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칠천 원

이동용 (수필가/철학자)




니체를 통해서는 아버지를, 한강을 통해서는 어머니를 이해했습니다. 


요즈음 드는 생각입니다. 오늘은 갑자기 ‘이만칠천 원’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머니에게서 받은 최초의 돈이자 마지막 선물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어머니가 올라온 날이었습니다. 방 안에는 책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습니다. 방을 치우려고 애를 썼습니다. 정리하다가 어머니를 맞이한 것입니다. 방안의 무질서가 숨통을 조여 왔습니다.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숨이 막혔습니다.


“왜 그러느냐?” 어머니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지친 나에게 물었습니다. 


“책장이 하나 더 있으면 참 좋겠어요!” 


“그게 얼마냐?” 


“이만칠천 원요!” 


어머니는 치맛속에서 꼬깃꼬깃 접힌 지폐를 꺼냈습니다. 어머니가 가진 돈의 전부였습니다. 어머니는 늘 누구에게 돈을 달라고 말한 적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토록 소중했던 돈을 내게 선뜻 내준 것입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때가 되면 속아내야 했습니다. 


새해가 되면 수첩을 새로 사서 전화번호를 옮겨 적어야 할 때 이름들을 속아내듯이, 버려야 할 책들을 골라내야 했습니다. 


어머니의 돈으로 산 책장에 꽂혔던 책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그 책들 때문에 어머니의 소중했던 돈을 써야 했던 때가 화살처럼 가슴에 박혔습니다. 그렇다고 끌어안고 살 수도 없었습니다.


한때는 소중했지만, 이제는 작별해야 할 책들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돈으로 산 책장 속에 가지런히 꽂던 그때 그 당시의 흐뭇했던, 숨통이 트였던 그 순간의 느낌을 되새길수록 또다시 숨통이 막혔습니다. 


그래도 버려야 했습니다. 책들을 쌓아놓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별이다. 잘 가라. 먼지가 되어 다시 만나자. 허공 속에서 서로 알아보자. 흩어진 존재들끼리 서로 끌어안아주자. ‘회자정리 거자필반’, 국어 시간에 배운 이 글귀들을 떠올리며 다시 만나자. 쌈짓돈을 꺼내주시던 어머니도 다 이해해 줄 거야. 그때 웃기 위해 지금을 견디도록 하자꾸나. 


이런 말들을 보이지 않는 제사상 위에 올려놓고 끝도 없이 이별노래를 불렀습니다. 침묵으로 하는 노래였습니다. 굳게 닫힌 입 속을 맴돌던 아우성이었습니다.


“허공에 토해져 나온 어머니의 몸속 어둠이 도로 내 목구멍 속으로 몰캉몰캉 삼켜지는 것 같은 기분은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야릇한 것이었다.” 


한강의 아기 부처 속에서 읽힌 문구입니다. 어머니의 호흡이 나에게 이어져 지속되는 기분입니다. 


여성의 여성성이 내 안에서도 인식의 언어로 전환해 줍니다. 살아 있음은 ‘좋지도 싫지도 않은 야릇한 것’입니다.


살아 있어서 고생은 피할 수 없지만, 고생은 고행의 기회가 됩니다. 


태어난 것은 죄의식을 피할 수 없지만, 죄의식은 구원의식으로 전환해 줍니다. 


돌고 도는 순환 속에서 인식은 연꽃의 줄기처럼 수면을 향해 나아갑니다. 윤슬로 수놓은 수면 위를 향해 나아갑니다.


니체도 아버지의 죽음에서 생각을 이어나갔습니다. 


“수수께끼 형식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나의 아버지로서는 이미 사망했고, 나의 어머니로서는 아직 살아서 늙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양쪽의 혈통은 마치 인생의 사다리에서 가장 윗부분과 가장 아랫부분에 있는 디딤판처럼 데카당인 동시에 시작이기도 하다.” 


니체의 부모님은 아버지가 먼저 죽고 어머니는 아들 니체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죽던 나이를 지나가며 니체는 죽음을 맛보았습니다.


죽을 것 같았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니체는 끊임없이 올라갔습니다. 그 상승의 길이 오롯이 이 사람을 보라 속에 담겼습니다. 


‘어떤 변화를 겪어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그토록 치열하게 밝히려 했던 이유는 그가 바로 그렇게 또 그런 식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강물과 아버지의 강물이 하나가 된 곳에 두물머리가 있습니다. 


하나가 되어 흐르는 한강이 있습니다. 참으로 야릇한 강물입니다. 막혔던 숨이 트여 이어지는 쾌감입니다.




작성 2025.12.15 09:17 수정 2025.12.1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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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