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창작 사조와 비평 방법론별 분석: 시적 정서의 닫힘과 열림
마침표는 기호학적으로 ‘문법적 완결’, ‘시적 정서의 단락’, ‘기호 권력의 구획화’ 등의 기능을 한다. 이는 시적 정서의 ‘종결’을 고정하거나, ‘확장’을 유도하는 기호로 작동한다. 문법적 규칙은 마침표를 완결의 표시로 규정하지만, 시적 감수성은 그것을 해석의 여백이나 미완의 신호로 전환시킬 수 있다. 작은 마침표 하나는 창작 사조와 비평 방법론에 따라 서로 다른 정서적 전략을 만들어 낸다.
마침표는 닫힘의 기호로, 생략은 정서의 유동성과 해석의 확장을 암시하는 기호로 기능한다. 이러한 이중적 기능은 각 창작 사조의 미학적 감수성과 연결된다. 이는 해석의 전략으로 자리한다. 한국 현대시에 영향을 준 주요 창작 사조와 비평 방법론별로 마침표의 역할을 비교해 본다.
멈춤과 흐름이라는 마침표의 이중적 기능은 창작 사조와 비평 방법론별로 다양한 해석 전략으로 나타난다. 한국 현대시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현대주의(모더니즘)와 후기 현대주의(포스트모더니즘) 관점에서 비교하고, 구조주의와 해체주의 관점에서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이들 창작 사조와 비평 방법론의 내부에서도 마침표 찍음과 생략에 관해 여러 현상이 출현한다. 마침표를 중시한 상징주의를 예로 들면, 이상(1910~1937)의 상징주의 시 「거울」에서 1연의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는 마침표를 생략했다. 이는 초현실주의‧다다주의‧현대주의적 실험 정신과 상징주의적 감각이 혼재한 시라는 점에서 생략 전략을 펼친 것이라 읽힌다. 이는 맥락에 따라 혼용 전략을 취한다. 이 글에서는 다양한 텍스트를 모두 언급할 수 없어 보편적 현상을 다룬다.
창작 사조인 현대주의는 구조적 형식미와 자기표현의 명료함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마침표는 작가의 자율적 형식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마침표는 시의 형식적 완결성을 강조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원문과 달리 마침표를 삽입하면, 이별의 단호함을 강조할 수 있다. 반면, 후기 현대주의는 텍스트의 자율성과 해체 가능성을 강조하므로 마침표 생략은 ‘다의성 유지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평 방법론 관점에서 구조주의는 텍스트를 언어 체계의 규칙성과 구조를 통해 분석한다. 마침표는 이 구조를 구획 짓는 핵심 기호로 작동한다. 구조주의는 의미 전달보다는 구조 간 차이와 체계의 규칙성 분석에 집중한다. 구조를 정립하는 순간, 그 바깥에서 의미는 미끄러지며 탈주하기 시작한다.
이에 비해 해체주의는 마침표의 삽입 자체를 ‘권력화 기호’로 간주한다. 마침표는 의미를 고정하려는 지배의 흔적이다. 그 자체가 불신과 해체의 대상이다. 마침표를 생략함으로써 텍스트는 종결을 유예하고, 해석의 흐름을 무한히 열려 있는 상태로 유지한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가 제안한 ‘차연(différance)’ 개념은 의미가 항상 지연되고, 차이를 통해 생성된다고 본다. 즉, 기표는 특정 의미에 도달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이동한다.
구조주의가 기표와 기의를 일정한 구조 내에서 해석 가능하다고 본다. 반면, 해체주의는 기표가 기의를 끝없이 미끄러지게 만드는 불안정한 기호 체계를 전제한다. 이러한 ‘기표의 미끄러짐(slippage of the signifier)’은 의미의 지연과 차이를 유발한다. 독자가 더는 해석의 ‘정답’을 가질 수 없다. 대신 ‘해석의 무한 지연’ 속에서 의미를 지속적으로 생성해야 한다. 이는 마침표조차 닫힘의 상징이 아니라, ‘해석의 정지불가능성’을 암시하는 기호로 바꿔 놓는다.
각 사조는 모두 마침표 하나를 두고 ‘닫힘’과 ‘열림’ 사이에서 저마다 다른 전략을 펼친다. 창작 사조별 마침표 해석을 비교한 표를 통해, 마침표의 역할을 읽을 수 있다.


