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목사가 말하는 사도행전 8장의 참된 복음과 하나님 나라


장재형목사의 사도행전 8 1–5절 설교를 토대로, 스데반 순교 이후의 박해와 흩어짐이 어떻게 복음 확장의 통로가 되었는지, ‘참된 복음역사를 꿰뚫는 하나님 나라의 시각으로 초대교회와 현대 교회의 선교 패러다임을 신학적·실천적으로 조명한다.


사도행전 8 1–5절은 교회의 역사가 언제나안전한 성장의 궤도에서만 전개되지 않았음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스데반의 피가 예루살렘 돌길에 스며든 직후, 교회는 환호 속의 승리보다 격랑 속의 생존을 먼저 맞닥뜨렸다. 장재형(올리벳대학교 설립)목사는 이 대목을 단지 비극의 기록으로 읽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교회가 한 도시의 성공적 종교 공동체로 고착될 때 복음은 종종머무름의 미학에 갇히지만, 성령은 그 머무름을 깨뜨려전진의 윤리로 교회를 이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도행전 8장의 흩어짐은 퇴각이 아니라 배치이며, 상실이 아니라 파송이며, 사라짐이 아니라 확장이다.


초대교회가 경험한 박해는 감정의 차원에서만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배의 장소, 공동체의 구조, 생계의 기반을 동시에 흔드는 전면적 해체였다. 사울이 집집마다 들이닥쳐 남녀를 끌어 옥에 넘겼다는 서술은 당시 신자들이 가졌던 신앙의 결단이 얼마나 구체적 위험을 동반했는지를 보여준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을 읽으며교회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묻는다. 교회는 건물과 제도의 총합이 아니라, 복음을 품은 사람들이 성령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생명체이며, 따라서 외부의 강압이 모임을 흩뜨려 놓아도 복음의 생명은 오히려 더 넓은 공간으로 유통된다고 강조한다.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남았다는 서술은 지도력의 고정이 아니라, 흩어진 성도들의 이동과 함께 중심과 주변이 동시에 작동하는 다층적 선교 구조를 암시한다.


사도행전 8 4,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는 문장은 초대교회 선교의 핵심을 압축한다. 복음은 전문 전도인의 언어만이 아니라 삶의 동선과 생존의 여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증언이었다. 장재형목사가 말하는참된 복음은 여기에 뿌리를 둔다. 참된 복음은 위기를 회피하는 종교적 위안에 머물지 않고, 위기 한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담대히 말하게 만든다. 복음이 진리라면 그것은 환경의 호의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리한 조건은 진리의 순도를 드러내는 시험대가 된다. 초대교회가 그 시험대 위에서 무너지지 않았던 까닭은, 그들이교회 중심의 안전보다하나님 나라 중심의 사명에 더 깊이 매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박해는 단지 악의 폭주가 아니라 역설적 섭리의 공간이 된다. 물론 박해 자체가 선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의 의도를 선으로 전환시키는 주권을 지니신다. 장재형목사는 바로 이 지점에서 교회가 역사에 대해 가져야 할 해석의 근력을 강조한다. 사람의 눈에는 스데반의 죽음이 교회의 패배처럼 보였지만, 성령의 시선에서는 그 순교가흩어짐의 문을 열어 땅끝을 향한 경로를 가시화한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이라는 사도행전 1 8절의 선교 지도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 이동의 일정표로 전환되는 순간이 바로 사도행전 8장이다.


