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시인의 책무를 ‘우리말을 빛나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순수시를 지향하는 시인은, 우리의 사라진 언어, 죽어 가는 언어를 발굴하여 빛나게 하고, 시적 조어(造語)를 통해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더불어 우리 문법에 맞게 시를 써야 한다는 의미이다. 시 창작에서 파격을 허용하는 수준을 벗어나 국적 불명의 번역체 문법으로, 과도한 문법 해체로, 우리말의 순수성을 파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아가 우리 모국어로 쓰는 시에 외국어와 외래어를 무분별하게 채택하지 말아야 하고, 우리말과 우리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2025년 어떤 문예지에 발표한 시에 외국어와 외래어가 많이 등장하였다. 외국어와 외래어 부분은 쉽게 식별할 수 있게 굵은 기울림 글씨체로 표기한다. 시인의 성명은 생략하고, 작품명만 언급한다.
리포트를 쓰며 하안가로 온 것조차 미안하다 // 웃으면서 헤어졌지만 위험지역으로 가지 못하게 유래한 트로피 헌팅은 언제였을까? //텀블러 속에 갇혀 있는 커피를 마시며 / 크레인 옆을 지나간다
― 「원」 일부
앞마당 감나무에 달이 열리고 / 별들이 수런대며 문틈을 기웃거릴 때 / 빨락빨락 미싱에 밥을 주는 소리 들으며 / 나는 잠이 들었다 / 모두가 잠든 밤 / 엄마 혼자 미싱을 깨워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 들들들들 / 밤마다 미싱은 졸린 눈을 비비며 돌아갔겠다
― 「싱가 미싱」 일부
그녀를 본다 / 그녀 휴대폰 카메라 렌즈에 얼굴을 맞춘다 / 나 그녀 뒤로 가서 그녀 렌즈에 윙크한다 / 플래시가 번쩍 한다 / 플래시 속으로 들어간 그녀 삼십 도로 허리를 비튼다 / 나 한 발자국 그녀의 곁으로 다가선다
― 「열차의 속도」 일부
이들 시편은 심하게 외국어와 외래어를 장치한 사례이다. 고투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시적 치열성을 읽을 수 없다. 시인이 여러 차례 사유를 거듭했다면, 우리말로 변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유한 만큼 시의 결과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 외에 한두 개 정도 옥에 티로 박혀 있는 사례는, 「어질게 살다 간 나그네들 1」에서 “트럭”, 「길고양이―딸기」에서 “드라이플라워”, 「푯말의 자세」에서 “유턴”, 「돌아갈 수 없기에 더 소중하다」에서 “페이지”, 「보름달」에서 “클릭”, 「파이널판타지」에서 “프로모션” 등이다.
우리말로 변환할 수 있음을 예를 들면 ‘리포트’는 ‘보고서’, ‘트로피’는 ‘우승배’, ‘크레인’은 ‘기중기’, ‘미싱’은 ‘재봉틀’, ‘휴대폰’은 ‘휴대 전화’‘카메라’는 ‘사진기’, ‘윙크’는 ‘깜빡 눈짓’, ‘트럭’은 ‘화물차’, ‘드라이플라워’는 ‘말린 꽃’ 등이다. 대체 혹은 변환이 아니더라도 묘사하여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묘사는 시의 본령이다. 특히, ‘파이널판타지’라는 제목은 부제목으로 채용하고, 주 제목은 우리말로 대체함이 마땅하다.
외국어와 외래어를 시에 과도하게 장치한 사례만으로 그 문예지 소속 시인의 의식 수준뿐만 아니라, 시의 밑바닥까지 드러난 것이다. 적어도 시인이라면, 시는 모국어를 미학적으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게 표현해야 할 글의 예술임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글이 들어앉을 자리에 외국어와 외래어가 자리매김하면 곤란하다. 우리말을 옥죄는 시가 버젓이 문예지에 실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일제 강점기에도 지켜 낸 우리글 우리말을 이렇게 짓밟아도 괜찮은 일인가? 시인의 책무를 망각하지 말자. 우리 모국어를 빛나게 하자.
[서동욱]
1급 정교사
미국 화재폭발조사관
소방안전교육사 및 소방학교 외래강사
소방안전교육사 국민안전교육실무 교재 편저
어린이 안전교육전문가 사람책(대구시립중앙도서관 등)
한국119청소년단 지도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