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는 좋은데 왜 점수가 안 나올까”
시험이 끝난 날, 부모들은 비슷한 말을 한다. “조금만 더 했으면 잘했을 텐데.”
학원 선생님도 이해력이 좋다며 칭찬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해력이 좋고, 머리도 나쁘지 않은데 성과는 늘 들쑥날쑥하다. 반대로, 처음엔 느리고 서툴렀던 아이가 어느 순간 앞서 나간다. 이 차이는 어디서 생길까.
그 차이는 끝까지 가는 힘에서 갈린다. 바로 그릿(Grit)이다.
그릿은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는 힘이고, 성과가 바로 나오지 않아도 방향을 놓지 않는 태도다. 단기간의 몰입이 아니라 장기간의 집요함이다. 오늘 조금 부족해도 내일 다시 앉는 아이, 지겨워도 포기하지 않는 아이가 결국 앞서 간다. 성적은 변하지만, 그릿은 아이의 인생 전반을 결정짓는 무기가 된다.
‘그릿’이 주목받기 시작한 이유
그릿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계기는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의 연구였다. 그는 엘리트 군사학교 생도, 스펠링 대회 참가자, 명문대 학생들을 분석했다. 놀랍게도 성공을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지능도, 가정환경도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는 성향, 즉 그릿이었다.
이 연구는 교육 현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기존 교육은 ‘얼마나 빨리 이해하는가'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현실의 성공은 ‘얼마나 오래 붙잡고 있는가’에서 갈렸다. 현대 사회는 변화가 빠르고 실패 가능성이 높다. 한 번의 성취보다, 수십 번의 재시도가 필요한 시대다. 그래서 그릿은 단순한 성격 특성이 아니라, 미래 역량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 개념은 더 절실하다. 성적 경쟁은 치열하지만, 실패를 견디는 훈련은 부족하다. 아이들은 시험 하나로 자신을 규정하고, 결과가 나쁘면 시도 자체를 멈춘다. 이 환경에서 그릿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능력에 가깝다.
공부, 인생, 그리고 그릿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은 비슷한 장면을 목격한다. 상위권 아이들 중에서도 쉽게 무너지는 아이가 있고, 중위권에서 꾸준히 올라오는 아이가 있다. 차이는 재능이 아니라 태도다. 실패했을 때 “나는 안 돼”라고 말하는 아이와 “이번엔 여기서 막혔네”라고 말하는 아이는 전혀 다른 길을 간다.
부모의 시선에서도 그릿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성적이 떨어질 때 바로 학원을 바꾸고, 방법을 갈아타는 가정의 아이는 불안해진다. 반면 과정 자체를 점검하고, 시간을 견디도록 돕는 가정의 아이는 버티는 힘을 기른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릿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환경의 산물이다. 아이 혼자 만들어내는 힘이 아니라, 어른들이 허용한 버티는 시간에서 자란다.
기업과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단기 성과를 낸 사람보다, 실패를 경험한 후 다시 시도한 사람이 장기적으로 더 성장한다. 공부 역시 동일하다. 한 번의 시험 성적이 아니라, 여러 번의 좌절을 어떻게 통과했는지가 실력을 만든다.
그릿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많은 부모가 묻는다.
“그릿은 타고나는 거 아닌가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릿은 만들어진다. 다만 칭찬 방식과 실패를 다루는 태도가 결정적이다.
첫째, 결과보다 과정을 말해주는 언어가 필요하다.
“이번에 몇 점 맞았어?”보다 “어디까지 해봤어?”가 아이의 사고를 바꾼다. 결과 중심 질문은 실패를 두려움으로 만든다. 과정 중심 질문은 실패를 정보로 바꾼다.
둘째, 부모가 먼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가 흔들릴 때 어른이 먼저 길을 바꿔주면, 아이는 버티는 시간을 배울 기회를 잃는다. 물론 무작정 참게 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충분히 시도해 볼 시간을 주지 않고 철수시키는 선택은 그릿을 갉아먹는다.
셋째, 실패를 정상적인 과정으로 다뤄야 한다.
실패를 설명할 때 변명이나 위로보다 분석이 필요하다. “왜 안 됐을까”를 함께 짚는 순간, 아이는 좌절 대신 전략을 배운다. 이 경험이 쌓일수록 아이는 실패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다.
그릿은 인내심이 아니다. 방향 없는 참음도 아니다. 목표를 이해하고, 수정하며, 다시 시도하는 능력이다. 이 힘은 단기간에 보이지 않지만, 어느 순간 폭발적인 차이를 만든다.
성적보다 강한 무기, 그릿
아이의 성적은 변한다. 학년이 바뀌고, 과목이 달라지면 흔들린다. 그러나 그릿은 아이의 인생 전반을 관통한다. 공부, 관계, 직업, 위기 상황까지 모두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끝까지 가는 사람은 결국 자기 길을 만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아이가 몇 점을 맞았는가”가 아니라,
“이 아이는 실패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것은 성적 관리표가 아니라, 실패를 대하는 하루하루의 태도다. 그릿은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자라지 않는다. 오늘 포기하지 않도록 기다려 준 한 번의 경험, 결과보다 과정을 물어본 한 문장에서 시작된다.
성적보다 강한 무기, 그릿은 그렇게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