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목소리로 두 세계를 품다 – 테너 최원혁, 리사이틀 ‘Sound of Baritenor’로 예술의 경계를 허물다

바리톤의 깊이와 테너의 빛을 한 목소리에 담은 예술적 실험


지난 10월 31일, 서울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 늦가을의 공기가 서늘하게 물든 저녁, 한 목소리가 천천히 공연장을 채워나갔다. 테너 최원혁의 리사이틀 〈Sound of Baritenor〉는 단순한 독창회가 아닌, 한 예술가의 철학과 탐구가 응축된 예술적 선언의 장이었다. ‘한 목소리로 두 세계를 담는다’는 이번 공연의 주제는, 그가 오랜 세월 걸어온 길의 결과이자 시작이었다.


공연의 첫 음이 울리자 관객들은 이내 숨을 죽였다. 테너의 투명한 빛깔과 바리톤의 따뜻한 깊이가 한 호흡 안에서 공존하는 소리는 낯설면서도 묘한 울림을 자아냈다. 테너 최원혁은 한 음역에 머무르지 않았다. 마치 화가가 서로 다른 색을 섞어 새로운 빛을 만들어내듯, 그는 두 음역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전혀 새로운 음악적 스펙트럼을 선보였다.


그는 학문과 예술을 모두 꿰뚫는 보기 드문 성악가로 평가받는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폴란드의 *프리데리크 쇼팽 국립음악대학교(Uniwersytet Muzyczny Fryderyka Chopina w Warszawie)*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박사논문 〈바리톤 음역의 소리를 테너 음역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과 그 과정의 특성에 관한 자기 경험 기반 연구〉는 성악 발성 연구 분야에서 혁신적 시도로 주목받았다. 단순히 음역을 확장하는 기법 연구를 넘어, 인간의 목소리가 지닌 잠재력과 그 예술적 확장 가능성을 증명한 논문이었다.


그러나 테너 최원혁의 진정한 성과는 연구실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완성됐다. 그는 학문적 탐구를 실천으로 옮겼고, 이번 *〈Sound of Baritenor〉*는 그 결과물이었다. 그에게 ‘노래’는 곧 ‘실험’이자 ‘사유’였다. 바리톤의 풍부한 공명과 테너의 찬란한 고음을 하나의 유기체처럼 결합해내는 그의 시도는 한국 성악계에서도 유례가 드물다.


공연 프로그램 또한 그의 예술적 철학을 그대로 반영했다. 베르디의 〈Aida〉, 마스네의 〈Werther〉, 로시니의 〈Il Barbiere di Siviglia〉 등은 화려한 기교와 깊은 해석이 모두 요구되는 명곡들이다. 테너 최원혁은 이 곡들을 통해 테크닉보다 ‘이야기’를, 화려함보다 ‘진정성’을 택했다. 베르디의 「Celeste Aida」에서는 테너의 빛나는 고음 위에 바리톤 특유의 짙은 울림을 더해 낭만주의적 강렬함을 표현했고, 마스네의 「Pourquoi me réveiller」에서는 인간 내면의 슬픔과 열정을 진중하게 담아냈다. 로시니의 작품에서는 경쾌한 리듬감과 유려한 발성이 돋보이며, 청중들에게 활기찬 생명력을 전달했다.


무대의 또 다른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백원주였다. 유럽 무대에서 쌓은 탄탄한 커리어를 바탕으로, 그는 테너 최원혁과 완벽한 호흡을 이루며 음악적 균형을 이끌어냈다. 백원주의 섬세한 터치는 단순한 반주를 넘어, 성악가와의 감정적 대화를 완성시키는 예술적 동반자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은 눈빛과 호흡만으로도 교감하며, 피아노와 목소리가 하나의 악기처럼 엮이는 순간을 만들어냈다. 그들의 호흡 속에서 관객들은 음악이 ‘소리의 조화’임을 넘어 ‘감정의 언어’임을 실감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테너 최원혁이 보여준 가장 큰 미덕은 ‘기교보다 진심’이었다. 그는 화려한 발성보다 인물의 감정에 몰입하는 해석을 택했고, 음악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그의 노래는 단순히 잘 다듬어진 음이 아니라, 한 인간이 예술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는 여정처럼 들렸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은 오랫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누군가는 “하나의 목소리로 이렇게 두 가지 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감탄했고, 또 다른 이는 “지식과 감성이 결합된 새로운 성악의 방향을 본 것 같다”고 평했다.


리사이틀 *〈Sound of Baritenor〉*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테너 최원혁이라는 예술가가 자신에게 던진 물음에 대한 해답이자, 성악의 미래에 대한 제안이었다. 바리톤의 따뜻한 울림과 테너의 찬란한 음색이 한 목소리 안에서 만나는 순간, 관객들은 인간의 목소리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느꼈다.


그는 공연 후 인터뷰에서 “음악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잇는 언어”라며, “앞으로도 학문적 연구와 무대 실천을 병행하며 진정한 예술의 의미를 탐구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번 무대가 보여준 완성도와 깊이를 생각하면, 그의 다음 행보에 대한 기대는 자연스럽다.


‘한 목소리로 두 세계를 담았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테너 최원혁의 이번 무대는 한국 성악계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순간이었으며, 학문과 예술이 만날 때 얼마나 거대한 울림이 탄생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역사적 장면이었다.














작성 2025.11.02 09:10 수정 2025.11.0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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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