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시조의 종결, 전통은 마침표가 아니었다
당신은 시조를 읽을 때, 마지막에 마침표를 의식한 적이 있는가?
시조의 끝, 그 조용한 ‘점 하나’가 당신의 감정을 막기도 하고, 열어젖히기도 한다.
시조는 한국의 대표적인 정형시이다. 3장 6구 구조, 고정된 음보율, 종결 어미를 통해 시적 리듬과 정서를 완결해 왔다. 고시조는 창(唱), 즉 입으로 읊는 구술 문학이었기에, 문장 부호 없이도 리듬과 어미만으로 충분한 종결감을 전달했다. 특히 종장(마지막 행)은 정서적 반전과 낙차를 통해 감정을 마무리 짓는 기능을 수행했다. ‘–노라’, ‘–도다’, ‘–로다’와 같은 종결 어미는 단지 문장 끝이 아니라 정서의 정점이었다.
마침표는 당연한 장치가 아니었다. 활자 시대가 도래하면서 마침표는 현대 시조 속에서 ‘당연한 장치’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옛 문헌에서도 고시조는 줄글로 기술하였다. 현대적 마침표의 개념은 없었다. 이는 정서적 여운을 남기는 고시조 특유의 종결 방식이 구조적으로 탄탄하게 설계였음을 뜻한다.
2. 현대 시조의 마침표, 새로운 기호의 등장
20세기 이후 문자 중심의 인쇄 문학 시대가 도래하면서, 시조에도 마침표 같은 문장 부호를 본격 도입했다. 특히 현대 시조에서는 마침표 사용이 시적 전략의 일환으로 다양화를 이루었다.
마침표는 단순한 구두점이 아니라, 감정의 닫힘과 해석의 종결을 유도하는 ‘기호 권력(symbolic power)’으로 작동한다. 프랑스 사회언어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말했듯, 오늘날 기호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맥락 속에서 권력을 행사하며, 독자의 해석을 제한할 수 있다. 마침표 역시 이러한 ‘기호 권력’의 작동 사례이다.
또한, 마침표 없는 시조는 프랑스 기호학자 바르트(Roland Barthes)가 말한 ‘저자에서 독자로의 권력 이동’을 상기시키며, 독자의 해석 자유를 강조한다. 종결 어미에 의존한 해석은 저자 중심의 독법을 강화하지만, 마침표의 생략은 독자 중심 해석으로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3. 현대 시조의 마침표 전략 세 가지
현대 시조에서 마침표 사용 방식은 대체로 세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 각 유형은 정서 전달 방식과 해석 가능성에 다르게 작용한다.
생략형은 마침표를 쓰지 않는다. 전통 고시조의 형식을 계승하며 여운과 정서적 열림을 강조한다. 독자는 열린 결말 속에서 해석에 능동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고시조는 마침표 없이 종결 어미만으로 정서를 마무리한다. 이는 고시조와 현대 시조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삽입형은 각 장 끝 두 곳 이상에 마침표를 철저하게 찍는다. 시적 단락을 분절하여 감정을 정리하고 종결감을 극대화한다. 이는 자유시의 마침표 전략과 유사하다. 예를 들면, 한용운의 「심우장(尋牛裝)·1」과 안확의 「무궁화」는 초장, 중장, 종장의 끝마다 마침표를 찍었다.
혼용형은 특정 장의 한 곳에만 마침표를 사용한다. 정서의 흐름을 조절하고, 리듬에 층위를 부여하는 장치로 활용한다. 예를 들면, 조운의 「추운」에서는 종장에만 마침표를 찍었다. 이는 갑작스러운 계절 변화의 절단감을 강조한다. 현대 시조에서 종장에만 마침표를 찍는 것은 종결을 의미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김상옥의 「촬영」 1연에는 초장에만, 「강설」 2연에는 중장에만 마침표를 장치했다. 이는 시적 이미지와 정서를 계속 확장하려는 시인의 의도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은 시조의 정형적 구조 안에서 새로운 실험을 가능케 하며, 마침표가 정서와 해석에 미치는 영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4. 마침표는 감정의 봉합인가, 해석의 억압인가
마침표는 때로 독자에게 명확한 정서를 제시해 안도감을 줄 수 있지만, 동시에 감정의 흐름을 멈추고 여운을 차단하는 ‘닫힘의 기호’일 수 있다. 마침표 없는 시조는 끝난 후에도 여백을 통한 진동과 여운을 남긴다. 이는 독자 안에서 지속한다. 반면, 마침표를 찍은 시조는 감정을 ‘봉합’하여 독해의 자유를 제한하기도 한다.
특히 종결 어미가 본래 감정을 자연스럽게 마무리 짓는 기능을 하는 시조에서, 마침표는 그 기능을 중복하거나 심지어 억누르는 장치일 수 있다. 마침표가 없는 시조가 정서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도한다면, 마침표를 찍은 시조는 단정적이고 이성적인 ‘해석의 닫힘’을 유도한다.
5. 결론: 마침표를 찍을 것인가, 남길 것인가
오늘날 현대 시조에서 마침표는 단순한 문장 부호가 아니다. 그것은 시인의 창작 전략이며, 독자 해석의 방향을 설계하는 기호이다. 마침표는 구조적 완결성과 정서적 종결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해석의 여백을 줄인다. 반대로 마침표의 생략은 의미의 확장과 정서적 여운을 가능하게 하지만, 현대 독자에게는 다소 불완전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결국, 마침표는 ‘닫힘’과 ‘여백’ 사이를 오가는 문학적 기호이다. 시조가 고전과 현대, 구술과 문자, 정형과 자유 사이에서 끊임없이 조율해 온 것처럼, 마침표 역시 시조라는 갈래 안에서 의미의 균형을 조절하는 도구이다.
시인은 이제 묻는다.
“마침표를 찍을 것인가, 생략할 것인가?”
편집자의 권유, 독자의 기대, 활자 매체의 관습 속에서 시인은 고민한다. 어쩌면 우리는, 마침표 없는 고시조의 작법처럼 종결 어미에 더 오래 머물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고시조의 정서는 말끝이 아니라, 끝맺지 않음에서 시작했다. 마침표가 없던 자리 앞에서는 낙차가 있었고, 뒤의 여백에서는 정서의 여운이 흘렀다.
지금, 현대 시조는 다시 묻는다. 당신은 그 낙차를 닫을 것인가, 남길 것인가?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겸임교수
저서 : 평론집 10권, 이론서 3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