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로 칼럼] 90초의 불행 교차로

임이로

집 앞에는 조금만 나가면, 신호등이 네 개나 걸린 교차로가 있다. 신호등 네 개의 신호를 따라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오고 가는데, 큰 길가라 어둑어둑해지면 가로등은 환하고 해가 뜰 때면 탁 트인 길가는 깨끗하다. 이만하면 좋은 곳에 살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교차로 신호등에는 빨간불이 몇 초가 지나면 초록불이 되는지 알려주는 카운트 전광판이 새로 달렸다. 동생과 나는 달라진 신호등을 보며 횡단보도에 서 있다가, 동생은 말했다. 

 

“불행해졌어.”

“나도.”

 

우리는 무엇 때문에 불행해졌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서로 단박에 알아차렸다. 동생은 이어 말했다.

 

“다음 신호가 언제 들어오는지 시간으로 알려주니까 그것만 기다리기 돼. 지루하고 불행해졌어.”

 

동생 말이 맞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라고, 다음 신호가 몇 초 남은지는 다른 쪽 신호등 초록불이 켜고 꺼지는 리듬만 보아도 대충 알게 되는데 그걸 전부 숫자로만 환산하니, 숫자 전광판에 떠 있는 최대 시간은 90초나 된다. 100초가 넘지 않아 전광판 넓이가 넓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세금이라도 덜 쓰게 되어서 감사해야 하는 걸까?

 

이 교차로엔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만큼, 누군가는 타이머를 신호등에 설치하자고 주장했겠지만 이것을 결정한 의사결정권자는 분명 이 동네 사람이 아닐 것이다. 알고 싶지 않은 것을 강제로 알게 되니. 이제 이 교차로는 ‘신호를 기다리는’ 곳이 아니라 ‘다음 신호를 건너기 위해 그냥 서 있는’ 곳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이 공간의 의미는 저 숫자 전광판에 의해 소실되고 말았다!

조상들은 해가 뜨고 지는 대로 그림자가 움직이는 각도를 보고 시간을 계산했다. 얼추 그 시간쯤에 일하고, 얼추 그 시간쯤에 집에 돌아가는 ‘코리안 타임’의 완성! 이처럼 시간을 짐작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여러 가지인데. 우리는 시간을 너무도 당연하게 ‘숫자’로 단순하게 생각하는 세상에 살 고 있는지도.

 

시간은 공간이라는 말은 과학 법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렇게 숫자 때문에 내가 신호등 앞에서도 불행해져야 할 때면, 너무도 쉽게 그 진리를 체험할 수 있다. 이제 우리 동네 사람들은 교차로에 설 때마다 ‘90초 무한 굴레’에 빠져버릴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불행해지기를 선택한다.

 

 

[임이로]

시인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

시집 <오늘도 꽃은 피어라> 

메일: bkksg.studio@gmail.com

임이로의 비껴서기 bkksg.com\

 

작성 2026.01.09 11:00 수정 2026.01.0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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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