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기자: 최우주 [기자에게 문의하기] /
가을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직 가시지 않는 담백한 꽃술로
지난 한 해를 돌아 나온 갈대는 야윈 고개를 들었다
흰 누런 갈기를 날리며
가을의 이름으로
억척스럽게 한 해를 살아와
마디를 두르고
안을 비우고
마른 잎을 모두 떨구고
씨를 날려
한결 가벼워진 꽃술로
바람에 흔들리며
절대 굴하지 아니하며
숙인 고개로
흐르는 물길을 보는 것은 듣는 것이어서
버리고 비운 넓은 품 안에서
파릇파릇 뾰쪽한 새순이 오를 때까지
갈대는 다시 장마를 몰고 올
마파람에
물 위에 흔들리며 씻기어 갈 자신을 내려다본다

[김문식]
1953년 광주광역시 출생.
2023년 《문예바다》 등단.
율동시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