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사랑의 힘

이태상

“만일 3각형에게 신(神)이 있다면 그 신은 3면(面)일 것”이라고 했다는 프랑스의 사상가 몽떼스뀨의 말 같이 신이란 암시적이고 알 수 없는 존재라면 정말 그 누가 알랴. 실로 그럴진대 짧다면 눈 깜짝할 사이만큼이나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고통보다는 즐거움을, 추하고 흉한 것보다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도 흔히 세상 사람들은 쾌락을 좇는 자를 멸시한다. 비도덕적인 자애주의자라고. 하지만 쾌락을 유일한 선(善), 또는 인생의 목적으로 하여 쾌(快)를 추구하고 고(苦)를 피함을 행동의 원리로 하는 윤리설인 쾌락설의 창설자 에피큐러스 희랍 철인은 그 어떤 다른 성인군자나 도인(道人) 도사(道師)보다 훨씬 더 일찍 철들고 깨달을 각(覺)을 한, 그 누구보다 도통한 사람 아니었을까. 그는 고통의 부재(不在) 또는 마음의 평화를 최대 최고의 선으로 중요시했다. 

 

그 옛날 그 당시에도 전통적인 도덕군자들은 천박비속하며 야비한 ‘쾌락추구자’라고 그에게 침을 뱉었지만 그의 삶은 욕심 부리지 않고 성내지 않는 극히 절제된 것이었다고 한다. 그 후로 서양에서는 그의 이름을 따 쾌락주의자 향락주의자 또는 미식가 식도락가를 에피큐어라 부른다. 

 

얼마 전 “자기 자신에게 즐거운 일을 하며 쾌락을 좇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는 의학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미국 건강예방의학의 권위자인 데이빗 에스 소벨 박사는 그의 저서 <건강한 쾌락>을 통해 쾌락이 장수는 물론 행복의 비결이란 사실을 발표했다. 그는 “제 구미에 맞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Sex를 즐기며 자신의 일과 가정생활을 기쁘게 하는 것이 오래 사는 그것도 건강하게 잘 사는 방법과 길이 된다.”는 의학적인 근거를 제시했다. 인간생리현상에 있어 ‘쾌락의 원칙’에 따라 유지되는 인체 내 건강체제가 있다며 그는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건강한 성생활은 모든 질병을 예방한다. 섹스는 음식, 공기 그리고 수면처럼 불가결한 삶의 요소로서 건강 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의 기분을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저기압에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고기압으로 상승시킴으로써 우리는 각종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키우고 강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를 본 사람은 일시적으로 증강된 면역성을 나타내고 이 효과는 얼마 있다 없어진다. 이것은 우리가 자주 웃을수록 건강에 좋다는 뜻이다. 불쾌한 일은 잊을수록 좋고 기억할수록 나쁘다는 말이다. 특히 악의에 차 있거나 이해성이 부족하고 참을성이 없으며 이기주의적인 사람은 심장마비 가능성의 확률이 높고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경우 회복이 어렵단다.

 

체중을 줄이는데 있어서도 쾌락을 좇아야 한다. 왜냐하면 맛이 없거나 극히 제한된 메뉴의 다이어트는 실패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따라서 다이어트 음식은 우선 맛이 있되 열량이 적은 것이 좋고 숙면을 위해서는 가벼운 스낵이 좋은데 그 까닭은 수면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산책같이 힘들지 않고 가벼운 운동은 기분을 상쾌하게 해 주고 자신감과 행복감을 갖게 해 준다고. 진실로 그럴진대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각자 제각기 제 몸부터 존중하고 사랑해야 하리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신(神)을 섬기기 전에 당장 눈에 보이는 사람부터. 또 이웃 사랑하기 전에 저마다 제자신부터, 내세의 행복을 꿈꾸기 전에 현세의 삶부터 즐겨 만끽할 일이다. 몇 년 전 외신에서 본 다음과 같은 실화가 있다. 난파한 동료 선원 다섯이 차례로 얼음같이 찬 바닷물에 시달리다 죽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끝내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의 체험담은 사랑의 힘이 얼마나 뜨겁고 큰가를 말해 주는 것 같다.

 

무섭게 폭풍이 휘몰아치던 영국해협에서 배가 파선되자 이 배를 타고 있던 선원 6명이 온몸을 얼어붙게 하는 바닷물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이들 중에 유일한 생존자가 된 어부 조지 구아도 씨는 파도에 떠 있는 부서진 배의 판자 쪽 하나를 발견하고 동료 선원들도 이 판자 쪽에 매달리게 했다. 그러나 한 겨울 바다에서 추위와 굶주림과 피로를 이기지 못한 동료 선원들이 하나둘 차례로 숨지는 것을 그는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슬픔과 절망에서 비명만 지르며. 이렇게 무정하고 잔인한 파도에 목숨을 걸고 처절한 몸부림을 하기 23시간, 집요 불굴의 강인한 그의 의지도 마치 마지막 실오라기 끊어지듯 풀어지면서 아무도 모를 이 비극의 비정한 마지막을 바닷속 물 무덤에 묻으려는 찰나 사랑하는 그의 처 지젤의 환상이 눈앞에 떠올랐다. 

 

“마침 보름달이 떠 교교한 달빛에 망망한 바다 위로 큰 접시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큼직한 구운 닭을 들고 내 처가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 똑똑히 보이더군요. 물론 내가 상상하는 것이었겠지만 이 환상이 내게 새로운 용기와 힘을 주어 내가 절대로 죽기를 거부한 것이지요.”

