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정전(停戰)의 약속, 그리고 마흐루나의 검은 연기

-지도 한 장에 생사가 갈렸다! 이스라엘이 보낸 소름 돋는 '경고장'의 정체.

-휴전은 쇼였나? 마흐루나를 집어삼킨 검은 연기, 그 10분의 진실.

-세계대전 전야인가? 이스라엘부터 베네수엘라까지, 지금 지구가 심상치 않다.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평화의 가면이 벗겨진 아침

 

2025년 12월 4일, 중동의 하늘은 다시금 잿빛으로 물들었다. 우리는 흔히 '정전(Ceasefire)'이라는 단어에서 고요함과 안식을 기대한다. 종이 위에 서명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그 약속이 얼마나 허망하게 부서질 수 있는지를 목격하는 일은 실로 참담하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의 국경, 그 오래된 증오의 땅에서 들려온 소식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 그 이상이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약속'이라는 것이 탐욕과 공포 앞에서 얼마나 가벼운 깃털처럼 날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증거다.

 

CNN TÜRK의 속보가 전한 그날의 풍경은 기이하리만큼 차가웠다. 이스라엘군은 공격 버튼을 누르기 직전, 마치 신사적인 초대장을 보내듯 경고를 보냈다. "건물을 비워라. 300미터 밖으로 물러나라." 이 메시지는 살리기 위한 자비인가, 아니면 파괴를 정당화하기 위한 알리바이인가? 그 경고가 떨어진 지 불과 몇 분 후, 마흐루나(Mahruna)의 하늘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나는 그 연기 속에서, 짐을 챙길 새도 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 달렸을 어느 어머니의 거친 숨소리를 듣는다. 평화는 찢겨졌고, 그 자리는 다시금 공포가 채웠다.

 

지도로 그려진 죽음의 알고리즘

 

이번 사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그리고 가장 소름 끼치는 대목은 이스라엘군이 보여준 '정밀함'이다. 그들은 공격 목표가 된 두 개의 마을을 지도로 명시했다. 빨간색 원이 그려진 그 지도는 군사 작전실의 모니터에서는 전략적 목표물이었겠지만, 그 땅에 발붙이고 사는 이들에게는 사형 선고와 다름없었다.

 

현대전은 이제 감정이 거세된 알고리즘의 전쟁이 되어가고 있다. "주민들에게 긴급 경고"라는 타이틀을 달고 배포된 대피령은 국제법이라는 틀 안에서 합법적인 살상을 수행하려는 치밀한 계산의 산물이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경고했다." 

 

그러나, 300미터를 달려서 피할 수 있는 것은 육체뿐이다. 자신이 평생 일구어 온 집이, 추억이 깃든 건물이 눈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그들의 영혼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가? 마흐루나의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는 단순히 콘크리트 덩어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는 누군가의 저녁 식탁이 있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정밀 타격이라는 핑계로 자행되는 이 파괴는, 기술이 인간성을 압도할 때 세상이 얼마나 비정해질 수 있는지를 웅변한다.

 

페르시아의 그림자와 요동치는 금 시장

 

시선을 조금 더 넓혀보자. 레바논 남부의 포성은 그곳에서 멈추지 않고 저 멀리 테헤란의 심장부까지 진동을 보낸다. 이스라엘 총리가 던진 "우리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말은 단순한 레바논 공격을 넘어, 배후에 있는 거대한 그림자, 이란을 향한 서늘한 칼날이다.

 

흥미롭게도, 전쟁의 공포는 총성보다 시장에서 먼저 감지된다. 이란 내부에서 금값이 기록적으로 폭등하고 있다는 소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화폐는 국가를 신뢰할 때 가치를 지니지만, 금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보루다. 사람들이 리알화를 버리고 금을 사 모으는 행위는, 곧 전쟁이 닥칠지 모른다는 본능적인 공포의 발현이다. 정치인들이 강단에서 호기롭게 전쟁과 승리를 외칠 때, 서민들은 장롱 깊숙한 곳에 금붙이를 숨기며 다가올 겨울을 대비한다. 이스라엘과 이란, 이 두 거대 세력의 대리전 양상은 이제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레바논은 그 거대한 파열음이 터져 나오는 틈새일 뿐이다.

 

2025년, 세계는 화약고 위에 서 있다

 

이 비극은 중동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접한 뉴스 포털의 다른 헤드라인들을 보라. 러시아는 유럽연합의 계획을 "전쟁의 원인"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고, 대서양 건너 베네수엘라를 향해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상 공격" 위협이 들려온다.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으로 날아가 시진핑 주석을 만나는 그 분주한 외교의 현장조차, 어쩌면 통제 불능으로 치닫는 세계 질서를 붙잡아보려는 위태로운 몸짓처럼 보인다.

 

지금 우리는 거대한 혼돈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강대국들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 으르렁거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레바논의 마흐루나 같은 작은 마을들은 체스판 위의 말처럼 희생된다. 정전 합의가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국제 사회의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에서, 약소국의 평화는 강대국의 기분에 따라 언제든 철회될 수 있는 임시 허가증에 불과한 것인가?

 

그래도 우리는 평화를 물어야 한다

 

다시 마흐루나의 연기 속으로 돌아가 보자. 폭격이 지나간 자리,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망연자실 서 있을 그 누군가의 눈망울을 떠올린다. 그 눈동자에 비친 세상은 지옥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30년 넘게 이슬람권의 땅을 밟으며 보아왔다. 폐허 속에서도 기어이 꽃을 피워내는 끈질긴 생명력을.

 

이스라엘의 공격이 재개되었다는 소식은 절망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내가, 저 멀리 떨어진 타인의 고통에 공명할 때, 비로소 평화의 가능성은 아주 미약하게나마 숨을 쉬기 시작한다. 전쟁은 군인들이 하지만, 평화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연대와 기도로 만들어진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지도 위에 그려진 빨간 점은 타격 목표가 아니라,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이 사는 집이라는 사실을.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전쟁은 결국 사람을 죽이는 야만적인 행위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오늘 밤, 레바논 남부의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을 이름 모를 이들을 위해 잠시 마음을 모은다. 부디 그들의 밤이 너무 길지 않기를, 이 지독한 폭력의 사슬이 끊어지는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

 

작성 2025.12.05 00:44 수정 2025.12.05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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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