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가 권력의 장이 될 때

중국인 출입금지 카페를 인종차별이라 부르지 못하고

카페는 어떤 공간인가? 이름만 봐도 커피와 관련됐으리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본디 ‘카페’라는 명칭은 음료·술을 뜻하는 아랍어 ‘카흐와’에서 유래해 유럽을 거치며 ‘카페’가 되었다고 한다. 커피가 아니라 웬 음료와 술이냐고 할 수 있지만, 이는 13세기 중반 아라비아에서 이슬람 교리에 따라 술 대신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배경에서 나온 단어라는 점을 참조해야 한다. 이러한 ‘카페’는 초기에 커피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점차 커피를 마시는 장소를 지칭하는 말로 변모해 현재의 ‘커피나 음료, 술 또는 가벼운 서양 음식을 파는 집’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인에게 ‘카페’는 어떤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을까? 밥 먹고 습관적으로 들르는 장소, 뷰를 즐기는 장소, 커피 또는 음료를 즐기는 장소, 디저트를 즐기는 장소, 분위기를 즐기는 장소, 수다 떠는 장소, 일하는 장소, 공부하는 장소, 쉬는 장소 등 그 의미는 다양할 것이다. 프랜차이즈는 시즌 메뉴 먹는 맛에 가고, 개인 카페는 분위기 즐기는 맛에 가고, 또 어디는 커피가 맛있어서, 어디는 소금빵이 맛있어서 간다. 카페에 노동하러 가는 사람과 공부하러 가는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 카페는 사람들에게 휴식과 즐거움의 장소가 된다.


그러나 이 휴식과 즐거움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다. 앞에서 일하는 사람과 공부하는 사람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 놓고 왜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나 싶겠지만, 그 뜻이 아니다. 카페는 누군가에겐 휴식과 즐거움의 장소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혐오와 차별의 장이 된다.


중국인 출입금지를 내건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 인스타그램 공지를 게시한 X(구 트위터) 게시물. / X 캡처


지난 10월 24일, X(구 트위터)에서 한 트윗이 일파만파 확산되었다. 트윗은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 카페의 인스타그램 계정 캡처 사진과 함께 “Coffee shop in Seoul, on public Instagram profile: "we do not accept Chinese guests"”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진 속 인스타그램 계정 소개란에 미안하지만 중국인 손님을 받지 않겠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앞선 게시물을 인용하며 정원오 성동구청장을 태그해 해당 카페에 대한 제재를 가할 방법이 없는지 묻는 트위터 이용자의 X(구 트위터) 게시물. / X 캡처

 

좌측 게시물에 해당 업장을 설득해보겠다고 답하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X(구 트위터) 게시물. / X 캡처

























10월 26일, 한 트위터 이용자가 해당 트윗을 인용하며 정원오 성동구청장에게 “이런 인종차별적인 가게가 성동구에 있는데 어떻게 제재할 방법이 없을까요?”라는 트윗을 남겼다. 이에 정 구청장은 “보내주신 우려의 마음 저 또한 깊이 공감합니다. 특히 성수동이 국내 관광객은 물론 해외 여러 나라에서 찾아와 주시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최대한 해당 업장을 설득해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설득이 통했을까? 통했다. 성동구청 직원, 지역 상인 대표들이 해당 카페의 사장과 대화한 후 매장 내 ‘중국인 출입금지’ 팻말을 떼고 중국인 손님의 출입을 막지 않는 것으로 방침을 전환했다는 것이다. 외국인 손님이 많은 성수동에서 중국인 출입금지와 같은 조치가 상권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기존 조치를 철회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스타그램 계정 소개란에 적힌 “We’re sorry? we do not accept Chinese guests” 문구에 대해서는 며칠 시간을 달라며 결정을 유예했다. 10월 31일, 해당 카페의 인스타그램 게시물로 올라온 휴무 공지에 따르면 ‘주말이 지나고 생각을 글로 정리해 전하겠다’고 밝혔다.


10월 2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정 구청장이 설명한 중국인 출입금지 방침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한 중국인 인플루언서가 가게에 방문해 중국어로 통화를 했고, 이를 들은 다른 고객이 항의한 것 같다는 것이다. 정 구청장은 해당 카페가 이러한 한국인 고객의 항의를 방지하기 위해 중국인 출임금지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았다. 이 설명만으로 상황이 전부 이해되는가? 중국인이 가게에 들어와 중국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가게에 항의한 고객, 이를 받아들여 중국인 손님을 가게에서 내보낸 점주, ‘중국인 좀 받지 말자’, ‘무비자 입국 허용 집어치워라’, ‘사장이 자기 가게 손님 가려 받겠다는데 니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임’ 등의 말로 동조하는 사람들. 해당 카페의 사장은 개인 계정으로 가게에서 쫓겨난 중국인 손님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스토리를 재게시하며 ‘인간적으로 유감스럽지만 이게 나다’라는 문구를 남겼다.


