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의 퇴장과 새로운 탄생의 교차점
시의 도입부는 자연의 섭리를 인간 내면의 성찰로 끌어들인다. "해가 오기 전 어둠은 스스로 물러나고"라는 구절은 투쟁이나 억압이 아닌, 순응과 비움의 미학을 보여준다. 어둠이 쫓겨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물러난다는 표현에서 시인의 깊은 통찰이 느껴진다. 이는 곧 우리의 삶 속에서 고통과 번뇌 또한 때가 되면 스스로 자리를 내어줄 것이라는 희망의 암시다.
눈이 녹는 자리마다 이미 와 있는 봄을 발견하는 시인의 눈은 집요하다. 얼음이 풀리는 물리적 시간 속에서 시인이 건져 올린 것은 다름 아닌 ‘평화’다. 그 평화는 물리적으로 먼 곳에 있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사라지는 순간을 건너 흐르는 나 자신을 직시할 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내면의 풍경이다. 시인은 멈춰 있는 존재가 아니라 흐르는 존재로서의 ‘나’를 발견함으로써, 시간에 속박당하지 않고 시간과 함께 흐르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찰나적 미학, 달빛과 나비의 날갯짓
시의 중반부에서 시인은 ‘지금, 이 순간’의 구체적 형상을 제시한다. 파도 위에 잠깐 머문 달빛, 나비의 한 번의 날갯짓. 이 이미지들은 극도로 짧고 연약하다. 하지만 시인은 이 덧없는 순간 속에 "시간을 넘는 아름다움"이 숨 쉬고 있음을 간파한다. 영원은 결코 긴 시간의 축적이 아니라, 단 한 번의 진실한 순간 속에 응축되어 있다는 선언이다.
우리는 흔히 영원불멸한 것을 갈구하지만, 시인은 오히려 "곧 사라질 것을 알기에" 이 순간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만약 꽃이 시들지 않는다면 봄의 찬란함은 희석될 것이고, 달빛이 영원히 파도 위에 머문다면 그 신비로운 떨림은 평범한 빛이 되었을 것이다. 사라짐을 전제로 한 존재의 고백은 역설적으로 삶을 더욱 뜨겁게 껴안게 만든다.
‘꿈처럼 살아낸다’라는 것의 숭고함
시의 마지막 단락은 한 사람의 구도자가 내뱉는 묵직한 고백과 같다. "나는 이 잠시를 꿈처럼 살아낸다." 여기서 ‘꿈처럼’이라는 표현은 현실 도피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유한함을 명확히 인지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고도의 집중력과 경이로움을 뜻한다.
우리는 모두 잠시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 머물다 가는 나그네다. 시인은 그 짧은 체류 기간을 단순히 ‘버텨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낸다’라고 표현함으로써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강조한다. 비록 지금, 이 순간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짧을지라도, 그 안에는 우주의 모든 신비가 깃들어 있음을 시인은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 시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이 소중한 ‘잠시’를 진정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시간의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는가.
다시 한번, 시인이 포착한 그 ‘봄의 자리’를 떠올린다.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처럼,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도 평화의 갈망이 흐르고 있다. 시인의 시는 그 갈망을 깨워 지금 바로 여기서 행복할 권리를 일깨워준다. 사라지는 모든 것은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을 알아채는 당신의 시선은 이미 영원을 닮아 있다.