사마리아로 내려간 빌립의 행보는 지리적 이동 이상의 의미를 품는다. 사마리아는 오래된 상처와 적대가 누적된 경계의 땅이었다. 그 경계에 복음이 들어갔다는 사실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문화적 순혈주의와 종교적 배타성을 허문다는 선언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사건을역사를 꿰뚫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해석한다. 하나님 나라는 특정 민족의 정체성에 갇힌 프로젝트가 아니라 대속의 은혜로 새 인류를 빚어내는 우주적 통치이기에, 경계의 땅은 늘 복음의 실험실이 된다. 빌립이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했다는 진술은 설교의 기술보다 존재의 방향을 강조한다. 빌립은 자기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사마리아를 피하지 않았고, 성령의 인도하심 앞에서 불편한 땅을 향해 내려갔다. 그 내려감은 선교의 본질이높아짐이 아니라낮아짐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장재형목사가 반복해서 환기하는 것은, 교회가 환란이 닥쳐서야 비로소 움직이는 습관을 경계하라는 촉구다. 초대교회도 예루살렘에서의 부흥과 공동체의 안정 속에 머무를 유혹이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성취를 안정으로 바꾸려 하고, 안정은 곧 관성으로 굳어진다. 그러나 복음은 관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복음은 늘 밖으로, 더 멀리, 더 낮은 자리로 향한다. 그래서 장재형목사는 교회가기쁜 노래를 부르며 자발적으로 흩어지는순종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무모한 이동의 낭만을 부추기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긴박성과 구원의 시급성을 실제적인 결단으로 번역하라는 요청이다. 말로만 순종을 말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이동과 헌신과 시간의 재배치를 통해 순종을 증명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외부 박해와 더불어 내부의 사상적 혼란 또한 복음의 순도를 위협했다. 초기 기독교는 영지주의적 경향이나 가현설과 같은 사유체계와 마주하며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라는 복음의 기둥을 지켜야 했다. 장재형목사가참된 복음을 말할 때, 그것은 단지 열정의 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의 정직함과 중심의 명료함을 뜻한다. 인간이 자기 안의 어떤신적 입자를 계발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사고는 십자가의 은혜를 자기계발의 기술로 치환한다. 반대로 복음은 인간의 가능성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건을 중심에 둔다. 그러므로 교회가 어떤 형식을 도입하든, 어떤 플랫폼을 구축하든, 복음의 핵심이 흐려지는 순간 교회의확장은 사실상 공허한 팽창이 되고 만다.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새 시대의 언어를 배우되, 영원한 복음의 문법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균형을 요구한다.


이 균형은 현대 교회가 맞닥뜨린 거대한 변곡점에서 특히 절실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교회의 공간 신학을 시험했고, 예배와 공동체성을 둘러싼 오래된 관습을 급격히 흔들었다. 어떤 교회는 온라인 예배를 통해 새로운 접촉면을 열었고, 어떤 교회는 공동체성의 약화를 경험하며 상실을 맛보았다. 장재형목사는 이 상황을 사도행전 8장의 현대적 변주로 읽는다. 예배당이라는 가시적 중심이 제약을 받을 때 교회는보이는 교회에만 의존해 왔던 신앙 습관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동시에 성령은보이지 않는 교회를 통해 여전히 역사하신다. 온라인 공간에서 흩어진 성도들이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며 각자의 거처에서 이웃을 섬길 때, 교회는 건물 바깥에서 더 넓은 지평을 경험한다. 장재형목사가 말하는 교회의 플랫폼화, 네트워크화는 이 지점에서 단순한 기술 담론이 아니라 사도행전적 교회론의 연장선이 된다.


그는 복음의 본질과 문화의 형식이 맺는 긴장을 자주 설명한다. 복음은 변하지 않지만, 복음이 입는 문화의 옷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통찰은 디지털 시대의 교회에 구체적 과제를 던진다. 교회는 스트리밍과 SNS, 온라인 커뮤니티와 화상회의, 번역 기술과 콘텐츠 제작을 선용할 수 있다. 그러나 도구가 복음을상품으로 포장하는 길로 흐를 때, 교회는 숫자와 클릭의 논리로 자기 정체성을 재단하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기술을 거부하지 않되 기술에 예속되지 않는 영적 주권을 강조한다. 도구는 발이 될 수 있지만, 발이 향하는 방향은 복음이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디자이너와 IT 워커, 콘텐츠 제작자와 온라인 사역자를 단지 실무 인력으로 보지 않고아름다운 발을 구현하는 선교적 동역자로 존중하라고 촉구한다.


사도행전 8장의 흩어짐은 제자도의 성격도 재정의한다. 안정된 중심에서 교육받는 신앙은 때로 지식의 축적에 머물지만, 흩어진 자리에서의 신앙은 삶의 전장이 된다. 장재형목사는 제자훈련을 교회 프로그램의 하나로 축소하지 않고, 성도의 일상과 직업, 관계망 속에서 복음이 체화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흩어진 성도들은 각자의 현장에서작은 교회가 된다. 가정이 예배의 공간이 되고, 직장이 섬김의 현장이 되며, 온라인 커뮤니티가 전도의 접촉점이 된다. 이때 교회의 리더십은 통제의 기술이 아니라, 성도를 파송하고 돌보는 목양의 지혜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남아 공동체의 중심을 지켰듯, 현대 교회도 신학적 분별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성도들을 세상 속으로 내보내는 파송의 구조를 성실히 세워야 한다.


