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역사] 55. 동남아시아(마나반)와의 교역-이국적인 상품의 유입

동남아시아와 연결된 바다의 왕국, 류큐의 선택

소목과 후추가 만든 번영의 구조

레키오(Lequio)로 기록된 류큐 상인의 정체성

류큐의 마나반 교역=AI생성이미지

 

류큐 왕국의 역사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는 해상 교역을 통해 국제적 위상을 구축한 시기이다. 이 가운데 핵심 축 중 하나가 류큐인이 ‘마나반(真南蛮)’이라 불렀던 동남아시아 세계와의 교역이다. 류큐는 중국, 일본이라는 거대 문명권 사이에서 남방 세계를 잇는 중개자로 기능하며 독자적인 해양 경제 질서를 형성했다.

 

류큐인이 사용한 마나반이라는 용어는 단순한 지리 개념이 아니라 문화적 타자이자 교역 파트너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14세기 후반부터 류큐 무역선은 샴(태국), 말라카(말레이시아), 자와(인도네시아), 파타니 등 동남아 주요 항구를 순회했다. 

 

15세기에는 샴(태국)으로 향한 항해가 수십 회에 이를 정도로 교류가 집중되었으며, 말라카와의 교역은 이슬람 상업권과의 접점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류큐의 강점은 직접 생산보다 중계에 있었다. 동남아시아에서 들여온 소목(蘇木), 후추, 상아, 남방주는 중국과 일본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반대로 류큐는 명나라에서 받은 비단과 도자기, 일본에서 확보한 도검과 공예품을 남방으로 재수출했다. 이러한 순환 구조는 류큐를 단순한 소비지가 아닌 해상 물류의 조정자로 만들었다.

 

마나반 교역은 물자의 이동에 그치지 않았다. 남방의 증류 기술은 훗날 아와모리(泡盛)의 기원이 되었고, 염색 기법과 장식 문화는 빙가타로 발전했다. 삼신(三線) 역시 남방 현악기의 영향을 받아 류큐 고유의 음악 문화로 정착했다. 경제 활동이 문화 창조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이다.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유럽인들은 류큐인을 레키오(Lequio)라 불렀다. 포르투갈 자료에는 이들이 신용을 중시하고 노예 거래를 거부한 상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류큐가 단순히 부를 축적한 국가가 아니라, 상업 윤리를 기반으로 신뢰를 쌓은 해양 공동체였음을 보여준다.

 

16세기 후반, 서구 열강의 해상 진출과 명나라 해금 완화로 중계 무역의 이점은 감소했다. 일본 상인의 직접 진출 역시 류큐의 입지를 약화시켰다. 그러나 마나반 교역을 통해 형성된 해양 정체성은 이후에도 류큐 문화의 깊은 층위로 남았다.

 

마나반 교역은 류큐 왕국을 해양 변방이 아닌 동아시아 중심부로 끌어올린 동력이었다. 물자와 문화, 윤리가 함께 이동한 이 교역망은 오늘날 오키나와가 지닌 복합적 정체성의 출발점이다.

작성 2026.01.23 14:53 수정 2026.01.2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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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