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리 없는 대화,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언어
– 『숲은 고요하지 않다』가 밝힌 자연의 소통법
인간은 오래도록 숲을 ‘고요함’의 상징으로 묘사해왔다. 명상과 치유의 장소, 문명의 소음을 벗어나 고요히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숲은 기억되었다. 그러나 독일의 행동생물학자 마들렌 치게(Madeleine Chige) 는 그 믿음을 단번에 무너뜨린다. 그녀의 책 『숲은 고요하지 않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자연의 침묵을 해체하고, 그 속에 울려 퍼지는 ‘생명의 대화’를 들려준다.
치게는 말한다.
“고요하게 보이는 숲은 사실 생명체들이 쉴 새 없이 소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오케스트라다.”
단세포 생물부터 균류, 식물, 동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냄새, 전기, 색, 진동, 화학물질 — 인간의 언어는 그중 하나일 뿐이다.
그녀의 시선은 인간 중심적 언어관의 경계를 벗어나, ‘의사소통은 생명의 본능’이라는 더 근원적인 철학으로 확장된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식물도 들을 수 있을까?”가 아니다. 그것은 “소통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왜 서로에게 말을 걸까?”라는 존재론적 물음이다. 즉, 인간의 말이 아니라 생명이 세계와 맺는 관계 자체가 언어라는 것이다.
치게는 이른바 ‘바이오커뮤니케이션(Biocommunication)’ 이라는 개념을 통해 생명의 언어를 해석한다. ‘바이오’는 생명을, ‘커뮤니케이션’은 메시지를 뜻한다. 곧, 생명체 간의 정보 교환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정보는 단순한 신호의 주고받음이 아니라, ‘생존과 공존을 위한 철학적 대화’이다.
짚신벌레가 천적의 냄새 분자를 감지하자마자 화학 화살을 쏘아 도망치는 반응, 옥수수 뿌리가 특정 주파수를 인식해 방향을 바꾸는 행위, 비늘송이버섯이 숙주나무의 화학언어를 모방해 양분을 얻는 과정—all 이들은 정보 교환 이상의 존재 방식을 드러낸다.
그들의 대화에는 생명의 절실함, 관계의 윤리, 그리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진화적 지혜가 담겨 있다.
인간은 언어를 ‘소통의 도구’로 여겨왔다. 하지만 치게가 보여주는 자연의 언어는 ‘관계의 본질’이다. 생명은 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 말한다.
이때의 말은 귀로 듣는 음성이 아니라, 환경과의 조응을 통해 피어나는 에너지의 흐름이다. 생명은 이 흐름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고, 타자를 인식하며, 세계와 공명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생명의 대화가 ‘경계의 철학’을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식물은 움직이지 못한다’, ‘균류는 하등생물이다’라고 규정해왔다. 그러나 과학은 점점 그 이분법의 허구를 드러낸다.
예나대학 미생물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비늘송이버섯은 숙주나무의 언어를 흉내 낸다.
가문비나무가 세포성장을 위해 분비하는 화학물질 ‘인돌-3-아세트산’을 버섯도 동일하게 방출함으로써, 나무의 세포를 설득한다. 그렇게 버섯은 더 깊게 뿌리를 내리고, 나무는 영양분을 교환한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화학 반응이지만, 그 속에는 ‘공존을 위한 대화’, 혹은 ‘이익을 위한 협상’이 숨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보다 훨씬 복합적이다. 그들은 말 대신 화학을 쓰고, 귀 대신 세포를 이용하며, 문법 대신 ‘진화의 논리’를 따른다.
그리하여 자연의 커뮤니케이션은 언어학의 범주를 넘어, ‘생명철학의 언어학’으로 확장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생물 간의 대화는 단순한 생태적 사실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론적 위치를 되묻는 거울이다.
인간은 세계를 ‘대상’으로 관찰해왔다. 그러나 식물과 균류, 미생물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로서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자연의 언어는 우리 밖에서 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몸과 호흡, 그리고 감각 속에서도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는 결국 인간에게 묻는다.
“우리는 여전히 자연의 언어를 듣지 못한 채, 자신만의 언어 속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치게가 보여주는 생명의 대화는, 인류가 잃어버린 ‘감응(感應)의 윤리’를 되찾게 한다.
모든 존재가 서로의 신호를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생태계의 질서를 유지시킨다.
그 질서 속에서 인간 역시 하나의 신호를 보내고, 또 다른 신호를 받아들이는 ‘순환의 존재’일 뿐이다.
이런 인식은 단순히 환경 보호나 생태 보존의 담론을 넘어선다.
그것은 생태철학적 전환이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거나 구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미 대화 속에 포함된 하나의 ‘화자(話者)’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생태적 윤리로 나아갈 수 있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판타 레이(Panta Rhei)” — 모든 것은 흐른다 — 라는 그리스어 문장으로 끝난다.
모든 생명은 흘러가며, 연결되고, 응답한다.
이 흐름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진정한 소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말을 주고받는 일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이다.
마들렌 치게의 『숲은 고요하지 않다』는 과학적 관찰을 넘어, 생명철학의 깊은 사유로 독자를 초대한다.
그녀의 통찰은 인간의 언어가 미치지 못한 곳에서 이미 완벽히 이루어지고 있는, 자연의 대화법을 일깨운다.
숲은 결코 고요하지 않다.
그것은 수천만의 생명이 부르는 ‘존재의 합창’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