표2와 표3을 종합하면, 마침표는 단순한 문법 기호가 아닌 사조적 정서의 형식적 기표로 기능한다. 고전주의·계몽주의·자연주의·현대주의는 이성, 질서, 객관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명료하고 종결 형식으로서 마침표를 중요하게 사용한다. 반대로 낭만주의·다다주의·초현실주의는 감성, 무질서, 꿈과 무의식을 강조하면서 마침표 생략을 통해 열림과 감정의 유동성을 확보한다. 특히 낭만주의 시 중에 감정의 폭발 이후 마침표나 감탄 부호로 종결 표현을 강하게 사용한 사례가 있지만, 생략 선호로 분류할 수 있다.
현실주의와 후기 현대주의는 서사적 구성과 실험적 문체의 공존 속에서 상황에 따라 마침표 사용을 전략적으로 조절한다. 이러한 전략은 단지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시의 정서적 리듬과 독자 감정의 호흡 방식까지 좌우하는 창작 사조의 표현 윤리와도 직결한다. 마침표 하나로 감정은 닫히거나 열리며, 시의 존재론적 태도까지 결정한다. 물론 현실주의와 후기 현대주의가 동일한 ‘혼합 전략’으로 분류하지만, 현실주의의 서사 중심성과 후기 현대주의의 탈구축성으로 분리할 수도 있다.
마침표는 시대정신과 미학적 감수성의 집결점이다. 창작 사조별로 마침표는 정서의 고정된 의미와 변동하는 정서의 흐름 사이에서 각기 다른 해석 전략을 드러낸다.
고전주의·계몽주의·자연주의·현대주의는 마침표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전략이다. 반면, 낭만주의·다다주의·초현실주의는 마침표의 생략을 통해 정서와 해석의 흐름을 확장시킨다. 마침표 하나에 나타나는 정서의 멈춤과 흐름이라는 이중적 기능은 사조별 미학과 해석 전략에 따라 상이한 방식으로 구현된다.
현대주의는 마침표를 형식과 정서를 조율하는 구조적 장치로 활용한다. 마침표는 파편화된 현실을 통제하고, 언어 질서 안에서 감정을 조율하는 리듬으로 기능한다. 반면, 후기 현대주의는 마침표를 ‘기호 권력(symbolic power)’의 일부로 간주하며, 삽입과 생략 모두를 전복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마침표는 더 이상 종결의 표시가 아니다. ‘종결 패러디’이자 ‘해석의 유예 기호’이다. 이는 정서적 종결이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는 기호로서 기능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마침표의 삽입과 생략, 어느 쪽에도 고정된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마침표 하나조차 ‘기호 권력’의 일부로 간주한다. 그 기능과 효력을 해체 대상으로 삼는다.
담화는 단지 이해되고 해독되어야 하는 기호들이 아니라(예외적으로만 그렇다), 평가되고, 추산되어야 하는 부(富)의 기호들이자, 믿어야 하고 복종해야 하는 권위의 기호들이다. 문학적인 언어 사용(특히 시에서의 사용)을 제외하면, 일상적으로 언어가 순수한 의사소통의 도구로만 기능하는 경우는 드물다.
고전주의와 계몽주의는 마침표를 규범과 이성의 질서로 활용한다. 마침표 하나는 명확한 의미 종결이며, 생략은 규범 이탈로 간주한다. 반대로 낭만주의와 초현실주의는 마침표 생략을 통해 감정의 흐름, 상상력의 유동성을 강조한다. 상징주의는 마침표를 발화의 침묵으로 삼으며, 그 마침표 하나에 무언의 확장과 여운을 담는다.
현실주의는 마침표와 생략을 병행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마침표는 사건의 종결을 암시하지만, 그 끝은 새로운 질문을 열며 여운을 남긴다. 다다이즘은 마침표를 파괴하거나 생략함으로써 언어 규범 자체를 무효화한다. 이는 기존의 해석 권위에 대한 전복으로 이어진다.
고전주의·계몽주의는 의미와 정서를 고정하고 통제하기 위해 마침표를 적극 활용한다. 현대주의는 형식미와 정서 조율의 수단으로 마침표를 활용한다. 후기 현대주의는 그것을 해체 대상으로 삼는다. 반면, 낭만주의·다다주의·초현실주의는 생략을 통해 정서의 여운과 독자 해석의 공간을 넓힌다.