장재형목사의 설교가 도드라지는 지점은 개인 구원의 감격을 역사적 전망과 결합시키려는 노력에 있다. 기독교 신앙은 영혼의 위로만이 아니라 창조에서 새 창조로 이어지는 거대한 서사의 한복판에 서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은 하나님 나라가 결국 역사의 종착지에서 완성될 것임을 증언한다. 그러나 그 완성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 변혁의 소망을 낳는다. 장재형목사가 말하는역사를 꿰뚫는 하나님 나라, 교회가 당대의 사건을 단편적 이슈로 소비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속사적 흐름 속에서 읽어내는 눈을 뜻한다. 교회는 다음 세대를 일으키고, 열방을 향한 선교를 지속하며, 불의와 절망이 짙은 자리에서 빛의 윤리를 실천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전조를 드러낸다. 이런 관점에서 사도행전 8장의 흩어짐은 단지 선교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역사를 움직이시는 방식의 한 장면이다.


이 서사를 시각적으로 환기시키는 명화로는 렘브란트의 「성 스데반의 순교」가 자주 거론된다. 화면을 가르는 강렬한 명암은 폭력과 빛이 한 순간에 교차하는 현실을 압축하고, 돌무더기 아래 쓰러지는 증인의 비극이 곧바로 끝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빛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장재형목사가 사도행전 8장을 읽으며 말하는 바도 이와 닮아 있다. 교회는 돌에 맞는 자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스데반의 피는 공포의 종결점이 아니라 복음의 씨앗이 된다. 복음은 어둠이 깊어질수록 더 선명해지며, 박해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히려 선교의 좌표가 드러난다.


오늘의 교회가 이 정신을 계승하려면, 무엇보다복음의 중심성을 회복해야 한다.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참된 복음은 감정의 고양이나 시대적 유행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십자가의 대속, 부활의 승리, 성령의 내주, 하나님 나라의 도래라는 핵심 진리에 닻을 내린다. 이 중심성이 분명할수록 교회는 형식의 변화에 유연해질 수 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소그룹 중심이든 다중 캠퍼스든, 핵심 진리가 흐릿해지지 않는 한 교회는 새로운 옷을 입을 자유를 가진다. 반대로 중심이 흔들리면 가장 전통적인 형식도 결국 빈 껍데기가 된다. 그러므로 현대 교회는 신학적 분별력과 영적 경건을 동시에 단련해야 한다. 빠른 변화의 시대일수록 느린 기도와 깊은 말씀 묵상이 필요하며, 정보의 홍수 속에서 복음의 언어를 선명하게 다듬어야 한다.


동시에 흩어짐을 두려움이 아닌 소명으로 재해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장재형목사는 환란이 올 때만 떠밀려 나가는 교회가 아니라, 평상시에도 파송의 자세를 갖춘 교회를 꿈꾼다. 이는 선교사를 몇 명 더 보내는 수준을 넘어, 모든 성도를보냄받은 자로 이해하는 선교적 교회론을 요구한다. 직장인과 학생, 예술가와 기술자까지 각자의 삶의 현장이 복음의 전초기지가 된다. 교회의 역할은 성도를 한곳에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충전하여 세상 속으로 내보내고, 흩어진 자리에서 다시 연결되도록 돕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디지털 플랫폼은 흩어진 교회를 잇는 실질적 인프라가 될 수 있다. 온라인 기도 모임과 말씀 코칭, 멘토링과 지역 기반 섬김 네트워크가 촘촘히 운영될 때, 흩어짐은 분열이 아니라 연합의 다른 형태가 된다.


