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의 독립운동, 3‧1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항쟁 <광주학생독립운동> 선정

이진서

학생 충돌로 물 끓듯 하는 광주(동아일보 1929.11.5.)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전국적 항일운동인 <광주학생독립운동>을 ‘2025년 11월의 독립운동’으로 선정했다고  보훈부가 밝혔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시작되어 1930년 3월까지 전국으로 확산된 대규모의 학생운동으로 3·1운동, 6.10만세운동과 함께 3대 독립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광주고등보통학교의 한국인 학생과 광주중학교의 일본인 학생들 간의 충돌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나주역 충돌에 대한 일제의 부당한 처리에 대하여 광주고등보통학교의 학생들의 분노는 최고조에 달한 상태였다. 특히 11월 3일, 일요일임에도 일왕 생일인 명치절 등을 기념하기 위해 등교해야 했던 광주고등보통학교 한국인 학생들은 광주중학교 일본인 학생들과 다시 충돌하였고, 이는 대규모 항쟁과 가두시위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운동은 11월 중순부터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목포, 나주, 서울 등에서 학생들이 동조 시위를 벌였으며, 특히 서울에서는 12월 9일 학생들의 대규모 연합시위가 일어났고, 일제는 경찰 2,000여 명을 동원하여 1,200여 명의 학생들을 단속하였다. 1930년 1월부터 3월까지는 전국 각지의 학교에서 시위가 이어졌고, 이 소식이 해외 한인사회에 알려지자 중국, 만주, 일본, 러시아, 하와이, 쿠바 등지의 한인들이 동조 시위에 나섰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청년들의 각성으로 이어져 이후 학생, 농민, 노동 운동에 투신하며 항일운동을 이어가는 등 1930년대 민족운동 발전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또한, 해외 한인사회의 단합과 독립운동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단순한 지역 학생들의 저항이 아닌 일제의 식민통치를 부정하고 민족 독립을 외친 거국적인 투쟁으로, 1920년대에서 1930년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독립을 위한 민족의 정신과 역량을 크게 발전시켰다.

 

국가보훈부는 2025년 이달의 독립운동을 선정하기 위해 1개월간 국민의 추천을 받았다. 국민이 추천한 11월의 독립운동은 독립문 건립(1897), 대한협회 설립(1907), 부민단 조직(1912), 의열단 조직(1919), 대한독립군비단(1919),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1932), 경성방송국 단파라디오 수신사건(1943) 등이 있다.

 

작성 2025.11.01 08:55 수정 2025.11.01 09:16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정명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