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배 칼럼] 지금 어디쯤 살아내고 있습니까

이윤배

가끔은 그냥 목놓아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이유 없이 마음이 눅눅해져 있는 날, 혼자 있는 방에 스며드는 고요조차 너무 크고 적막하게 느껴질 때, 그런 날엔, “살아내는 일”이라는 말이 그저 생존의 기술이 아닌 감정의 깊이를 통과하는 인내처럼 느껴진다. 숨 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확신할 수 없고, 사라져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은 고립감이 조용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마음을 잠식한다.

 

하루가 시작되면 나는 물론 사람들은 자동 로봇처럼 움직인다. 눈을 뜨고, 세수하고, 누군가와 말 몇 마디를 나눈다. 나 홀로 살면 이것마저도 할 수 없다. 이런 일상 속에서 누군가는 아픈 이별을 견디고 있고, 또 누군가는 무너진 꿈 위에 체념을 포개고 있다. 겉으론 괜찮은 평온한 얼굴이지만, 그 내면에 쌓여 있는 감정들은 때때로 침묵 속에 묻혀버린다. 말할 곳도, 들어줄 사람도 없어 스스로를 삼켜야 하는 감정, 그것이 오래되면 마음이 다 말라버릴 것만 같다.

 

나는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지금 어디쯤 살고 있는 걸까?”

 

아니,

 

“어디쯤 살아내고 있는 걸까?”

 

삶의 정답은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버텨낸다는 말이 가시처럼 마음에 걸린다. 그것은 그냥 살아간다는 말보다 훨씬 더 절박하고, 처절한 고백이다. 무너지는 감정을 그러쥐고, 하루하루를 통과해낸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그 “버팀”이라는 말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홀로 지샌 수많은 밤과 외로운 눈물이 공존하고 있다.

 

친구에게 “잘 지내?”라고 묻고 나서 돌아오는 “응, 그럭저럭”이라는 말이 가끔은 무겁게 가슴을 짓누른다. 그 말 속엔 말하지 못한 서러움과 외면당한 마음, 그리고 고통과 고요한 인내가 숨겨져 있는 까닭이다.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다 알 수 없다. 그래서 늘 조심스럽다. 살아내는 일은 결코 혼자일 수 없는데, 이상하게도 고통은 늘 혼자일 때 가장 깊고 처절하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삶이 늘 아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주 가끔은 다 무너질 것만 같던 날,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따뜻한 햇볕 한 자락이,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 한 송이가 끊어질 듯한 숨통을 틔워줄 때도 있다. 소소한 무언가가 내 안의 다쳐서 아픈 마음을 잠시 다독여줄 때, 그런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직 살아내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넘어져 있어도, 울면서 잠들어도, 마음이 부서진 채 버티고 있어도 지금, 이 순간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대단한 존재들이다.

 

나는 오늘도 묻는다. 

 

“어디쯤 살아내고 있습니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여기서 숨을 쉬고 있는 내가 살아내는 중이라는 것만은 분명하고 확실하다.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더라도, 울면서 잠들어도, 마음이 부서진 채 버티고 있어도, 살아내고 있다는 건 참으로 위대하고 거룩한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방식대로 아주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고통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작은 온기라면, 나는 앞으로도 조금씩, 꾸준히, 살아내고 싶다. 말없이 지나간 날들 속에서도, 무너졌던 순간들 속에서도, 나를 이루는 것들은 결국 살아내고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또다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어디쯤 살아내고 있습니까?”

 

여전히 명확한 답은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아직 숨 쉬며 이 자리에 있는 나는, 때로는 힘겹게, 때로는 절박하게 삶을 살아내는 중이다.

 

 

[이윤배]

(현)조선대 컴퓨터공학과 명예교수

조선대학교 정보과학대학 학장

국무총리 청소년위원회 자문위원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초청 교수

한국정보처리학회 부회장 

이메일 : ybl7736@naver.com

 

작성 2025.12.05 10:22 수정 2025.12.0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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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