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14세 미만 학생, 히잡 착용 금지법 의회 통과

-열네 살 소녀의 머리칼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 오스트리아의 위험한 도박.

-헌법재판소도 무시했다! 다시 부활한 '히잡 금지법'의 소름 돋는 내막.

-천 조각 하나에 흔들리는 민주주의: 당신이 몰랐던 유럽의 두 얼굴.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최근 오스트리아에서 14세 미만 학생들의 교내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CNN TURK에 따르면, 이 조치에 대해 야당과 인권 단체가 무슬림 공동체를 겨냥했다고 비판하며 반응하고 있다. 과거, 오스트리아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이전에 제정된 유사한 초등학생 대상 히잡 금지법을 취소한 바 있다.

 

우리는 흔히 법이 정의를 수호하고 약자를 보호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때로는 법이라는 이름의 칼날이 가장 여리고 섬세한 영혼들을 향해 겨누어지기도 한다. 최근 오스트리아 의회가 통과시킨, 14세 미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두건(히잡) 착용 금지법'이 바로 그 서늘한 증거다. 오늘, 이 법안 뒤에 숨겨진 오스트리아의 속내와 그들이 감추려 했던 3가지 놀라운 진실을 들여다보려 한다. 이것은 단순히 먼 나라의 법률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다름'을 대하는 우리 시대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열네 살, 그 예민한 영혼을 향한 국가의 침입

 

열네 살.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 1~2학년, 질풍노도의 시기다. 세상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며 '나는 누구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바로 그 나이. 오스트리아 정부는 바로 이 시기의 소녀들에게서 두건을 벗겨내기로 했다. 이전의 논의가 초등학생에 머물렀다면, 이번에는 14세 미만으로 대폭 확대되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이것은 단순한 복장 규제가 아니다. 소녀가 여성이 되어가는 과정, 자신의 정체성을 종교와 문화 안에서 확립해 가는 그 결정적인 시기(Puberty)에 국가가 흙발로 들어와 간섭하겠다는 선전포고다.

 

무슬림 가정에서 자란 소녀에게 히잡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다. 그것은 신앙의 고백이자, 가족과의 유대이며, 세상에 나서는 자신만의 방식일 수 있다. 그런데 국가는 '보호'와 '통합'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그들의 머리 위를 강제로 드러내게 했다. 사춘기 소녀에게 신체의 일부와도 같은 옷을 강제로 벗게 하는 것, 이것을 과연 교육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여기서 소녀들의 눈동자에 스칠 당혹감과 수치심을 본다. 정체성이 형성되는 그 말랑말랑한 시기에, '너의 문화는 틀렸고, 너의 신앙은 숨겨야 할 것'이라는 낙인을 찍는 행위가 과연 그들을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자라게 할지, 나는 깊은 회의를 느낀다.

 

'중립'의 가면을 쓴 차별의 칼날

 

이 법안을 발의한 이들은 "정치적 이슬람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한다"라고 말한다. 겉으로 보기엔 그럴싸하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추어보면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와 평등의 원칙이 피를 흘리고 있다. 재미있는, 아니 씁쓸한 사실은 이 법이 아주 교묘하게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유대인의 키파(Kippah)나 시크교도의 터번(Turban)은 슬그머니 규제 대상에서 빗겨나 있다. 오직 무슬림 소녀들의 머리만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야당인 녹색당과 인권 단체들이 "이것은 명백한 차별이며 헌법 파괴"라고 절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정 종교의 상징만을 콕 집어 금지하는 것이 과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것은 마치 "우리와 같아지라"라는 강요와 다르지 않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나와 다른 신앙을 가진 이웃을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는 사회는 병들어 있다. 오스트리아의 이번 결정은 무슬림 공동체를 향한 노골적인 '타자화(Othering)'이며, 그들을 우리 사회의 '이방인'으로 영원히 가두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차별, 그것만큼 잔인한 폭력은 없다.

 

되풀이되는 역사: 헌법재판소에 대한 정면 도전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역사는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하게 반복되고 있다. 2019년, 당시 오스트리아 연립 정부는 이미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비슷한 법을 만들었다. 그때도 세상은 시끄러웠다. 그러나 2020년 12월,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는 이 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며 폐기 처분했다. "특정 종교를 표적으로 삼는 것은 평등권 침해이며, 종교의 자유를 훼손한다"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국가의 최고 사법 기관이 정의의 편에 서서 브레이크를 걸었던 것이다.

 

그런데,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의회는 똑같은 칼을 다시 갈아들고 나왔다. 이번엔 날을 더 세워서 대상을 14세까지 늘렸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입법부가 사법부의 최고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뭐라 하든, 우리는 우리의 정치적 어젠다를 관철시키겠다"는 오만함이 읽히는 대목이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확립된 판례를 무시하고, 대중의 반이민 정서에 편승해 위헌적 요소를 다분히 안고 있는 법안을 밀어붙이는 행태. 이것은 정치가 법 위에 군림하려는 위험한 징후다. 헌법재판소가 지키려 했던 가치, 즉 '소수자의 권리 보호'라는 민주주의의 대들보가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는 망치에 의해 다시금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두건 너머의 사람을 보라

 

히잡 금지법은 겉으로는 '해방'을 외치지만, 실상은 '배제'를 낳는다. 이 법은 또다시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오를 것이다. 하지만, 법적인 결론이 나기 전까지, 이미 수많은 어린 영혼은 상처 입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움츠러들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법 조항이 아니다. 그 법 때문에 교문 앞에서 주저하며 두건을 벗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며 눈물 글썽일 한 소녀의 마음이다. 그 소녀의 떨리는 어깨를 감싸안아 주는 것, 그것이 법보다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머리카락을 가리든 내놓든, 그 아이는 존중받아 마땅한 한 명의 고귀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작성 2025.12.12 00:22 수정 2025.12.12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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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