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숙의 시의 향기] 일진의 추억

민은숙

 

일진의 추억

 

 

벌건 국물에 투영된 단발

 

불쑥 출몰한 삼 년을 시달린 오백 원짜리 악몽

 

재잘대는 종달새 친구들이 하나둘 빨려간 

방앗간은 학교 앞 분식집

 

시뻘건 옷 걸친 못돼 먹은 일진이 

하굣길 가로막던

 

꾸벅 조는 초승달 오독한 붉은 소리는

껄렁대는 삐딱한 자세로

맡겨 놓은 예금 출금하듯 삥 뜯던

 

핏발 선 눈매가 풍랑경보를 내린다 

비 오고

눈이 와도

버티는 시뻘건 일진

읍소해도 소용없는,

 

채찍이 질끈 감긴 시뻘건 세상

선명해진 적화통일 꿈꾸는

 

예민한 촉수가 오감만으로도 알아챈

작은 어깨 짓누르는 가장의 무게

 

오백 원은 밀봉한 입술에서만 산다

 

진물이 나오는 처연한 살림은

모르는 종달새들은 손잡고 조른다

 

눈치가 백 단인 종달새 우두머리

오백 원 주겠다고 팔짱 껴도

선약 있다 뿌리치는 기운 센 자존

 

차라리 시뻘겋게 물들면 평온해질까

식은땀 흘리는 뒤틀린 뱀이 혓바닥을 늘름거린다

 

실랑이는 에덴이 아니다

불굴의 색은 비련이다

 

시뻘건 국물 마주한 작은 어깨 앞에서 

눈치 없이 시위 떠난 화살로 튀어나온 시절

시뻘건

 

어깨 눌린 가슴에 통한으로 부활할 붉은 야욕

또, 다시 일진이 똬리를 튼다

 

 

[민은숙]

시인, 칼럼니스트

제4회 코스미안상

제3회 문학뉴스 &시산맥 기후환경문학상

2024 중부광역신문신춘문예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지도 강사

꿈다락학교 시 창작 강사

문화재단 & 예술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이메일 : sylvie70@naver.com

 

 

 

 

작성 2025.11.19 09:36 수정 2025.11.19 12:02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최우주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