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의 수도, 방콕 인근에 있는 논타부리 지방의 '팍크렛'에 위치한 '임팩트 챌린저' 홀에서 현지 시각으로 11월 21일 금요일 오전에 2025 미스유니버스 대회가 막을 내렸다. 제74회 째로 열린 이번 미스 유니버스 대회는 태국에서 개최된 건 이번이 총 네 번째이며, 세 번째 같은 장소에서 진행되었다.
무대 위의 조명은 언제나처럼 눈부셨고, 참가자들의 미소는 연습된 대로 완벽했다. 그러나 2025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의 막이 내린 지금, 대중의 뇌리에 남은 것은 눈부신 왕관의 영광이 아니라, 무대 뒤편에서 터져 나온 비명과 파열음들이다. 올해 대회는 단순한 미의 축제를 넘어, 인간의 욕망과 편견, 그리고 자본의 논리가 뒤엉킨 한 편의 ‘막장 드라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겨루는 자리에서 가장 추악한 잡음들이 쏟아져 나온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논란의 중심에서 왕관을 쓰다: 멕시코의 파티마 보쉬
모든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된 이는 멕시코 대표 파티마 보쉬(Fatima Bosch)다. 그녀는 전년도 우승자인 덴마크의 빅토리아 캬르 테일비그로부터 왕관을 물려받으며 새로운 미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그녀가 왕관을 쓰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대회 기간 내내 그녀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고, 그녀를 향한 시선은 축하와 의구심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특히 대회 초반, 태국 측 관계자인 ‘나왓 이사라그리실’과의 갈등은 이번 대회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나왓’은 ‘보쉬’에게 "소셜 미디어 홍보 활동이 부족하다"라는 이유로 공개적인 질책을 가했다. 미(미)의 사절단을 뽑는 대회에서 인플루언서로서 마케팅 능력을 강요하며 참가자를 압박하는 모습은, 현대 미인 대회가 순수한 아름다움보다는 상업적 가치에 얼마나 매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단면이었다. 보쉬가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장면이 포착되었을 때, 많은 이가 그녀의 당당함에 박수를 보냈지만, 동시에 그녀가 겪었을 모멸감에 깊은 연민을 느꼈다. 결국, 그녀는 왕관을 썼지만, 그 왕관의 무게에는 ‘자본의 요구’라는 짐이 더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무너진 권위: 심사위원들의 잇따른 사임과 조작설
미인 대회의 생명은 공정성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파이널 무대가 열리기도 전에 그 공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어야 할 두 명의 인사가 대회 직전 사임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작곡가 오마르 하르푸시의 폭로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결선 진출자를 선정하는 별도의 '비밀 심사위원단'이 존재한다"라며 대놓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내가 참여하지도 않은 투표를 정당화하기 위해 들러리처럼 카메라 앞에 설 수 없다"라는 그의 일갈은, 화려한 쇼 뒤에 감춰진 어두운 밀실 야합을 암시했다. 같은 날 축구 스타 출신 클로드 마켈렐레 또한 모호한 개인적 사유를 들어 사임했다.
조직위원회는 "투명한 프로토콜"을 운운하며 해명에 나섰지만, 이미 대중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한 뒤였다. 심사위원이 심사를 거부하는 대회. 과연 이 대회가 선발한 '우주 최고의 미녀'라는 타이틀에 얼마나 진정성이 담길 수 있을까. 이는 참가자들의 땀과 노력을 기만하는 행위이자, 대회를 지켜보는 전 세계 시청자들을 우롱하는 처사였다.
아름다움의 얼굴을 한 추악한 인종차별
이번 대회 기간 중 가장 분노를 자아낸 사건은 역설적이게도 과거 미스 유니버스의 입에서 나왔다. 1996년 우승자인 ‘알리시아 마차도’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통해 씻을 수 없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냈다.
‘나왓 이사라그리실’과의 갈등을 언급하며 그녀는 그를 "비열한 중국인"이라고 지칭했다. 팬들이 그가 태국인임을 정정해 주자, 그녀는 양손으로 눈을 찢는 제스처를 취하며 "중국인, 태국인, 한국인... 나에게는 눈 찢어진 사람들은 다 중국인이다"라는 망언을 내뱉었다.
한때 세계 최고의 미녀로 칭송받았던 인물이 보여준 이 천박한 인식 수준은 절망적이다. '유니버스(Universe)'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편협하고 낡은 인종주의적 사고방식이 여전히 그 바닥에 깔려 있음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외적인 아름다움이 내면의 품격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씁쓸한 진리를, 우리는 그녀의 찌푸린 표정과 혐오 섞인 손동작에서 다시 한번 확인해야 했다.
상처 입은 꿈들: 들것과 희망 사이
무대 위는 화려했지만, 무대 아래는 전쟁터였다. 자메이카 대표 가브리엘 헨리가 예선 심사 도중 넘어져 들것에 실려 나가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완벽함을 강요받는 압박감 속에서, 높은 하이힐 위에서 휘청이는 것은 비단 그녀의 몸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경쟁에 내몰린 모든 참가자의 위태로운 마음을 대변하는 장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불씨는 있었다. 팔레스타인 역사상 최초로 미스 유니버스 무대를 밟은 ‘나딘 아유브’의 존재가 그랬다. 비록 결선 라운드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포화와 분쟁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당당히 무대에 선 그녀의 모습은, 온갖 잡음으로 얼룩진 이번 대회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진정한 아름다움'의 순간이었다.

미스 유니버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태국의 프라비나 싱이 2위를 차지하고, 베네수엘라, 필리핀, 코트디부아르의 참가자들이 톱 5에 오르며 대회는 끝이 났다. 멕시코의 파티마 보쉬는 왕관을 쓰고 미소 지었다. 하지만 조명이 꺼진 후 남겨진 과제들은 너무나 무겁다.
2025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는 우리에게 묻는다. 미인 대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인플루언서를 뽑는 마케팅 쇼인가, 특정 세력의 입맛에 맞는 인형을 고르는 밀실인가, 아니면 진정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축제인가.
조작설과 인종차별, 그리고 상업적 압박으로 얼룩진 이번 대회는 '미스 유니버스'라는 브랜드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내년 대회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다고 한다. 장소가 바뀐다고 해서 본질이 변할지는 미지수다.
우리는 더 이상 외모만 아름다운 인형을 원하지 않는다. 공정한 과정 속에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내면의 품격을 갖춘 진정한 리더를 보고 싶어 한다. 이번 대회의 파란만장했던 소동들이 단순한 가십거리로 소비되고 끝날 것이 아니라, 미인 대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재설정하는 뼈아픈 반성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들것에 실려 나가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참가자들의 눈물, 그리고 편견에 맞서 무대에 섰던 이들의 용기가 헛되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