빌립이 사마리아로 내려갔던 것처럼, 현대 교회도 자신이 익숙해 온 언어와 계층, 취향의 경계 밖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단지 다양성을 표방하는 구호가 아니라, 실제적 접근 방식의 변화다. 교회는 지역사회와 도시의 상처, 이주민과 난민,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종교에 냉소적인 이웃을 향해 새로운 대화를 열어야 한다. 이때 복음은 타협의 언어가 아니라 사랑과 진리의 언어로 제시되어야 한다. 장재형목사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적 전망은, 교회가 문화적 갈등의 한복판에서 화해와 정의, 자비의 실천으로 복음의 신뢰성을 세우도록 부른다. 복음은 말의 설득만이 아니라 삶의 증거를 통해 신빙성을 얻는다. 사마리아에서큰 기쁨이 일어났다는 기록은, 복음이 삶을 실제로 회복시키는 능력이 될 때 공동체적 기쁨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침내 사도행전 8 1–5절은 교회를 향한 위로이자 경고이며, 동시에 전망이 된다. 위로는 박해가 복음을 끝장내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오고, 경고는 교회가 안주할 때 하나님이 흔드실 수 있다는 현실에서 오며, 전망은 흩어짐이 곧 확장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역설에서 열린다. 장재형목사는 이 본문을 통해 현대 교회가 불확실성과 변동성 속에서도 복음의 본질을 움켜쥐고, 새로운 형식을 담대히 실험하며, 역사를 꿰뚫는 하나님 나라의 시각으로 다음 세대를 세우고 열방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교회는 환란을 낭만화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환란을 두려움으로만 해석해서도 안 된다. 성령은 흩어진 자리에서 교회를 다시 세우며, 복음은 경계 너머로 번져 나가고,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역사 속에 새 길을 낸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장비가 아니라, 참된 복음을 향한 충성, 그리고 어디로든 보내심을 받을 준비가 된 순종의 태도다. 그 순종이 축적될 때, 장재형목사가 말해 온박해 속에 피어난 복음의 논리는 단지 성경 공부의 감상문이 아니라, 교회의 실재적 생존 방식이 된다. 여기서 핵심은 위기를교회가 당한 피해로만 해석하지 않고, 그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전진하는지를 읽어내는 신앙의 문해력이다.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상처를 외면하지 않되 상처에 붙들리지 않기를 권한다. 상처가 교회를 정의하도록 내버려 두면, 교회는 피해의 정체성에 갇혀 자기 연민을 신앙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상처를 복음으로 해석하면, 교회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걸어갈 수 있고, 두려움을 안고도 증언할 수 있다. 이때 교회는흩어짐을 단지 흩어진 채 남겨 두지 않고, 흩어진 자리에서 복음의 언어를 새롭게 번역해 낸다.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새 시대의 교회 패러다임은 바로 이 번역의 작업을 전면에 세운다. 오늘의 교회는 과거처럼 동일한 문화적 문법을 공유하는 사람들만을 전제로 삼기 어렵다. 세대는 분화되고, 관심사는 파편화되며, 공동체는 물리적 공간보다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더 자주 형성된다. 이런 환경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을 먼저 교회 문화에 적응시키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사람들의 세계를 방문하는 것이다. 사마리아로 내려간 빌립이먼저 내려가서그리스도를 전했던 것처럼, 현대 교회는 디지털 광장과 일상의 현장으로 먼저 내려가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교회가 건물을 벗어나 삶의 자리로 들어가라는 말로 요약하곤 한다. 그 말은 단순한 이동의 권고가 아니라, 성육신적 선교의 회복을 뜻한다. 교회가 세상 밖으로 나가 세상을 정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으로 들어가 세상의 상처를 함께 짊어지고, 그 자리에서 복음의 치유를 제시하라는 부름이다.


그러나 새로운 장으로 들어갈수록 교회는 더 섬세한 분별을 요구받는다. 디지털 선교와 미디어 사역은 접근성을 비약적으로 넓히지만, 동시에 피상성과 과잉노출의 위험을 동반한다. 장재형목사가디자이너와 IT 워커를 귀하게 여기라고 말할 때, 그 말은 기술 만능주의를 선동하기보다, 기술을 복음의 도구로 성결하게 사용하라는 소명에 가깝다. 콘텐츠는 사람을 모으기 위한 미끼가 아니라, 진리를 전하고 사람을 세우기 위한 통로여야 한다. 플랫폼은 교회를브랜드로 포장하는 시장이 아니라, 흩어진 성도가 다시 연결되고 돌봄을 경험하는 생태계여야 한다. 장재형목사가 말하는 플랫폼 교회는숫자를 과시하는 구조가 아니라, 성도의 영혼이 실제로 돌봄받고 성장하는 구조를 지향할 때 설득력을 얻는다. 결국 기술의 성공은 조회수보다 제자도의 열매로 측정되어야 한다.


이때 교회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공동체의 실재성이다. 온라인은 공동체를 가능하게도 하지만, 공동체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기도 한다. 화면 속 친밀감은 때로 책임 없는 관계로 미끄러지고, 설교의 소비는 삶의 순종을 대체하기 쉽다. 장재형목사는 이런 위험을 알고 있기에, “형식은 변할 수 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반복한다. 본질이란, 말씀 앞에서의 회개, 성령 안에서의 변화, 성도의 상호 돌봄, 그리고 세상을 향한 파송이다. 그러므로 디지털 사역이 강화될수록 교회는 더 의도적으로깊이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예배를 본 뒤 바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삶으로 연결하는 대화와 적용의 장, 서로의 삶을 나누며 기도하는 소그룹, 신앙의 습관을 점검하는 영적 동반이 필요하다. 이것은 디지털이든 오프라인이든, 교회가 결코 생략할 수 없는 제자도의 토대다.