중국인 출입금지 카페 점주의 개인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공유한 X(구 트위터) 게시물. / X 캡처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보며 자연스레 노 키즈 존(No Kids Zone)이 떠올랐다. 대상이 달라졌을 뿐 논리는 비슷하다. 이번 정 구청장의 트윗에도 ‘노 키즈 존이나 노 시니어 존 나왔을 때부터 했어야지’라는 반응이 있었다. 물론 이 뒤에 이어진 ‘외국인 범죄는 중국인 범죄가 대부분인데 당연히 불안하지’라는 발언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전자의 주장에는 동의한다. 바로 여기서 인종, 성별, 장애, 성적 지향 등 특정 차별 사유를 포함한 모든 생활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이 드러난다. 물론 앞서 인용한 인종차별적 발언의 발화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정 구청장은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해도 이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음을 지적했다. 이는 현행법이 ‘계약 자유의 원칙’, ‘사적 자치의 원칙’을 대원칙으로 삼아 국가가 개인 간의 사적인 계약 관계에 개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1조 평등의 원칙과 ‘합리적인 이유 없이 출신 국가, 민족, 인종 등을 이유로 상업 시설 이용과 관련해 특정한 사람을 배제하는 행위를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규정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도 이러한 차별행위를 확실히 제재할 수 없다. 헌법 제11조 평등의 원칙은 국가가 국민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만 해석되며, 국가인권위원회법은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정 구청장은 이를 제재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그러한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이번 사안이 그러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정말 이번 사안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사회적 합의로 가는 과정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사회적 합의로 가기만 할 것인가? 애초에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도대체 누가 동의하고, 몇 명이 동의해야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할 수 있는가? 이 과정이 과하게 지지부진하다는 생각이 든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2007년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최초의 기본법’이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안’이라는 이름으로 입법예고 되었다. 그러나 매번 혐오 세력의 반대에 굴복해 19년째 국회를 나오지 못하고 있다. 시시포스가 따로 없다. 사회적 합의가 안 돼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못한다는 건 핑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사회적 합의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정치인의 역할이다.


앞서 카페가 누군가에겐 휴식과 즐거움의 장소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혐오와 차별의 장이 된다고 썼다. 사실 이건 정확한 말이 아니다. A에게 휴식과 즐거움을 주고, B에게 혐오와 차별을 행하는 게 아니다. 카페를 즐겁게 이용하던 A도 어느 순간 카페에서 혐오와 차별을 경험할 수 있다. 어리거나, 늙거나, 어린이를 동반했거나, 영어를 읽을 만큼 교육받지 못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특정 인종이거나…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기실 내가 차별의 당사자가 될 수 있으니 차별하지 말라는 요지는 아니다. 단순히 개인이 바꿀 수 없고, 바꿀 필요도 없는 이유로 타자를 배척하는 게 옳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방치하면 카페라는 일상과 가깝고, 작아 보이고,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되는 영역에서부터 공적이고 삶과 직결되는 영역까지 이 혐오와 차별이 번질 것이다.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봐야 한다. ‘얘가 이러니까 차별을 하지. 애초에 이건 차별도 아니고 권리’라는 말은 언뜻 보면 타당해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얘’의 자리에 그 사회의 권력자를 넣는다면? 결과는 분명히 달라진다. 차별하기 쉬운 대상만 차별하는 것이다. 선택권을 박탈한 뒤에 널 차별하지 않는 다른 곳에 가라는 말이 힘을 잃기를, 카페가 모두에게 열린 장소이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노희주, 2025, "'중국인 출입 금지' 카페 결국 휴무… "심장 짓눌리는 듯한 통증"", 『이투데이』, 10월 31일, https://news.nate.com/view/20251031n09913 (2025.11.1. 접속)


손수형, 2025, "성수동 카페 "중국인 손님 안 받습니다" ... 구청장도 설득밖에 못 하는 이유", 『로톡뉴스』, 10월 28일, https://lawtalknews.co.kr/article/0P41JR9QBLXH (2025.11.1. 접속)


홍성수, 2025, "혐중...정치가 답하라 [홍성수 칼럼]", 『한겨레』, 10월 29일,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26022.html (2025.11.1. 접속)


 


작성 2025.11.01 22:08 수정 2025.11.2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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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