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이나 SNS를 둘러보다 보면 사회초년생을 위한 ‘어른의 조언’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자만하지 말 것, 내가 한 일을 남이 알아주기를 너무 바라지 말 것, 중간보고를 자주 할 것, 체력과 자기계발에 힘쓸 것 등. 그 말들에는 공감이 간다. 나 역시 같은 초년생으로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한다.
물론 어떤 조언은 주제넘은, 꼰대같은 이야기로 들릴 때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매스컴에서 자주 마주치는 '어른의 조언'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이들을 크게 세 집단으로 분류해보았다. 이는 과거에 얽매인 사람, 타인에 얽매인 사람, 그리고 자신에 얽매인 사람이다.
먼저, 과거에 얽매이는 사람은 주로 어릴 적에 자신이 이룬 성과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컨대, 운 좋게 들어온 대학을 자신의 순수한 능력으로 이해하고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었다.우리 사회의 학벌 중심 문화가 낳은 결과이겠지만, 그런 친구들을 볼 때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기에 그들은 그곳에 갇히고 성장하지 못한다. 한편 그중에는 반대로 자신의 한계를 고등학교 시절 성적에 한정시키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미 실패를 한 번 맛봤다는 이유로 더는 도전하고 싶지 않아 하는 얼굴의 친구들이었다.그들은 우스갯소리처럼 이번 생은 망했다며 세상 초연한 듯한 말을 내뱉곤 했다. 더욱, 마음을 안쓰럽게 만드는 말이다.
그리고 타인에 얽매이는 사람은, 주변의 평가로만 자신을 정의하는 또래들이었다. 부모, 선배, 교수님 등 타인의 시선 안에 자신을 가두고 규정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혼자서 일하기를 어려워하고 눈치를 자주 보며,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계속 후회하곤 했다. 누구나 그랬던 적이 한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공감이 많이 가 유독 마음이 쓰였던 친구들이었다. 사회초년생은 항상 주위로부터 평가를 받는 위치에 놓이고, 능력을 끊임없이 입증해야 하기에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불가피한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프로젝트나 일을 이끌고 나가야 하는 처지에 놓일 때 그들이 여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오히려 눈치를 너무 봐서 매듭을 짓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자신에 얽매여 사는 사람. 이들은 내면에 확실한 기준을 지니고 자신을 한계에 몰아붙이는 완벽주의자 친구들이다. 그들은 세 부류 중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정적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그 연료가 다 타버리는 건 아닐까, 전체 시야를 넓히기도 전에 이미 길을 확정지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들 때가 있다. 이들이 기존의 자신을 비우고 새롭게 만들 수 있을까. 게다가 타인의 시선을 이해할 수는 있을까. 이들에게 발견되는 경향은, 자신을 중심으로만 세상을 해석해서, 타인의 관점을 잘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는 거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하기 어려워 하고, 다가가지 않는다. 내가 봤던 한 친구는 이처럼 고집이 많아, 남들과 사사건건 부딪히며 주위를 내내 힘들게 만들곤 했다. 얼마 못가 혼자 외롭게 일하던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살면서 사람들에게 제대로 조언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럴만한 지위도 아니었고, 어떤 멘토 역할을 받아도 내 코가 석자였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세 단계를 모두 지나왔다. 과거의 자신에게 매달렸고, 타인의 평가에 흔들렸으며, 내 기준에 스스로 지쳤던 시기가 있었다. 나 역시 과거의 나에 매달렸고, 타인의 평가에 흔들렸으며, 내 중심으로만 세상을 이해하려 했다. 그때 조언해준 다른 사람들 덕분에 잘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나는 조금은 다른 위치에 서 있다.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살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다시 세우려 하고 있다. 과거, 타인, 내면의 기준을 모두 오가며 균형을 찾아나가고 있다. 결국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나만큼 중요하단 사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 친구들에게 감히 이런 조언을 해보고 싶다.
먼저. 과거의 성공이나 실패를 재구성해보자.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여보자. 과거가 내 발목을 붙잡고 있다면, 지금 그 과거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보면 된다. 그때와 지금이 다르고, 그건 아름다운 추억일 뿐이다. 어리석었던 행동을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야말로 시간이 주는 특권이 아니냐고 얘기해주고 싶다.
또 타인과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라고, 자기 미래를 혼자서 그려보라고 말하고 싶다. 남들도 다 완벽하지는 않다. 그 말들은 그들의 의견일 뿐이다. 타인으로부터 배우되, 거기에는 혼자 정리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타인의 부족함도 살펴볼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미완성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 때로는 불완전함을 인정할 줄 아는 것이 오히려 용기임을 깨달았으면 한다. 타인에 대한 비판은 자유지만, 그들의 입장이 되어 그 선택을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한다.
결국 성장이란 나와 타인을 오가며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어릴 적 우리는 어른으로부터 주로 ‘혼자 서는 법’을 배웠지만, 이제 어른이 되어 다시 배워야 하는 건 ‘함께 서는 법’이 아닐까. 타인의 기대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닫히지 않은 마음을 유지하는 일이야 말로 제일 어렵다. 관계는 세상 그 무엇보다 나를 가장 많이 흔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관계는 그만큼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는 거다. 내가 어떤 것에 얽매여 있는 사람인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고, 비로소 성장하게 된다. 사실 어떤 관계망에서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은 오히려 상대가 중시했던 것에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고, 큰 가치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것을 오히려 기회로 삼을 필요도 있다. 그때 생각해보지 않으면, 영영 못 배우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지금의 나는 얽매였던 것에 오히려 감사해 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조금 더 나를 이해하게 된 사람. 아마 이것이 초년의 내가 도달할 수 있었던 가장 단단한 성숙의 형태가 아닐까 싶다.
K People Focus 아사달97 칼럼니스트
대화하는 개인주의를 공부하는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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