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이 84년에 근접했지만, 이 중 약 18년은 질병을 앓는 기간으로 나타났다. 겉으로는 장수국가로 보이지만, 삶의 질을 유지하는 ‘건강수명’은 여전히 기대수명에 비해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3일 공개한 ‘2024년 생명표’는 이러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생명표는 특정 연령대가 평균적으로 몇 세까지 생존할지 예측하는 통계 자료다. 이번 조사에서 지난해 출생한 아이의 기대수명은 83.7년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0.2년 증가한 수치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70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2022년 최초로 감소세를 보였던 기대수명은 2023년부터 다시 증가세로 전환해 장기적 상승 흐름을 회복했다.
그러나 기대수명에 포함된 건강한 기간은 65.5년에 그쳤다. 이는 전체 생애 중 약 21%에 해당하는 18.2년을 질병과 함께 보낸다는 의미다. 병원 진료나 치료 후 회복의 어려움 등으로 ‘유병 기간’이 짧아지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을 이어가고 있다.
성별 건강수명 비율 역시 차이가 컸다. 남성은 79.9%의 기간을 건강하게 보내는 반면 여성은 76.7%에 머물렀다. 평균적으로 더 오래 사는 여성에서 건강 문제를 겪는 기간이 더 길게 나타나는 구조다.
박현정 국가데이터처 사회통계국 인구동향과장은 “코로나19 이후 의료체계 변화와 진료 접근성 확대가 병원을 찾는 횟수 증가로 이어졌다”며 “이는 유병 기간 통계에 영향을 준 요인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전 국민 의료보장 확대는 생명 연장에는 기여했지만 건강 상태 개선과는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요 사망 원인을 살펴보면, 암이 전체 사망의 19.5%로 1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폐렴(10.2%), 심장질환(10%), 뇌혈관질환(6.9%) 순이었다. 이번 생명표에서는 가장 큰 사망 요인인 암이 사라질 경우 기대수명이 3.3년 늘어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심장질환이 제거될 경우 1.2년, 폐렴이 사라지면 1년 정도 기대수명이 추가될 것으로 계산됐다. 이는 특정 질환이 인구 생존 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령대별 기대여명도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2024년 기준 60세 남성은 평균 23.7년, 여성은 28.4년을 더 살 것으로 예측됐다. 40세 기준으로 보면 남성은 41.9년, 여성은 47.4년을 더 살아갈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가 적을수록 기대여명이 큰 것은 당연하지만, 여성의 생존 기간이 모든 연령대에서 더 길게 나타나는 경향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이번 생명표는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지만, 동시에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사는가’라는 과제를 다시 제기한다. 의학 기술 발전으로 생명이 연장되고 있으나, 만성질환과 노년기 건강관리 문제로 유병 기간이 줄어들지 않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리 체계와 개인 건강 수준 모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명목상 장수 사회에 진입했지만, 실질적 삶의 질을 결정하는 건강수명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의료 접근성 향상과 만성질환 관리 체계 강화, 고령층 건강정책 재정비 등이 병행될 때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향후 생명표 분석은 국민 건강정책 방향을 점검하는 주요 지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