위의 표4를 요약하자면, 고전주의·계몽주의·현실주의에서 마침표는 문법적 완결과 이성적 구조 유지의 장치로 작동한다. 정서를 통제하거나 객관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낭만주의·초현실주의에서는 마침표의 생략 또는 과잉을 통해 정서의 파열, 심층의 흐름, 무의식의 개방을 강조한다. 정서를 개별 주체의 내면화 진폭으로 제시한다. 현대주의·후기 현대주의에서 마침표는 구조적 긴장, 해체의 기호로 변모한다. 기호 자체에 대한 의심, 종결 거부, 차연의 미학이 정서의 형식에 침투한다.
고전주의 시에서는 마침표가 명확한 종료나 완결을 의미한다. 이때 시는 형식적이고 규칙을 중시한다. 마침표는 주로 문장의 끝맺음을 명확히 한다. 독자에게 내용을 완성 상태로 전달하려는 의도를 담는다. 시가 하나의 완결된 아이디어나 감정을 전달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마침표 생략은 일반적이지 않은 어긋난 규범이다. 몇몇 단어를 생략한 듯, 문장이 끝나지 않은 듯, 보일 수 있다. 이는 독자가 그 의미를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준다. 생략을 통해 긴장감을 유지하거나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 결국, 고전주의 시에서는 마침표와 생략이 각각 문장의 완결성과 의미의 확장을 조절하는 중요한 기법이다.
계몽주의는 문장 부호, 특히 마침표를 통해 글쓰기의 논리적 명료성과 해석의 질서를 구축하려 했다. 이는 문장 부호의 규범화, 해석 통제, 지성 중심의 언어 문화 형성과 이어진다. 오늘날 일부이긴 하나 교과서에서 마침표를 삽입해 해석을 ‘안전하게’ 봉합하려는 사례는, 계몽주의적 유산의 교육적 재현으로 볼 수 있다.
낭만주의는 개인적 정서와 상상력의 촉발이나 비등(沸騰)을 귀하게 여긴다. 낭만주의자의 눈에 마침표는 ‘정서의 숨 멈춤’이 아니라, 다음의 설렘을 위한 ‘숨 고르기’이자 자연을 품은 심상(心象)의 여백이다.
자연주의의 독해에서 마침표는 환경·유전의 결정론을 닮은 ‘종지부’이다. 인간 의사를 넘어선 운명의 도장을 찍어, 삶과 죽음의 필연성에 무게를 더한다.
상징주의는 언어 바깥의 정적(靜寂)을 표상하려 한다. ‘텍스트 안의 내적 침묵’인 마침표는 말보다 더 큰 울림을 품은 심층 기호이다. 뒤에 놓인 마침표 하나는 발화(發話)를 닫으면서 동시에 무한한 의미 지평을 열어 두는 착시를 일으킨다. 상징주의적 독해에서 마침표란, 소음의 탈피를 통해 ‘말해지지 않은 것’을 가리키는 어둠의 횃불이다. 그러나 한국의 상징주의 시에서는 마침표 생략을 혼용한다.
예를 들면, 이육사의 「광야」, 「교목」, 「절정」 등은 자연이나 사물(광야, 교목, 산 등)을 통해 의지적 자아와 민족의 정신을 우회적이고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들 시의 주 사조는 상징주의이지만, 마침표를 생략하였다. 특히 「교목」의 원문 1연 마지막 행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마지막 연 마지막 행의 “차마 바람도 흔들지 못해라”에는 마침표가 없다. 그런데 이 두 곳에 천재교과서에서 발행한 2024년 교육부 검정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는 마침표를 삽입했다.
다다주의에서 마침표는 의미의 다중성과 규범의 거부를 나타낸다. 즉흥성과 형식 파괴를 더 중시한다. 마침표를 생략함으로써 기존의 언어적 틀을 무너뜨리고, 해석의 자유를 촉진한다. 마침표를 중시하기보다는, 생략하거나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이를 통해 다다이즘은 불완전성과 비결정성을 강조하고, 자유로운 해석을 유도했다.
