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번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다시 만났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이번 비공개 면담 이후 양국 정상은 대화 과정이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하며 전쟁 종식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분쟁을 끝내고 싶어 하는 국제적인 공감대를 강조하며 향후 러시아 및 주요 인사들과의 추가 협상 계획을 시사했다.
만년설 아래서 피어오른 낯선 희망, 전쟁의 끝을 예고하는 ‘아주 좋은’ 시그널
차가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스위스 다보스, 해발 1,500m의 고지대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은 언제나 숫자가 지배하는 냉정한 곳이었다. 하지만 2026년 1월, 이곳의 공기는 사뭇 달랐다. 화약 냄새가 진동하던 동유럽의 비극을 끝낼지도 모를 아주 작은 소리, 그러나 세상을 뒤흔들 강력한 속삭임이 새어 나왔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한 명은 ‘거래의 기술’을 신봉하는 노련한 승부사이고, 또 한 명은 조국의 존망을 어깨에 짊어진 비운의 영웅이다. 접점이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이 나눈 60분의 밀담은 이제 지구촌 전체의 운명을 바꾸려 한다.
차가운 이성을 녹인 뜻밖의 온도: "아주 좋다"는 말의 경제학
전 세계가 숨죽여 지켜본 회담장 문이 열렸을 때, 쏟아진 반응은 의외로 간결하고 뜨거웠다. 트럼프와 젤렌스키,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아주 좋았다(Very Good)"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외교가에서 이 말은 수만 단어의 성명서보다 무겁다. 이는 단순한 예의상의 인사가 아니다.
보통 정상회담 후에는 '솔직하고 건설적인 대화'라는 수식어가 붙기 마련이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서로의 차이만 확인했다'라는 뜻의 완곡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두 사람이 동일한 최상급 형용사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의 실타래 속에서 '동일한 합의점'이라는 바늘귀를 통과했음을 시사한다. 누군가는 이를 '비즈니스적인 결단'이라 부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내일 아침 폭격 걱정 없이 잠들 수 있다는 절박한 안도감의 다른 이름이다.
고통의 끝을 향한 보편적 외침: "모두가 전쟁 종식을 원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직후 남긴 문장은 날카로운 송곳처럼 시대의 정곡을 찔렀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아주 좋은 회담을 했습니다. 모두가 전쟁이 끝나기를 원합니다." 이 말은 정치적 구호를 넘어, 지난 수년간 포화 속에서 스러져간 영혼들과 그 가족들의 눈물을 닦아내는 위로의 언어로 들린다.
그는 왜 이 시점에 '평화'가 아닌 '종식'을 말했을까. 이는 전쟁의 피로감에 지친 미국 시민들과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여론을 향한 계산된 포석인 동시에, 출구 전략을 고민하던 러시아를 향해 던진 미끼다. 트럼프는 복잡한 역사적 갈등과 영토 문제를 '끝내야 할 소모전'이라는 프레임으로 단순화했다. 이것이 그의 방식이다. 고상한 명분보다 실질적인 마침표를 찍는 것. 이제 평화는 이상주의자들의 구호가 아니라, 냉혹한 현실주의자의 손을 거쳐 구체적인 일정표 위에 놓이게 되었다.
막후의 설계자들: 공식 외교를 넘어선 ‘백채널’의 가동
이번 다보스 회담이 '쇼'가 아님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후속 회담의 라인업에 있다. 트럼프는 푸틴과의 만남을 예고하며 자신의 핵심 측근인 스티브 위트코프와 재러드 쿠슈너를 언급했다. 전통적인 외교관들이 아닌, 비즈니스와 협상의 최전선에서 트럼프와 호흡을 맞춰온 인물들이다.
이들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향후 전개될 평화 협상이 영토 확정이라는 해묵은 논쟁을 넘어, 전후 복구 사업과 경제적 보상이라는 '실익의 교환'으로 흐를 것임을 암시한다. 오랜 선교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싸움은 명분 때문에 시작되지만, 화해는 살길이 보일 때 이루어진다"라고. 트럼프는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에 '싸우는 것보다 화해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이라는 계산서를 내밀 준비를 마친 셈이다. 공식 외교의 경직성을 깨트리는 이들의 파격적인 행보가 알프스의 만년설처럼 단단했던 불신을 녹일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 사람의 진심이 다른 영혼에 닿는 순간
우리는 흔히 정치를 차가운 머리의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누군가의 절실함이 타인의 공감에 닿을 때 일어난다. 젤렌스키가 트럼프에게 보여준 것은 조국의 지도자가 겪는 고독이었을 것이고, 트럼프가 그에게 건넨 것은 파괴를 멈추고 건설로 나아가자는 제안이었을 것이다.
다보스의 한 시간은 짧았지만, 그 울림은 길다. 이제 질문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남이 정해준 증오의 순위표를 따라 살 것인가, 아니면 상처뿐인 전쟁을 끝낼 용기를 낼 것인가. 알프스에서 불어온 이 작은 신호탄이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그리고 한반도의 휴전선에서도 평화의 꽃을 피우는 씨앗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