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새 이름
아브라함이 99세 되던 해, 하나님이 다시 그를 찾아오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이 짧은 선언은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소리였다. 인간적으로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 나이에, 하나님은 오히려 언약을 확증하신다.
창세기 17장은 ‘언약의 반복’이 아니라 ‘언약의 갱신’이다. 믿음이 지체된 자에게 다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인내와 신실하심이 드러난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시며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신다. 그리고 그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명하신다.
이 사건은 인간의 신앙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새롭게 시작되는 믿음의 삶”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13년간 침묵하셨다(창 16장 이후). 그러나 침묵은 부재가 아니었다. 99세라는 절망의 시간 끝에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El Shaddai).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 명령은 단순한 도덕적 완전함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나의 언약을 지키며 나를 신뢰하라’는 신앙의 초대였다.
아브라함의 나이는 신앙의 한계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나이조차 의미 없는 믿음의 도전을 상징한다.
“이제부터는 네 이름을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라.”
이름의 변화는 존재의 변화를 의미한다.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에서 ‘아브라함(열국의 아버지)’으로 바뀌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로 이동하는 전환의 신호다.
하나님은 또한 사래의 이름을 ‘사라(공주)’로 바꾸셨다. 이는 단순한 명칭의 변화가 아니라, 약속의 계보를 이어갈 언약적 정체성의 확립이다.
이름은 곧 사명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오늘의 신앙인들에게 묻는다.
“너는 나 안에서 어떤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은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명하셨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17:10)
할례는 단순한 육체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증명하는 믿음의 서명이었다.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할례는 믿음의 의를 인친 표”라 했다.
즉, 할례는 외적 종교행위가 아닌, 내면의 헌신과 순종을 상징한다.
오늘날 신앙인에게 할례는 마음의 순결과 순종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뜻한다.
창세기 17장은 단지 옛 언약의 기록이 아니다.
이 말씀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선언을 오늘의 신앙 속에 새기게 한다.
우리가 믿음의 여정 속에서 지쳤을 때,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신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 명령은 부담이 아니라 초대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서 있는 자로서,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새롭게 기억하라는 부르심이다.
믿음의 언약은 오늘도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언약은 ‘나이’, ‘상황’, ‘조건’을 초월한다.
창세기 17장은 언약의 회복 이야기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 위에서도 언약을 잊지 않으신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한계 속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새롭게 경험했다.
그에게 주어진 새 이름은 ‘불가능의 현실’ 속에서 피어난 ‘믿음의 표징’이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 말씀은 단지 과거의 선언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믿음과 정체성을 새롭게 세우는 살아 있는 언약의 음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