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다·싫다·짜증 나… 그 너머의 감정 읽기
— 나를 구하는 언어의 기술
“짜증 나.” “스트레스 받아.”
현대인이 가장 자주 내뱉는 말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놀랍도록 비어 있다.
우리가 자주 쓰는 이 표현들은, 사실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숨긴다.
『감정 어휘』(유선경 저, 앤의서재)는 이 모호한 언어의 습관에 문제를 제기한다.
작가는 말한다.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는 순간, 마음이 명료해진다.”
이 책은 감정의 언어를 되찾는 일, 즉 마음을 언어로 구체화하는 기술을 다룬다.
‘좋다·싫다·짜증 나’ 같은 단순한 표현 뒤에는 ‘불안’, ‘서운함’, ‘외로움’, ‘수치심’ 등
수백 가지 다른 감정이 숨어 있다. 이를 구분하고 이름을 붙이는 일은 단순한 심리 훈련이 아니라
삶을 주도하기 위한 언어 훈련이다.
오늘날 우리는 감정을 다루는 법보다 감정을 억누르는 법을 더 빨리 배운다.
“참아야지”, “괜찮아”, “넘어가자”라는 말이 미덕이 된 사회에서,
감정은 종종 비이성적이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유선경 작가는 이 억압의 문화가 인간을 병들게 한다고 말한다.
감정은 억제의 대상이 아니라 ‘내면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분노는 문제를 해결하라는 메시지이며, 슬픔은 마음을 돌보라는 요청이다.
불안은 점검을, 두려움은 대비를 요구한다.
이 신호를 무시하면 감정은 왜곡되어 ‘짜증’, ‘스트레스’, ‘무기력’이라는 형태로 표면에 드러난다.
결국 우리가 감정을 모호하게 표현할수록, 자기 인식은 희미해진다.
‘감정의 언어’를 잃은 사회는 자기 감각을 잃은 사회다.
책은 감정을 ‘온도’, ‘통각’, ‘촉감’, ‘빛’이라는 네 가지 감각으로 분류해 설명한다.
‘뜨겁다’와 ‘차갑다’는 온도의 대비처럼, 인간의 감정도 극과 극 사이의 스펙트럼을 가진다.
‘아프다’와 ‘근질근질하다’의 차이, ‘부드럽다’와 ‘거칠다’의 차이,
‘밝다’와 ‘어둡다’의 차이를 감각적으로 풀어내며 감정의 뉘앙스를 짚는다.
예를 들어, 누군가 “속이 답답하다”고 말할 때, 그건 단순한 불쾌감이 아니다.
그 안에는 억눌린 분노, 표현되지 못한 슬픔, 혹은 좌절감이 섞여 있을 수 있다.
감정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할 때, 우리는 그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감을 얻게 된다.
유선경은 말한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감정은 나를 휘두르지 못한다.”
즉, 언어는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이해하게’ 만든다.
이는 곧 감정 어휘력이 곧 자기 이해력이라는 뜻이다.
『감정 어휘』가 제시하는 핵심 메시지는 단순하다.
“감정을 모르면 나를 모른다.”
감정의 어휘력을 높인다는 것은 감정의 미세한 결을 구분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예컨대 ‘외로움’과 ‘고립감’은 다르다. ‘두려움’과 ‘불안’도 다르다.
이 미세한 차이를 인식하는 사람은 자신이 왜 지금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그 감정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는 곧 자기 통제와 자기 위로의 시작이다.
감정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은 타인의 감정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
그래서 감정 어휘는 개인의 내면뿐 아니라 관계와 소통의 질을 바꾼다.
『감정 어휘』는 단지 감정을 분석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말의 정밀함이 곧 마음의 건강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정이야말로 내가 갈 길을 알려주는 실마리”라는 작가의 말처럼,
감정은 나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신호다.
우리가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언어로 선명하게 포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음의 방향을 되찾는다.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될 때 비로소 다스려진다.
그것이 이 책이 전하는 가장 인간적인 언어의 기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