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자전거를 탔다. 집을 나서려는데 앞바퀴가 펑크 나 있었다. 마침 여분의 튜브가 있어 갈아 끼우고 공기를 채웠다. 잠시 손을 털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햇살이 부드럽게 번지고 출발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다. 군자교를 지나 중랑천 변을 따라 의정부 방면으로 달리는 길에 장미, 코스모스, 금계국, 백일홍, 그리고 이름 모를 온갖 들꽃들까지 나를 반기듯 피어 있다. 바람은 한결 부드럽고 물 위로 햇살이 반짝였다. 광진구, 중랑구, 노원구, 도봉구, 의정부시, 양주시,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동대문구를 지나 집으로 돌아오니 모두 일곱 개 지자체를 거친 셈이다.
지나온 구마다 풍경이 달랐다. 꽃과 나무를 정성껏 가꾼 곳, 길을 반듯하게 닦은 곳, 그 작은 차이들이 사람 사는 모습처럼 느껴졌고 길가 여러 곳에서는 게이트볼을 즐기는 사람들이 공을 굴리며 웃고 옆 사람과 대화하는 모습이 평화로웠다. 그들의 웃음이 가을 햇살처럼 잔잔히 퍼지며 나도 언젠가 그렇게 하루를 보내게 될까를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은 달리고 싶어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를 타려면 네 바퀴가 아닌 두 바퀴로 중심을 유지해야 하고, 달리지 않으면 설 수도 없어 멈춘다는 사실이 삶과 닮았다. 자동차처럼 누구랑 같이 탈 수도 없고,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도, 누굴 도와 줄 수도 없는 것이 자전거 타기이며, 나 아닌 다른 이가 나 대신 살아 줄 수도 없고, 같이 가 주더라도 한계가 있다는 점 역시 닮았다. 멈추면 쓰러지고 두려워도 일단 페달을 밟아야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한때 크게 다친 적이 있다. 7,8년 전 봄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다리를 심하게 다쳤고 한 해를 꼬박 고생했지만 상처가 아물고 나니 다시 바람이 그리워졌다. 넘어졌다고 영영 멈출 수는 없는 일, 삶도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나는 다시 자전거에 올랐고, 두려움이 조금 남아 있어도 달리기 시작하면 사라졌다.
달리다 보면 각 지자체마다 작은 풍경의 차이가 느껴진다. 광진구는 한강변은 잘 가꿨지만 중랑천까지는 손길이 닿지 않은 듯하고, 노원구는 길이 반듯해 페달이 가볍다. 어떤 구는 겨울을 준비하며 체육시설과 산책로를 정비하는 일손이 바쁘고 기울어진 나무 가지를 정리하며 길을 다듬는다. 이런 풍경들을 지나며 사람 사는 일도 저마다 구간이 다름을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지금이 공사 중인 인생이고, 누군가에겐 이미 단단히 다져진 길이다. 중랑천 물속에 생명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물오리와 다른 물새들이 물 위를 유유히 떠다니며 조용히 날갯짓을 하고 있어 삶도 조금 탁하고 냄새가 나더라도 그 안에서 묵묵히 이어가는 생명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온몸이 바람에 닿는다. 그 감촉이 좋고 페달을 밟는 발끝과 바람이 지나가는 팔뚝을 통해 지나간 세월이 겹쳐 스쳐간다. 나는 젊을 때보다 더 느리게 달리지만 지금이 더 깊이 느껴지고 빠르게 달릴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눈에 들어온다. 집에 돌아오니 마침 외출했던 아내가 들어와 “자전거 바퀴도 갈 줄 알아요?”라고 묻고 나는 “아직도 내 실력을 몰라?”라고 맞받아치며 둘 다 웃었다. 내가 아직 달리고 그녀가 아직 웃는다는 것은 우리 삶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뜻이니까 이런 농담이 오가는 것이 고맙다.
오늘 하루 참 많은 길을 지나왔다. 일곱 개의 지자체, 수많은 꽃과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까지 모두 제각기 다른 속도로 살아가지만 결국 같은 바람을 맞으며 같은 길 위를 걷고 있다. 자전거는 가만히 서 있을 수 없고 밟아야 선다. 밟아야 달린다. 삶도 그렇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두려워도 다시 페달을 밟아야 길이 열리며 나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조용히 페달을 밟으며 살아간다.
[문용대]
‘한국수필’ 수필문학상 수상
‘문학고을’ 소설문학상 수상
‘지필문학’ 창립10주년기념 수필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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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영원을 향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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