장재형목사의 관점에서 보면, 사도행전 8장의 흩어짐은 제자 훈련의 방식에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신앙을안전한 교실에서만 배우지 않았다. 그들은 낯선 도시로 이동하며, 적대적 환경에서 생계를 꾸리며, 관계의 단절과 상실을 견디면서도 복음을 입으로 고백하고 삶으로 번역했다. 이런 맥락에서 제자훈련은 단지 지식 전달이 아니라, ‘복음적 인격하나님 나라의 습관을 길러내는 형성의 과정이다. 현대 교회가 다음 세대를 세우려면, 설교의 감동을 반복 재생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성경의 세계관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기도와 경건의 규율을 훈련하며, 직업 윤리와 관계 윤리, 공적 책임을 복음 안에서 해석하도록 돕는 장기적 교육이 필요하다. 장재형목사가 말하는역사를 꿰뚫는시각은 바로 이 지점에서 교육의 목표가 된다. 성도는 자신의 삶을 개인적 성공의 서사로만 읽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큰 흐름 속에서 이해하며,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역사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성찰하게 된다.


사도행전 8장의 사건이 사마리아에서의 기쁨으로 이어졌듯, 복음의 확장은 결국기쁨의 전염으로 나타난다. 장재형목사는 교회의 사명이 사람들을 죄책감에 묶어 두는 데 있지 않고, 죄에서 해방된 기쁨을 실재로 경험하게 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 기쁨은 가벼운 낙관이 아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통과한 기쁨, 눈물 속에서 피어난 기쁨, 공동체가 서로의 짐을 나눌 때 생기는 기쁨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불안과 우울, 고립과 경쟁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어갈 때, 교회는 단지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이 아니라, 존재의 중심을 회복시키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참된 복음은,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주셨다는 선언이며, 그 선언은 반드시 구체적 돌봄과 정의로운 실천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예배당 안의 경건이 거리의 이웃 사랑으로 확장될 때, 교회는보이는 교회보이지 않는 교회의 간극을 좁히며, 하나님 나라의 현실성을 드러낸다.


결국흩어지는 중에도 전진하는 교회라는 사도행전적 비전은, 오늘의 교회가 선택해야 할 정체성을 선명히 한다. 장재형목사는 그 정체성을 한마디로 ‘Moving Forward’라고 부르지만, 그 전진은 무조건적인 확장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본질로 더 깊이 내려가면서 동시에 경계 너머로 더 멀리 나아가는 이중의 운동이다. 교회가 자기 보호에 몰두하면, 흩어짐은 패닉이 되지만, 복음에 몰두하면 흩어짐은 선교가 된다. 교회가 제도와 건물에만 의존하면, 위기는 붕괴가 되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면 위기는 재구성이 된다. 사도행전 8 1–5절은 바로 그 재구성의 원리를 보여 준다. 그래서 장재형목사의 메시지는, 환란과 변화 앞에서 움츠러들기 쉬운 현대 교회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지키려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전하려 하는가. 지켜야 할 것은 복음의 중심이며, 전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의 소식이다. 이 두 가지가 분명할 때, 교회는 모이든 흩어지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어느 자리에서든 동일한 성령 안에서 동일한 복음을 증언할 수 있다. 장재형목사가 사도행전 8장을 통해 제시하는 길은, 결국 두려움의 시대를 통과하는 교회의 영성이다. 교회는 시대의 압력에 의해 흩어질 수도 있지만, 성령의 부르심에 의해 더 의미 있게 흩어질 수도 있다. 후자의 흩어짐은 자기보호가 아니라 사랑의 파송이며, 고립이 아니라 연결된 섬김이며, 침묵이 아니라 복음의 언어로 다시 말하기다. 스데반의 울음 뒤에 사마리아의 기쁨이 있었듯, 오늘도 눈물의 자리에서 복음의 새 길은 시작된다. 그러므로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듯, 교회는 상황에 매이지 않되 상황을 복음의 통로로 바꾸며 전진해야 한다. 흩어진 발걸음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남을 때, 박해 속에 피어난 복음은 다시 한 번 우리의 시대에 현실이 된다. 이제 우리에게 끝내 하나님 나라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davidjang.org
작성 2025.12.15 10:31 수정 2025.12.1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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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