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지 않아도 존재한다”
— 빛의 물리학으로 읽는 예술의 확장
“보이지 않아도 존재한다.”
이 단순한 문장은 인류가 빛을 이해하려 했던 지난 수천 년의 역사를 함축한다.
우리가 세상을 본다고 믿는 것은, 사실 빛이 눈에 들어와 뇌가 해석한 결과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에서 출발한 책 《빛이 매혹이 될 때》(서민아 지음, 인플루엔셜, 2022)는 물리학자이자 화가인 저자가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며 던지는 지적 탐험의 기록이다.
서민아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이자 고려대학교 융합대학원 교수다.
그는 연구실에서는 빛의 파장을 다루는 물리학자이고, 휴일에는 캔버스 앞에서 빛을 그리는 ‘일요일의 화가’다.
그의 시선은 과학적 정밀함과 예술적 감성이 공존한다.
이 책은 그 두 세계가 만날 때, ‘보이지 않는 세계’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탐구한다.
뉴턴이 프리즘으로 색을 분석하던 순간부터, 인류는 빛을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해석의 도구’로 보기 시작했다.
빛은 파동이자 입자라는 모순된 성질을 가진다. 그것은 과학의 영역에서뿐 아니라 예술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빛의 이중성은 예술의 다층성으로 확장된다.
미술가들은 보이는 색의 세계 너머를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했다. 쇠라는 점묘화로, 모네는 빛의 변화로, 피카소는 시공간의 중첩으로 ‘보이지 않는 진실’을 포착했다.
그들의 붓끝에 담긴 것은 단순한 시각적 정보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 구조였다.
과학자들이 프리즘을 통해 빛의 본질을 분해했다면, 예술가들은 감각을 통해 그 본질을 재구성한 셈이다.
괴테는 《색채론》에서 “빛은 감정의 언어다”라고 했다. 뉴턴이 빛을 물리적 현상으로 분석했을 때, 괴테는 그것을 인간의 심리와 감정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이 두 사람의 관점은 달랐지만, 결국 ‘빛’을 통해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닿았다.
이후 과학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사실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을 밝혔고, 그것은 예술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은 여러 시점을 한 화면에 병치하며 상대성이론의 미학적 번역을 시도했다.
달리의 〈기억의 지속〉 은 시간의 유동성을 시각화하며 ‘빛이 시간의 흔적’임을 증명했다.
과학이 수식으로 설명한 것을, 예술은 감각으로 풀어낸 것이다.
인간의 눈은 가시광선만 인식한다. 그러나 세계는 훨씬 더 넓은 스펙트럼으로 구성돼 있다.
적외선, 자외선, 엑스선, 테라헤르츠파 — 이 모든 ‘보이지 않는 빛’이 우리의 삶과 예술을 둘러싼다.
예술 복원 분야에서는 이미 적외선 촬영으로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의 밑그림을 복원하고 있다.
과학 기술이 ‘보이지 않던 진실’을 드러내자, 우리는 예술가의 사고 과정과 창작의 흔적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
즉, 과학이 예술의 ‘숨은 층’을 밝혀내는 셈이다.
서민아 교수는 이러한 과학적 도구를 연구하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것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는다.
그의 연구 주제인 테라헤르츠파(THz wave) 는 물질을 투과하지만 손상시키지 않는다.
이 파동의 성질은 그가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닮았다 — 부드럽게 통과하며, 본질을 드러낸다.
《빛이 매혹이 될 때》는 과학서이자 예술서, 동시에 철학서다.
그는 “과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언어이고, 예술은 그 진리를 감각으로 번역하는 언어”라고 말한다.
과학자와 화가는 결국 같은 대상을 바라본다. 다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를 뿐이다.
빛의 물리학이 세계를 수학적으로 확장시켰다면, 예술의 빛은 그 세계를 감성적으로 확장시켰다.
과학은 ‘무엇이 존재하는가’를 묻고, 예술은 ‘그 존재를 우리는 어떻게 느끼는가’를 묻는다.
서민아 교수의 시선은 이 둘을 하나의 세계로 통합한다.
빛은 단순히 세상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게 만드는 조건이다.
보이지 않는 빛을 이해할수록 우리는 더 넓은 세계를 ‘본다’.
그것은 물리학의 발견이자 예술의 영감이다.
서민아 교수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보이지 않음 속에 세계의 진실이 숨어 있다.”
빛을 향한 과학자의 집요함과 화가의 감수성이 만날 때, 우리는 새로운 시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된다.
《빛이 매혹이 될 때》는 그 시야의 문을 여는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