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의 두 할머니

파도. 출처; freepik

야 너 김장했어어떻게 했어? 야 나는 며느리들 다 불러서 했어재료는 내가 다 준비해 놓고. 김치, 동치미, 총각무까지 다해버렸어.”

 구순은 넘으셨을 듯 한 할머니가 수영장 샤워실 온탕 중앙에 자리하고선 목청껏 하는 말입니다. 검버섯이 촘촘히 덮인 얼굴로 늘어지는  몇 가닥 머리카락을 양손을 오목하게 모아 퍼올린 물로 쓸어 올리며 다가오는 할머니에게 시선을 고정합니다.

 

네 했어요 언니. 저는 그냥 각자 하자고 했어요. 조금씩 알아서 하니까 편하더라고요.” 불편한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온탕으로 들어오는 할머니도 언뜻 동년배로 보이니 누가 동생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쪽은 맘 내키는 데로 툭툭 던지고 다른 한쪽은 낮은 톤으로 천천히 공손하게 받습니다. 생각보다 나이차가 있는 걸까요.

 

수영장이 작다 보니 샤워실이나 락커룸에서 자주 보면 한 반 수강생이 아니어도 절로 인사를 나누게 되고 옆자리에서 드라이를 사용하다가 한두 마디 오간 후에는 쉽게 언니 동생이 되는 곳입니다. 대게 서른 살 위아래로는 언니 동생이 되는 터라 가벼우면서도 업다운 업되는 수다스러운 말이 오가는 편이니 두 할머니의 말투가 대화 내용보다 재미있어서 침묵으로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김장하고 몸살 했어. 며느리들이 잘한다 해도 내손이 안 가면 마무리가 안돼. 수영장도 한주만에 나왔어. 너는 괜찮지?” 구순을 넘기셨을 듯한 다른 한분도 몸상태가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너는 괜찮았을 거라고 물으십니다.

 

네 저는 괜찮아요 언니.”합니다. 진짜 괜찮았던 건지 언니 앞에서 아프다 하는 게 예의가 아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웃음기어린 차분한 말투가 영락없는 막내 동서같은 느낌이라 순간적으로 두 분을 번갈아 봤는데요. 아무래도 연배가 비슷해 보입니다.

 

최근에 지인의 말이 가시가 돼서 잠을 설치고 맞받아 칠 말을 생각해 내느라 고심했던 며칠이 떠오릅니다. 

날 선 말이 유독 저를 찌른다 여겼고 그전에도 껄끄럽게 들렸던 몇 마디 말까지 끄집어내서 속을 끓였는데 한 발 물러나 보니 별말 아니다. 별일 아니다 싶습니다. 그때 그의 감정을 그 단어에 실었을 뿐 저와는 무관하다 정리하니 그저 지나가는 말이지 싶습니다.

 

멀리서 보면 별일 아니라고 하던데요. 바다에 파도가 일렁였다 없어지지만 바다는 늘 그대로인 것처럼.

동생 할머니와 언니 할머니의 대화에는 언니 동생의 차이를 분명히 했지만 바라보는 제게는 그저 동년배 할머니였던 것처럼. 


다 지나가고 다 잘될 겁니다. 별일 아닐 겁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K People Focus 최영미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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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5.12.20 08:59 수정 2025.12.2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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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