현실주의에서 마침표와 생략은 때때로 상호 보완적 균형 관계를 형성한다. 이야기는 마침표로 끝날지라도 그 끝이 완전한 종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운을 남기거나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마무리한다. 마침표가 단순한 ‘끝’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 미래의 가능성이나 미해결 문제를 내포한다. 이러한 균형 접근은 ‘불완전한 현실’을 더욱 강조하는 방법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완결성과 생략이 결합하여, 독자에게 끝없이 펼쳐지는 인간 경험의 복잡함을 전달하려는 시도이다.
초현실주의는 마침표를 통상적인 논리와 의미 흐름을 분절시키는 파열 지점으로 활용한다. 마침표 하나는 문장과 문장 사이를 분리하기보다, 무의식의 급전환을 촉진하는 도화선이다. 이는 현실과 상상, 이성과 꿈의 경계를 허물며, 해석의 비약과 이미지의 도약을 가능하게 한다. 이상의 「오감도―제1호」에서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의 마침표는 그러한 초현실적 도약의 극단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마침표조차 논리의 틈을 만드는 장치로 기능한다.
현대주의에서 마침표는 단순한 종결 기호가 아니다. 오히려 ‘파편화된 현실’과 ‘분절된 정서’를 조밀한 언어 구조 안에서 제어하는 리듬적 장치이다. 마침표는 정서의 조형성을 유지하면서도, 내면의 균열과 분열을 직조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이는 초현실주의적 무의식으로의 이행을 가로막는 의식의 ‘이성적 열림’이라 할 수 있다. 형식과 구조의 완결성을 중시하며, 정서의 절제와 구조적 조형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서 마침표는 종결의 의미보다는 형식적 완성과 구조적 안정성을 추구하는 의미이다. 마침표가 ‘종결’이 아니라, ‘형식적 완결성’을 의미한다고 본다. ‘종결’보다는 ‘구조적 정리’와 같은 의미로 해석한다.
후기 현대주의는 마침표의 삽입과 생략, 어느 쪽에도 전략을 취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전략임을 의심하며, 오히려 마침표 하나가 주는 통상적 의미마저 해체한다. 마침표는 ‘종결의 패러디’나 ‘의미의 해체’로서 기능한다. 이는 종결의 허위성을 드러내는 기호이기도 하다. 마침표의 생략과 삽입은 단순하게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의 다층성과 해석의 무한성을 강조하는 전략이다. 마침표조차 의미의 위계화를 유도하는 ‘기호 권력’으로 의심하며, 그 기능 자체를 해체한다. 마침표는 단순한 문장 부호가 아니다. 그것은 정서의 멈춤과 흐름의 시발을 동시에 내포하는 기호이다. 창작 사조는 이를 정서적 형식과 해석 전략으로 활용하며, 시적 감수성과 철학을 달리 표현한다.
이는 시대정신과 정서 전략의 축약적 상징이다. 고전주의·계몽주의는 정서와 의미를 ‘구획하고 통제’하기 위해 마침표를 적극 활용한다. 특히 고전주의에서 마침표 생략은 일반적이지 않은 어긋난 규범으로 취급했다. 반면, 낭만주의·다다주의·초현실주의는 마침표의 생략을 통해 정서의 ‘흐름과 여운’을 확장하고, 독자의 상상력을 유도한다.


위의 표5와 표6은 시 해석 과정에서 마침표의 기능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다. 이를 요약하면, 형식주의·구조주의에서 ‘마침표 중시 전략’, 형식주의에서는 ‘형식적 정서 조율’의 수단, 해체주의에서는 ‘생략 선호 전략’, 신비평주의·탈구조주의에서는 ‘마침표와 생략의 균형 전략’이다.
신비평주의는 마침표와 생략 모두를 시의 ‘유기적 통일성(organic unity)’에 따라 유연하게 해석한다. 마침표는 구조의 정리를, 생략은 긴장과 아이러니를 강화한다. 형식주의는 마침표를 리듬과 구조 조율의 핵심 기호로 본다. 의미 단위를 분할하고 시선의 흐름을 제어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구조주의는 마침표를 언어 구조 안에서 의미 구획과 해석 통제의 도구로 간주한다. 마침표는 의미 단위의 경계석이며, 명료성을 추구하는 기호이다.
