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지도가 확 바뀐다. 그동안 새로운 복지 사업을 하나 시작하려 해도 중앙정부의 복잡한 승인 절차에 막혀 골든타임을 놓치기 일쑤였던 '행정 병목현상'이 대폭 해소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지자체의 자율성을 극대화하고 행정 효율을 높이기 위한 ‘사회보장제도 협의제도 개편방안’을 확정, 2026년부터 전격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선(先) 시행, 후(後) 보고'… 복지 행정의 속도 혁명
이번 개편의 핵심은 ‘속도’와 ‘자율’이다. 정부는 주민 실생활과 밀접한 8대 유형의 사업을 협의 대상에서 전격 제외했다. 앞으로 전입 축하금, 출산용품 대여, 미취업 청년 지원 등 정형화된 생활밀착형 사업은 중앙정부의 사전 승인 없이 지자체가 판단해 즉시 시행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매년 발생하는 약 1,700건의 협의 안건 중 60% 이상이 간소화 절차를 밟게 된다. 복지부는 단순히 규제를 푸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정 처리가 반복되는 '다빈도 무쟁점 사업'의 경우 처리 기한을 기존 60일에서 30일로 절반이나 단축하는 ‘신속협의제’를 도입해 주민 혜택이 현장에 도달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통제관'에서 '파트너'로… AI와 전문가가 돕는 기획 단계
중앙정부의 역할은 이제 '심판'에서 '코치'로 전환된다. 사업 계획을 다 세운 뒤 승인을 요청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초기 기획 단계부터 정부와 전문가가 함께 머리를 맞대는 ‘사전 컨설팅’ 제도가 정착된다. 특히 지역 특수성을 반영하기 위해 권역별 국책 연구원과 대학교수로 구성된 ‘전문가 네트워크’가 지자체 공무원들의 정책 설계를 밀착 지원한다.
여기에 인공지능(AI) 기술이 가세한다. 지자체 담당자가 구상 중인 사업이 협의 대상인지, 다른 지역에 유사한 우수 사례가 있는지 AI가 즉각 판단해 주는 인프라가 구축된다. 이는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동시에 지자체 간 정책 편차를 줄이는 스마트 행정의 마중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율에는 책임이 따른다… '성과 기반 환류 체계' 강화
정부는 지자체의 자율권을 대폭 늘려주는 대신, 사후 책임성 강화라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모든 협의 사업은 자율, 성과, 집중 관리의 3단계로 분류된다. 특히 예산 규모가 크거나 쟁점이 있는 ‘집중 관리군’ 사업은 시행 3년 차에 전문가의 냉혹한 평가를 받게 된다.
성과가 미흡하거나 중복 투자가 확인될 경우 사업 폐지나 개선을 권고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는 지자체에는 인센티브 박탈 등 강력한 페널티를 부여한다. 반면 주민 만족도가 높고 효과가 검증된 우수 지자체에는 포상과 함께 행정적 혜택을 집중 지원하여, 지역 복지의 질적 상향 평준화를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2026년 ‘의료·요양 통합돌봄’ 안착의 교두보
이번 개편은 2026년 3월부터 시행될 ‘의료·요양 통합돌봄’ 사업의 성공을 위한 사전 포석이기도 하다. 지역 특화 돌봄 서비스가 가이드라인에 맞춰 설계될 경우 즉시 시행을 허용함으로써, 초고령 사회에 대비한 지역 맞춤형 케어 시스템이 조기에 안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혁신은 지자체가 지역 주민의 눈높이에 맞는 창의적인 복지 정책을 펼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준 것"이라며, "중앙과 지방이 '갑을 관계'가 아닌 '상생 파트너'로서 대한민국 복지 안전망을 더욱 촘촘히 다져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방 복지 전성시대'가 막을 올렸다. 중앙의 획일적인 통제에서 벗어나 지역 현장의 목소리가 담긴 복지 서비스가 빠르게 실현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 것이다. 자율과 책임이 조화된 이번 개편이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대한민국은 각 지역의 특색이 살아있는 '맞춤형 복지 국가'로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