, 오늘날에도 오키나와의 정신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작성 2025.10.31 10:12 수정 2025.10.3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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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