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서 칼럼] 비평은 태도다 – 남송우의 김윤식 읽기와 비평적 기준의 윤리

이진서

남송우의 『김윤식 비평가의 편모를 찾아서』는 김윤식이라는 거대한 이름을 다시 불러내지만, 그를 거창한 전기의 주인공으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체를 말할 수 있다”는 전기적 관점 자체에 의문을 던지며, 부분과 단면을 통해 한 비평가의 삶을 더 섬세하게 이해하려 한다. 

 

책 제목의 ‘편모(片貌)’란 단어가 시사하듯 남송우는 일부만을 보여주기 위해 전체를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섣불리 말하는 순간 놓치기 쉬운 복잡한 결을 지키기 위해 ‘부분으로부터 생각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이 절제된 태도는 김윤식이라는 인물에게 가장 적합한 접근이기도 하다. 그의 비평은 방대하고, 감정과 사유의 궤도는 한 시대를 압도할 정도로 넓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남송우는 사건이나 업적을 차례로 소개하는 방식이 아닌 다양한 자료 속에 흩어진 작은 장면들을 모으고, 그 장면들이 비평가 김윤식의 내면에서 어떤 윤리적 기준을 만들어냈는지를 조용히 추적한다. 언론 기사, 제자들의 기억, 고별 강연 등 서로 다른 기록들은 하나의 통일된 이미지로 합쳐지지 않는다. 남송우는 그 각각의 장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타자의 언어에 응답했는가’, ‘문학 앞에서 어떤 태도를 유지했는가’를 읽어낸다. 전체의 그림은 바로 이런 작은 단면들의 결을 따라갈 때 비로소 보인다.

 

특히 남송우는 김윤식이 말했던 ‘기준’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해석한다. 김윤식에게 기준은 시대의 유행이나 학계의 권위가 아니라 텍스트가 보내오는 요청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감각이었다. 그는 문학작품을 분석하는 '기술자'가 아니었다. 언어가 요구하는 책임을 평생의 습관으로 만들어온 실천적 존재였다. 이 반복되는 실천 - 재능보다 노력, 영감보다 책임, 생산성보다 자기수양-이야말로 김윤식 비평 세계의 핵심을 이루는 윤리라는 것이 남송우의 진단이다.

 

 

그러나 이 책이 지닌 분명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먼저, ‘편모’라는 방식은 인물의 복합성을 잘 지켜내지만 어떤 단면을 선택하고 해석할지는 결국 연구자의 판단에 크게 의존한다. 독자로서는 그 선택의 기준이 다소 불투명하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김윤식의 윤리적 기준이 시대의 제도적 환경, 문학장의 권력 구조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김윤식 비평의 영향력과 모순을 함께 살피는 시도는 더 보완될 필요가 있다. 책 전체에 흐르는 남송우의 깊은 애정은 김윤식의 취약성이나 실패를 충분히 조명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비평 전통을 복원하려는 목적이 분명한 만큼 선택된 장면들이 긍정적 이미지에 집중되는 인상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남송우는 김윤식이라는 비평가를 단순한 회고의 대상이 아니라 한국 문학비평사가 공유해온 태도와 윤리의 구조 속에 다시 위치시킨다. 비평은 해석의 기술이 아니라 책임의 태도이며, 비평가의 삶을 이루는 것은 성취가 아니라 그 성취를 가능하게 한 내적 기준이라는 점을 되새기게 만든다. 김윤식의 ‘편모’를 더듬는 과정은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우리는 무엇에 응답하며 글을 쓰는가?”, “비평은 어떤 삶의 방식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남송우가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단단하다. 비평가의 삶은 결국 태도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태도는 그가 평생 지켜온 기준 속에서 드러난다. 『김윤식 비평가의 편모를 찾아서』는 한 시대 비평가의 초상을 넘어, 오늘 글을 쓰고 읽고 가르치는 모든 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다시 던진다. 당신은 지금 무엇에 응답하며 글을 쓰고 있는가.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lsblyb@naver.com

 

작성 2025.12.06 10:09 수정 2025.12.0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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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