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를 대표하는 술 데킬라는 흔히 뜨거운 태양과 선인장이 가득한 사막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 전통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데킬라의 기원에는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 바로 ‘산불’이 깊이 관여돼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오늘날 세계적인 증류주로 자리 잡은 데킬라는 우연과 환경이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이었다.
데킬라의 원료는 ‘블루 아가베’라는 다육식물이다. 이 식물은 수십 년에 걸쳐 자라며, 중심부에는 당분이 풍부하게 축적된다. 고대 멕시코 원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아가베 수액을 발효시킨 ‘풀케’라는 저도주를 마셔왔다. 그러나 증류 과정을 거친 데킬라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탄생 배경을 갖는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번개나 자연발화로 발생한 산불이 아가베 밭을 덮치면서 이 식물의 중심부가 불에 구워지는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불에 탄 아가베에서는 달콤한 향이 퍼졌고, 이를 맛본 원주민들은 불에 익은 아가베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풍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불은 단순한 파괴자가 아니라, 아가베 속 복합 당분을 분해해 단맛을 끌어내는 역할을 한 셈이다. 이후 사람들은 자연 화재를 기다리지 않고 인위적으로 아가베를 구워 당분을 추출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스페인 정복자들이 들여온 증류 기술이 결합되면서 지금의 데킬라 제조 방식의 원형이 만들어졌다. 즉, 산불이라는 우연한 자연현상과 외래 기술이 만나 새로운 술이 탄생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현대 데킬라 제조 과정에서도 ‘불’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증류소에서는 아가베를 대형 오븐이나 지하 화덕에서 천천히 가열해 당을 끌어낸다. 이 과정은 과거 산불이 했던 역할을 인공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불로 구워진 아가베는 특유의 스모키한 향과 깊은 단맛을 만들어내며, 이것이 데킬라의 개성을 결정짓는다.
자연재해는 흔히 문명의 적으로 인식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새로운 문화와 기술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데킬라 역시 인간의 의도가 아닌 자연의 우연에서 출발해, 오늘날 전 세계인이 즐기는 술로 자리 잡았다. 산불이라는 파괴의 상징이 없었다면, 지금의 데킬라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 잔의 데킬라에는 멕시코의 태양뿐 아니라 불, 우연, 그리고 인간의 적응력이 함께 담겨 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마시는 술 한 잔에도 이렇게 뜻밖의 역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