반면, 탈구조주의는 마침표를 의미의 유예와 해석의 가능성 확장으로 바라본다. 마침표는 끝이 아닌 ‘끝내지 않음의 자리’이다. 해체주의는 마침표 자체를 ‘권력화 기호’로 간주한다. 그 생략을 통해 텍스트의 흐름과 해석의 유동성을 극대화한다. 이는 데리다의 ‘차연’ 개념과 연결된다. 각 사조는 마침표를 정서의 문장 부호이자 미학적 철학으로 다룬다. 비평 방법론별 마침표 해석 전략은 다음 표와 같다.

위의 표7을 요약하자면, 신비평주의·형식주의는 내재적 완결성과 형식적 규칙에 초점을 맞추며 마침표를 구조적 마감 기호로 본다. 구조주의는 마침표를 의미 작용의 위치로써 기호로 보고, 전체 언어 체계 내의 위치로 이해한다. 탈구조주의·해체주의는 마침표를 통해 의미의 미끄러짐, 종결의 허위성, 해석의 다층성을 강조하며, 마침표 자체를 해체의 도구로 전복한다.
신비평주의는 마침표와 생략 모두 중요하게 다루는 관점이다. 각각의 기능이 시의 전체적 구조와 통일성에 미치는 기여도를 핵심 기준으로 판단한다. 마침표는 시의 구조적 완결성과 형식적 질서를 드러내는 요소로서 중요하다. 반면, 생략은 시의 아이러니, 긴장, 함축을 통해 의미의 복합성과 해석의 층위를 창출하는 장치로 중시한다. 단순히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단정하기보다는, 해당 시에서 그것이 어떻게 전체적인 ‘유기적 통일성(organic unity)’을 형성하는 기여에 따라 평가를 달리한다.
형식주의 비평은 시의 ‘내적 기법’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 마침표는 리듬을 쪼개고 의미 단위를 정확히 구획하는 기능적 기표이다. 구조의 얼개 속에서 마침표가 ‘결절점’ 역할을 한다. 독자의 시선을 다음 행으로 미끄러지게 하는 통로를 만든다는 점이 형식주의의 핵심 독법이다.
구조주의에서 마침표는 텍스트 내에서 의미의 구획을 명확히 한다. 이는 해석의 경계를 설정하는 도구로서 기능한다. 이때 중요한 마침표는 ‘정서의 고정’이라기보다는 언어적 명료화와 구조적 안정성 강조이다. 마침표를 의미 구획의 경계로 삼지만, 그 경계는 고정되기보다 의미의 탈주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기표의 연속은 구조를 희미하게 만들지만, 정서의 여백과 유동성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면,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판본에 수록한 대부분의 시는 문장 부호를 철저하게 찍었지만, 「진달래꽃」, 「산유화」, 「접동새」 등 일부는 마침표를 생략했다. 이 생략의 호흡이 구조주의 관점에서는 바로 모호성의 미학으로 삼는다.
탈구조주의는, 마침표 뒤 공백에는 여전히 다양한 의미가 겹쳐지고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는 관점이다. 마침표 그 자체가 불완전한 의미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마침표를 ‘닫힘’이나 ‘열림의 공간’이라는 의미보다 더 나아간 ‘끝내지 않은 공간’으로 본다. 마침표의 생략은 텍스트가 고정된 의미를 갖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고 확장되는 열린 가능성의 장을 여는 방식이다. 이는 ‘기표의 미끄러짐’의 개념이다.
해체주의는 자크 데리다의 ‘차연’ 개념을 중시한다. 이는 의미가 언제나 지연되고, 고정되지 않은 채 끊임없이 미끄러짐 속에서만 성립된다는 점을 중시한다. 의미가 마치 강물처럼 끊임없이 흐르며, 한 지점에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는 모습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에 ‘정답’을 잡을 수 없고, 계속해서 새로운 해석을 발견해 나간다.
마침표는 단순한 문장 부호가 아니다. 그것은 정서의 멈춤과 흐름, 의미의 구획과 유예를 동시에 내포한다. 시대정신과 해석 전략이 응축된 이 기호는, 문학과 철학의 접점을 여는 문장 부호이자 사유의 장치이다. 각 창작 사조와 비평 방법론은 마침표를 통해 시적 정서와 해석 전략을 다르게 구성해 왔다. 고전주의는 마침표 하나에 규범의 안정을, 후기 현대주의는 해석의 전복 가능성을 건다. 마침표의 존재와 부재는 시대정신과 문학적 철학을 압축하는 정서의 문장 부호이며, 시적 미학과 사유의 방향을 드러내는 기호적 장치이다.