 

이 생생한 인간과 자연과 사랑이 뒤얽힌 드라마는 그가 타고 있던 어선 나탈리 제롬호가 고기잡이하다 프랑스 북서쪽에 있는 말로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영국해협의 악명 높은 산더미 같은 파도에 휩싸이면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모두가 바닷물 속으로 내동댕이쳐졌을 때 나는 엉겁결에 신고 있던 장화를 벗어버렸고 입고 있던 노란 색의 비옷은 거추장스러운 대로 그대로 입고 있었는데 아마 이 비옷이 추위로부터 내 몸을 다소 보호해줬나 봐요. 동료 선원들은 다 작업복 차림이었는데요. 천만다행히도 길이 4피트 넓이 한 피트 반 정도의 나무판자 쪽이 물위에 떠 있는 것이 눈에 띄더군요. 얼른 나는 그 나무판자 쪽을 잡아 동료 선원들도 이 나무 조각에 매달리게 했습니다. 모두들 기침을 몹시 하며 부들부들 떨고 있기에 이들에게 사정사정했습니다. 손발을 계속 움직이고 몸을 흔들면서 노래 부르자고요. 그러지 않으면 우리 다 곧 얼어 죽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어 시간쯤 지났을 때 자기 걱정보다 제 개가 익사했을까봐 걱정하고 있던 친구 이본이 나를 향해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더군요. 자기 대신 자기 처에게 마지막 키스해달라고요. 그리고 나선 바닷물 속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졌습니다. 이 광경이 찬 바닷물보다 더 무섭고 아프게 내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하더군요.” 

 

이렇게 그의 동료 선원들이 모두 차례로 하나씩 숨지는 것을 그는 지켜봐야 했다.

 

“두 번째로 간 것이 선장이었고 다음 날 저녁 6시쯤 세 번째 그리고 한 시간쯤 있다가 네 번째 동료가 삶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10시경 마지막으로 죽은 동료는 18세의 이브즈였지요. 동료들을 다 잃고 혼자 남은 나는 판자 쪽 위로 기어올라 벌렁 누운 채 밤새도록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몸을 맡겼습니다. 그다음 날 아침 11시 15분에 헬리콥터가 날 발견하고 구조사다리를 내려 주었을 때는 내 손과 발이 추위에 완전히 마비된 상태라 이 구조사다리를 잡을 수조차 없어 한참 동안 헬리콥터가 내 주위를 돌면서 내가 기운을 좀 차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계속 부인하고 책임 회피해온 미국정부가 몇 년 전 처음으로 미국의 원자폭탄 실험으로 방사선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암을 유발시킨 책임을 인정했다. 1945년부터 1962년까지 남태평양 일대 공중에서 총 183회에 걸쳐 실시한 원자폭탄 실험으로 25만 명 이상의 미군과 수많은 도서 주민들이 피해자가 되었다. 그 피해자 중 한 사람인 오빌 켈리 병장이 미국정부기관인 원호처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피고인 미국정부가 그 책임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원자탄 실험으로 암에 걸려 죽은 사람의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지적한 켈리 병장은 자기와 같은 피해자를 위해 ‘원폭상이군인회’를 조직했고 <하루가 소중하다>는 제목의 책 한 권과 ‘사랑은 없어지지 않으리’라는 감동적인 시 한 편을 남기고 죽어갔다.

 

사랑은 없어지지 않으리.

 

노란 태양빛 속에 

만물이 되살아나는 봄이면 

어떤 앞날이 우리에게 

있을지 모르고 

당신과 나는 함께

땅을 밟고 걸었다오.

해마다 꽃 필 때면 

내 생각 좀 해 주오.

죽음이 종말이라 하지만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은 

끝나지 않을 것이오. 

내가 떠나고 없는 어느 날 밤

당신이 외로워질 때면 

이 내 사랑을 기억해 주오.

 

당신을 두고 나 혼자 먼저

당신 곁을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새 소리가 그토록 감미롭고 

청아한 줄 몰랐다오.

당신과 함께 내가

백년해로할 수 없음을 알 때까지 

여름 하늘이 그토록 푸른 줄 

난 미처 몰랐다오. 

그렇지만 당신의 사랑을 모르고

억만년 사는 것보다

짧게나마 당신을 안 것이 

한없이 더 좋다오.

우리 같이 지낸 날들과 밤들을 

영원토록 기억해주오.

 

만물이 죽기 시작하고 

금갈색으로 나뭇잎들이

단풍 드는 가을에도 

날 좀 기억해 주오.

나 비록 당신 손을 

전처럼 잡지 못한다 해도

저녁때면 옛날처럼 

도시의 보도를 

당신과 함께 걸을 것이오. 

 

먼 훗날 어느 겨울 

방 안 벽난로에선

나무 타는 소리와 연기가 나는데 

문득 생각나듯 돌아보며

우리는 서로를 발견할 것이오. 

당신의 웃음소리 다시 들으면서 

당신의 얼굴 다시 만져 보고

당신을 내 품에 

다시 꼭 안을 것이오.

 

그러나 그날이 오기 전 

그때가 되기 전 

어느 겨울밤 

밖에는 눈이 내리고 

방 안 가득히 고독이 

당신을 엄습하거든 

굳게 또 확실히 믿어주오.

비록 죽음의 사자가 

내 목숨 앗아갔지만 

우리의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을.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5.11.29 10:34 수정 2025.11.2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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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