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의 영화에 취하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최민

단순하다. 그래서 명쾌하다. 꼬고 또 꼬아서 반전을 만들고 그 반전에 반전을 또 만들어 정신없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은 널리고 널렸다. 우린 이미 그런 이야기에 중독되었는지 모른다. 이야기에는 반전이 있어야 하고 그 반전에 쾌감을 느끼며 뇌를 쉬지 못하게 한다. 근데 우리에게 단순하고 명쾌한 이야기를 툭 던져 논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느낌이다. 몸에 물이 쫙 빠져나가고 뇌까지 말라버렸을 때 멀리서 오아시스를 발견하고는 꿀꺽꿀꺽 마시는 생명수 같은 그런 영화다. 좀 과장을 했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인간의 본질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다. 

 

이 단순한 이야기에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는 건 분명 그 안에 숨어 있는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필요한 도덕적 가치를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 어린아이가 놓인 공간의 척박하지만, 삶의 터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나 반전이 없이도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한 소년이 친구의 공책을 돌려주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여정에 우리는 모두 동참하고 있다. 그 길은 우리의 양심이 함께 가고 우리의 인간다움이 함께 가고 있는 길이다.

 

소년은 큰 눈망울로 친구의 공책 하나를 전해주기 위해 작고 느린 걸음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부지런히 걸어가면서 정의감과 책임감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어른들의 세계는 법과 규율과 책임으로 사회에 묶여 있지만 소년의 세상은 친구를 위해 그 작은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딘다.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인지, 타인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인간에게 진심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소년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묻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진정한 ‘진심’ 말이다.

 

이란의 어느 시골 마을의 한 초등학교에 숙제 검사를 하러 공포의 선생님이 들어온다. 무섭기로 유명한 선생님의 숙제 검사에 숙제를 하지 못한 소년 네마자데는 혼이 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그 모습을 본 짝꿍 아마드는 네마자데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집으로 돌아온 아마드는 숙제를 하기 위해 공책을 꺼내다가 실수로 네마자데의 공책까지 가져온 사실을 알게 된다. 선생님께 호되게 당하고 울던 네마자데의 모습이 떠올라 아마드는 걱정되기 시작했다. 한 번만 더 숙제를 안 해오면 퇴학을 시키겠다고 엄포를 놓던 선생님 말씀에 아마드는 네마자데의 공책을 집어 들고 네마자데의 집을 찾아 길을 나선다.

 

네마자데가 산다는 포시테 마을을 향해 달려가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확인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물어보지만 아무도 네마자데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한다. 상심해서 터벅터벅 길을 걷던 아마드 앞에 같은 반 친구가 나타난다. 하지만 그 친구 역시 네마자데의 집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자 아마드는 점점 초조해진다. 처음 마을로 다시 돌아온 아마드는 엄마의 심부름을 할 틈도 없이 이번에는 할아버지의 담배 심부름을 해야 했는데 이때 우연히 발견한 네마자데의 아버지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포쉬테 마을로 돌아가는 그를 쫓아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렵게 따라간 그의 집에는 네마자르데가 살고 있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 마을에는 네마자데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실망한 아마드는 걱정이 한가득한데 벌써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어느 마음씨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가 길 찾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핑계로 자신의 외로움을 아마드에게 하소연하며 꽃을 따서 아마드에게 준다.

 

“이 꽃을 공책 사이에 꽂아 두렴”

 

결국 아마드는 네마자데의 집을 찾지 못한 채 공책을 품에 안고 힘없이 집으로 돌아온다. 아마드는 밤새워 네마자데의 숙제까지 다 하고 잠이 든다. 다음날 호랑이 선생님은 어김없이 숙제 검사를 시작한다. 네마자데는 겁에 질린 채 초조하게 차례를 기다린다. 그때 뒤늦게 온 아마드는 환하게 웃으며 네마자데에게 공책을 건넨다. 그리고 호랑이 선생님이 네마자데의 공책을 펴자, 그 공책에는 작은 꽃잎이 꽂혀있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다큐처럼 사실적으로 만들었다. 아이들의 천진함이 그대로 화면에 녹아있다. 연기하는 아이들이 연기가 아니라 그 마을에 사는 아이처럼 자연스럽다. 꼬질꼬질한 모습, 한없이 맑은 눈동자, 가난한 마을 골목길 그 골목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감독은 영화에 참견하지 않았다. 그저 인간의 연민을 보여주었다. 카메라를 통해 설교하지 않아도 우리들의 잃어버린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마음 어디쯤에서 우린 삶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마드가 네마자데 공책에 곱게 끼워 넣었던 꽃잎을 보는 순간 우리 삶은 은유로 다가온다. 단순한 이야기로 끌어가는 명쾌한 장면들, 아이들의 순수가 일깨우는 인간의 본성에 느낌표를 선사한다. 어른들의 번요한 삶 속에 아이들의 맑고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이 햇살처럼 은은하게 퍼진다. 그래서 좋다. 그래서 내 마음까지 막 차오른다. 입안에 우걱우걱 팝콘을 밀어 넣으면서 보는 영화가 아니다. 그냥 조용히 편안하게 벽에 기대 마음으로 보는 영화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이다. 아마드는 말한다.

 

“나는 친구의 공책을 돌려줘야 해요”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

 

작성 2025.11.11 10:14 수정 2025.11.11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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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