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을사(乙巳)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아쉬움과 서운함이 밀려온다. 더 열심히 살지 못했음에 대한 아쉬움, 한해가 기억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서운함 같은 그런 마음 때문이다. 이런 연말의 분위기 속에 여야를 막론하고 특정 종교 단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정치인들과 특정 기업으로부터 부적절한 접대를 받은 유력 정치인의 일탈 행위로 국민은 서글프기만 하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인데, 정치인들은 품격과 도리를 잃었고 국민에 대한 예의염치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는 내로남불의 아전인수격 이중적 잣대로 일관하는 정치인들이 너무나 많다. 이는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정도가 더 심한 경향을 나타낸다.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 관중(管仲)은 나라를 버티게 하는 네 가지 덕목으로 예의염치(禮義廉恥)를 들었다. 그는 예의염치 중 하나가 없으면 나라가 기울고, 둘이 없으면 위태롭게 되고, 셋이 없으면 뒤집어진다고 했다. 또 모두가 없으면 나라는 파멸하게 된다고 말했다. 춘추전국시대 맹자(孟子)도 인간이 짐승과 다른 이유를 '예의염치' 네 글자로 압축했다. 맹자는 이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이어서 순자(荀子)도 염치없는 자는 엄히 다스려야 하며, “염치 모르는 사람은 음식만 축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대부터 염치(廉恥)는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기준이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사전적 의미의 '염치(廉恥)'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나타낸다. 우리는 흔히 부끄러워서 상대방에게 대할 낯이 없을 때 '얼굴과 눈이 없다'는 뜻의 ″면목(面目) 없다″라는 말을 쓴다. 염치와 같이 사람이 남에게 폐를 끼치게 됐을 때는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기본이라는 뜻이다.
'염치없음'은 그 정도에 따라 어휘가 달라진다. 염치가 전혀 없음을 뜻하며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 상태의 '몰염치(沒廉恥)', 염치를 완전히 깨뜨림으로 몰염치보다 더 심한 뻔뻔함을 강조할 때 사용되는 '파렴치(破廉恥)', 낯가죽이 두껍고 뻔뻔해서 도무지 부끄러움과 체면을 완전히 잃은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있다. 즉, '염치없음'이 습관화가 되면 몰염치가 파렴치로, 파렴치는 결국 후안무치의 마지막 단계로까지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모름지기 정치 지도자들은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염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평소 염치없는 행동에 익숙한 우리 정치인들은 드러난 사실을 부인하거나 왜곡하며 자기변명이나 자기 합리화에만 열심이다. '염치불고(廉恥不顧)'하고 몰염치한 행동을 일삼는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파렴치한 행동을 저지르다가 발각되면 잠시 머리를 숙였다가 얼마 후 다시 등장해서 고개를 꼿꼿이 들고 다른 사람의 사소한 잘못에 핏대를 세우는 모습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러다 보니 우리 사회가 염치없는 세상으로 바뀌어 가는 게 하나, 둘이 아니다. 이는 정치의 영향이 크다. 최근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태를 일으킨 기업의 CEO가 국회 청문회 참석을 거부한 국회 경시 행위는 사실 정치권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시급하게 회복해야 할 것은 '예의염치'라는 최소한의 도덕심이다. 이것이 살아 있을 때만 공정(公正)은 힘을 얻고, 정의는 설득력을 가진다. 염치가 살아있는 사회는 건강하다. 따라서 건강한 사회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부터 대오각성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매년 연말이 되면 지난 한 해가 아쉽고 다가오는 새해에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거는 것이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연례행사다. 그래서 필자의 새해 소망은 '염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여계봉 대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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