이러한 창작 사조와 비평 방법론에 따른 마침표 해석은, 교육적 시 읽기와 창작의 실제 적용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
5. 나가기
마침표는 단지 종결의 기호가 아니라, 독자의 사유를 호출하는 정서적 문법이자 교육적 장치이다. 마침표는 창작 사조와 비평 방법론별로 미학적 관점과 철학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들은 마침표를 정서의 문장 부호이자 미학적 철학으로 다룬다. 또한, 시의 마침표는 단지 문장을 닫는 기호가 아니다. 그것은 시적 정서의 숨을 남기는 여백이다. 독자의 상상력을 열어 두는 시작점이다. 마침표는 시를 멈추는 동시에, 독자의 상상력을 다시 움직이는 출발점이다. 김소월과 윤동주의 원문에서 보듯, 마침표 하나가 시적 정서를 고요히 닫는다.
그 반면, 생략은 시적 정서를 여백 속으로 흐르게 한다. 시 속 마침표는 보이지 않는 ‘숨의 창고’이다. 당신의 숨결이 닿는 순간, 시는 다시 살아난다. 마침표 하나로 시적 정서가 닫히고, 생략으로 시적 정서는 퍼진다. 시인은 마침표를 결정한다. 독자는 그 여백을 해석한다. 시 읽기의 창조성은 바로 이 선택의 순간에 깃든다. 시 속 마침표를 만난다면, 보이지 않는 숨의 저장소로 해석할 수 있다.
마침표는 시적 정서의 흐름을 끊거나 연장하는, 시적 호흡의 조율자이다. 이 작은 마침표는 시적 정서를 닫기도 하고, 시적 정서의 여백을 열어 두기도 한다. 마침표 하나로 인해 시는 고요히 닫히거나, 열림으로 독자의 내면으로 파고든다. 시적 정서는 호흡과 결을 따라 흐른다. 마침표를 찍는 순간, 호흡은 멈추고 정서의 파동은 단일 파장을 수렴한다. 이때 마침표는 흐르던 정서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발자국처럼 고정시킨다. 즉, 마침표는 정서적 순간을 고요하게 닫는다. 마침표를 제거하면 시적 정서는 여백을 타고 번져 나간다. 독자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목소리’로 남는다.
마침표를 찍는 순간, 시의 정서는 닫힌다. 생략하면 여백 속으로 퍼져 나간다. 독자는 마침표를 건너 고정된 의미와 흐르는 정서 사이를 왕복한다. 선택은 시인의 몫이고,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우리는 마침표를 보며 시적 정서를 접을지, 빈칸을 응시하며 펼칠지 스스로 결정한다. 그 순간이야말로 시 읽기의 가장 민주적이고 창조적인 행위이다.
이러한 논의를 종합하면, 마침표와 생략은 시적 표현의 결과가 아니라, 철저히 시인의 의도적 장치임을 알 수 있다. 창작자는 마침표를 찍거나 지우는 행위 자체가 곧 ‘텍스트 편집의 권력’임을 자각해야 한다. 따라서 마침표의 사용 여부를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시 창작 교육은 시의 정서적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위험이 있다. 이보다 세심한 미학적 감각과 텍스트의 정서 흐름에 대한 존중이 요구된다.
구조주의는 마침표를 텍스트의 내부 구조로 명확히 구획하는 기호, 해체주의는 그 기호성의 흔들림과 여백을 통해 다의성과 차연의 공간을 강조한다. 반면, 낭만주의는 감정의 완결 혹은 도약으로써 마침표를 중시한다. 모더니즘은 기호의 절제와 리듬 감각을 통해 의미의 응축을 실현한다. 이처럼 마침표 하나는 정서의 정지선이자 발화의 변곡점으로서, 문학적 사유와 해석 이론의 교차점에서 존재한다.
이 글을 통한 핵심 발견은 시에서 마침표 삽입과 생략은 시인의 철저한 의도이다. 한국 문단이나 강단의 시 창작 교수자 중에 ‘마침표를 무조건 생략하라.’고 지도하는 자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엉터리인지 알 수 있게 한다.
이 글의 마지막 마침표는 닫힘이 아니라, 여운이다. 시와 함께 남아 있는 독자의 해석만이 그 여운을 끝낼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점 하나, 숨 하나.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겸임교수
저서 : 평론집 10권, 이론서 3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