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정신의 뿌리는 20대 초반에 형성되었다. 그 무렵 나는 인간의 삶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남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신앙이라기보다 철학적인 질문이었다. 그러다 스웨덴의 과학자이자 신비주의 사상가 스웨덴보리의 저서를 접했다. 『천국과 지옥』과 『나는 영계를 보고 왔다』, 두 권의 책은 내 삶의 방향을 크게 바꿔놓았다.
그의 글은 감정이 아닌 이성의 언어로 쓰여 있었다. 천국과 지옥, 그리고 인간의 내면과 영혼의 상태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죽음이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깊이 사로잡혔다. 그 순간부터 ‘영계는 실존한다.’는 믿음이 내 안에 뿌리내렸다.
1990년,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을 보았을 때, 그 믿음은 눈앞의 현실처럼 다가왔다. 죽은 남자의 사랑이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였다. 영혼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과 이어져 있다는 메시지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는 그 영화를 열 번도 넘게 보았다. 볼 때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확신이 더해졌다.
〈사랑과 영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스웨덴보리가 전한 영계의 핵심 사상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첫째, 의식은 계속된다. 주인공 샘은 죽은 뒤에도 여전히 자신으로 남아 있다. 기억도 감정도 그대로다. 스웨덴보리는 영혼의 본질이 의식이며,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무대의 전환’이라고 했다. 육체의 소멸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둘째, 미련의 시간이 존재한다. 샘은 사랑하는 몰리 곁을 떠나지 못하고 맴돈다. 그 모습은 스웨덴보리가 말한 ‘중간 영계’의 상태와 닮아 있다. 죽은 영혼은 자신이 세상을 떠났음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남겨진 미련과 감정 속에 머문다고 했다. 샘의 방황은 그 미련을 정화하며 떠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셋째, 소통에는 벽이 있다. 샘은 몰리에게 직접 말을 걸 수 없고, 영매 오다 메이를 통해서만 메시지를 전한다. 이 설정은 스웨덴보리의 영계관과 일치한다. 그는 영계와 인간계는 쉽게 섞이지 않으며, 오직 특별한 매개를 통해서만 연결된다고 했다. 스웨덴보리 자신이 바로 그런 통로였다고 그는 고백했다.
〈사랑과 영혼〉 외에도 영혼의 실재를 느끼게 해준 작품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영화 〈식스 센스(The Sixth Sense)〉이다. 이 영화의 대사, “죽은 사람들은 자신이 죽었다는 걸 모른다.” 이 한 문장은 스웨덴보리의 영계론과 정확히 맞닿는다. 그는 죽은 영혼이 처음에는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생전의 일상을 반복한다고 했다. 〈식스 센스〉 속 떠도는 영혼들은 바로 그 ‘중간 영계’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또 다른 예는 미치 앨봄의 소설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이다. 주인공은 죽은 뒤 다섯 명의 영혼을 만나며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그곳은 심판의 장소가 아니라, 배움과 깨달음의 공간이다. 영혼이 곧바로 완성된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성찰과 성장의 과정을 거쳐 안식에 이른다는 점에서 스웨덴보리의 사상과 닮아 있다.
물론 영화 〈사랑과 영혼〉에는 스웨덴보리의 영계와 다른 점도 있다. 샘이 염력을 사용해 악인을 벌하는 장면처럼, 영화는 극적인 상상력을 덧붙였다. 스웨덴보리에게 영계는 물질이 작용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과 지혜가 작용하는 세계였다. 그러나 그 차이를 넘어, 이 영화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남긴다. “사랑은 죽음을 넘어 계속된다.”라고.
스웨덴보리의 책에서 얻은 확신은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 속에서 다시 확인되었다. 그 믿음은 지금도 내 삶을 지탱하는 한 줄기 빛으로 남아 있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그 믿음을 떠올린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 그곳이야말로 인간의 사랑이 끝나지 않는 또 하나의 현실임을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은 지금도 내 안에서 조용히 타오르며, 내 삶을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되어주고 있다.
[문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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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영원을 향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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